[경건한 주말] 시들해진 극장 살릴까…‘서치2’·‘카운트’ 봤더니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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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치2’와 ‘카운트’가 지난 22일 개봉했습니다. ‘서치2’는 2018년 개봉해 흥행돌풍을 일으킨 ‘서치’의 후속작으로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카운트’ 역시 ‘천만조연’ 진선규의 첫 주연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야심차게 개봉한 ‘앤트맨3’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가운데, 극장가에서 정면대결을 펼치고 있는 두 작품을 만나 봤습니다.


지난 22일 동시 개봉한 영화 ‘서치2’(왼쪽)와 ‘카운트’ 포스터. 소니픽쳐스 코리아, 씨제이이엔엠 제공 지난 22일 동시 개봉한 영화 ‘서치2’(왼쪽)와 ‘카운트’ 포스터. 소니픽쳐스 코리아, 씨제이이엔엠 제공

예측불가 반전매력 ‘서치2’, 관객몰이는 안 봐도 비디오

2018년 개봉한 ‘서치’는 실종된 딸의 행방을 SNS를 통해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는 높은 완성도와 신선한 연출로 호평세례를 받았습니다. 특히 PC, 스마트폰, CCTV, TV뉴스 등 모니터 화면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전개 방식은 몰입감을 돋우면서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개봉 직후 국내외 유수의 언론이 ‘서치’를 언급하며 SNS의 명암에 대해 설파하는 등 파급력도 상당했습니다. 주연(존 조)을 포함해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 점은 국내 팬들에게 또 다른 매력으로 작용했습니다.

5년 만에 등장한 후속편 ‘서치2’는 1편과 내용이 이어지지는 않지만, 장점과 정체성은 고스란히 가져가면서 재미를 더한 수작입니다. 1편을 연출한 아니쉬 차간티 감독이 각본을 썼고, 편집을 맡았던 윌 메릭과 니콜라스 D 존슨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영화 ‘서치2’ 스틸컷. 소니픽쳐스 코리아 제공 영화 ‘서치2’ 스틸컷. 소니픽쳐스 코리아 제공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1편과 유사합니다. ‘서치2’는 애인과 함께 콜롬비아로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된 엄마 ‘그레이스’(니아 롱 분)를 딸 ‘준’(스톰 리드 분)이 찾는 이야기입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열여덟 살 준은 SNS를 적극 활용해 엄마의 행적을 추적하고, 이 과정에서 엄마의 과거도 알게 됩니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메시지도 전작과 일치합니다.

철저히 모니터 화면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전개 방식 역시 1편과 같습니다. 다소 단조로운 구성이라 지루할 법도 하지만, 감각적이고 속도감 있는 연출 덕에 긴박감이 넘칩니다. 호흡이 아주 빠른 극의 초반 시퀀스는 애플의 광고를 연상시킬 정도로 스타일리시합니다. 핸드헬드로 촬영한 씬에선 서스펜스가 극도로 고조되는데, 사람에 따라 호러 영화에서나 느낄 법한 공포감을 잠시 경험할 수도 있겠습니다.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예측불허 반전 요소는 한층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사건의 국면을 전환시키는 반전들로 극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갑니다. “에이, 이거 1편에서 써먹은 수법인데…”라며 실망한 순간, 소름이 끼칠 정도의 다른 반전으로 뒤통수를 때립니다.


영화 ‘서치2’ 스틸컷. 소니픽쳐스 코리아 제공 영화 ‘서치2’ 스틸컷. 소니픽쳐스 코리아 제공

웃음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SNS를 사용하면서 누구나 경험했을 순간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그 타이밍이 기발합니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SNS와 음모론을 제기하는 언론의 유해성도 따끔하게 꼬집습니다.

다양한 인종이 주조연을 맡은 점도 인상적입니다. 주인공 모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엄마의 애인인 케빈(켄 렁 분)은 중국계 미국인입니다. 한국계 배우인 다니엘 헤니는 FBI 수사관 ‘일라이자 박’을 연기했습니다. 니콜라스 D 존슨과 윌 메릭 감독이 전작 ‘서치’에 좋은 반응을 보여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다니엘 헤니를 캐스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화가 가진 힘 ‘카운트’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당시 몇몇 쇼트트랙 경기에서 편파판정 논란이 일었던 것,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결승선을 먼저 통과한 한국 선수가 석연찮은 비디오 판독 때문에 탈락하고 중국 선수가 메달을 가져가자 국민적 공분이 일었습니다. 인터넷에선 중국을 겨냥해 ‘나라 망신을 자초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1988 서울 하계올림픽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당시 한국 복싱대표 박시헌은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미국의 루이 존스 주니어에게 크게 밀리고도 3-2로 판정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차지해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경기 후 미국 측에선 심판 매수설을 주장하며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미국올림픽위원회 및 복싱연맹 관계자들은 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국제복싱연맹(AIBA)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편, 1995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공식 제소하면서 당시 심판들이 매수됐음을 입증할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런던 올림픽이 열린 2012년에는 AFP통신이 이 사건을 ‘역대 올림픽 5대 판정 논란’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박시헌 선수 본인에게도 금메달은 벗어버리고 싶은 짐이었습니다. 23살이던 그는 금메달을 딴 날에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했고, 이후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8년 당시 <부산일보>의 관련 기사를 보니 “복싱은 서울올림픽에서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키며 개최국의 이미지와 명예를 실추시켰던 종목”이라며 “특히 라이트미들급에서 따낸 박시헌의 금은 오히려 거부감만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시헌을 직격한 비판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통이었을 겁니다. 파장이 커지니 ‘나라 망신’이라며 죄 없는 박시헌 선수를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영화 ‘카운트’ 포스터.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 ‘카운트’ 포스터. 씨제이이엔엠 제공

