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사 검증 시스템 ‘구멍’ 드러낸 국수본부장 낙마
아들 학폭 이유로 임명 다음 날 사퇴
책임 묻고 인사 체계 전면 쇄신해야
25일 있었던 정순신 변호사에 대한 신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취소 사태는 가히 인사 참사라 할 만하다. 임명된 지 불과 하루 만에, 그것도 아들의 고교 시절 학교폭력이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벌어진 일이라서 그렇다. 이번 일은 정 변호사의 자진 사퇴 의사를 대통령실이 즉각 수용함으로써 조기에 마무리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파장이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정 변호사 스스로 밝힌 바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중책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흠결’을 현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걸러 내지 못했음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낼 사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같은 학교 동급생에게 수개월간 언어폭력을 가해 전학 처분을 받았다. 전후 사정이 분명했던 만큼 가해 학부모로서 처벌을 인정하고 피해 학생에게 사과하는 게 순리였다. 하지만 정 변호사는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진행하며 시간을 끌었다. 아들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법 기술을 동원한 것이다. 그 결과 피해 학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낸 반면 정 변호사 아들은 무난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사회적 공분이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히 소송전을 벌일 당시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다. 신분을 망각한 뻔뻔함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범죄 수사를 지휘하고 최종 책임을 지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어떻게 이런 인물이 발탁됐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자녀와 관련된 사생활이어 충분히 알아보지 못했다”는 경찰의 해명은 차라리 안쓰럽다. 그동안 자녀 문제로 물러난 공직자가 한둘이