이렇듯 복싱선수 박시헌의 사연은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운트’ 권혁재 감독은 이 소재를 코믹 영화로 풀어내면서 자연스레 공감을 이끌어내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영화는 판정 논란 이후인 1998년,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체육 교사가 된 박시헌(진선규 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박시헌은 실제로 모교에서 복싱부를 만들어 제자를 양성했는데, ‘카운트’는 여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붙였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진해중앙고 체육교사 박시헌과 마산체고 복싱 유망주 윤우(성유빈 분)입니다. 윤우는 ‘인맥복싱’에 환멸을 느껴 복싱을 포기, 진해중앙고로 전학해 아르바이트에 전념합니다. 그러나 시헌은 윤우의 재능을 알아보고, 고민 끝에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복싱계에 다시 뛰어듭니다. 학교의 대표적인 문제아 다섯 명을 끌어들여 복싱부를 되살리고 ‘진짜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 열정을 쏟아 붓습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던 아이들은 시헌의 지도 아래 차츰 성장하고 단결합니다. 그러나 유빈을 괴롭혔던 ‘인맥복싱’이라는 장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짜 금메달’을 땄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지독하고 끈질기게 시헌을 따라다닙니다. 시헌은 부당한 비난에 분노하다가도 자신이 복싱부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닫고 슬픔에 잡깁니다.

카운트는 성장→위기→좌절→극복이라는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서사 구조를 따릅니다. 결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배우들의 열연 덕에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는 신파적 요소도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박시헌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교장(고창석 분)과 아내 일선(오나라 분), 그리고 복싱부 문제아 캐릭터들도 매력적입니다.

부울경 관객에게는 영화 내내 나오는 경남 사투리가 공감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진해 출신인 진선규, 부산 출신인 고창석이 내뱉는 사투리는 정겹습니다. 오나라를 포함한 조연들의 사투리 연기도 제법 자연스럽습니다.

카운트의 가장 큰 힘은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진선규의 호연은 판정논란의 희생양 박시헌이 실제로 느꼈을 감정들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여타 코믹·스포츠 영화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감정선을 담아내 신선합니다.

진선규는 지난 22일 SBS 라디오에서 “사실 (카운트가) 실화인지 몰랐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내 고향 진해에 이런 분이 계셨구나, 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시나리오를 읽으며 많이 울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 주인공인 박시헌은 시련을 딛고 복싱계에 다시 발을 들였습니다. 2001년 복싱 국가대표팀 코치 등을 거쳐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는 진선규에 대해 “정말 대단한 친구다. 영화를 보면서 성향이나 모든 행동들이 나와 똑같아서 너무 좋았다”고 극찬했습니다. 그러면서 “88 올림픽의 아픔, 비화를 ‘카운트’에서 모두 씻겨주는 개운함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진해 중·고등학교 동창회가 내건 현수막. 배우 진선규 인스타그램 캡처 진해 중·고등학교 동창회가 내건 현수막. 배우 진선규 인스타그램 캡처

한편, 카운트는 ‘천만조연’ 진선규에게 아주 뜻깊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데뷔 19년 만에 고향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의 단독 주연을 맡았으니 감개무량할 법 합니다. 진해도 카운트 덕에 들뜬 분위기라고 합니다. 시내 곳곳에 “진해의 아들”이라며 진선규의 얼굴이 찍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습니다. 진선규는 지난 18일 자신의 SNS에 현수막 사진들을 공유하고 “이런 걸 금의환향이라고 해야 하나?”라며 기뻐했습니다.

카운트의 성적은 괜찮은 편입니다. 24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2일 개봉한 ‘카운트’는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 무난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22~23일 이틀간 7만 7000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같은 날 개봉한 ‘서치2’는 6만 7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4위에 올라 있습니다.

박스오피스 1위는 지난 15일 개봉해 106만여 명이 본 ‘앤트맨3’이고, 누적 관객이 어느덧 340만 명을 넘어선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3위에 올라 있습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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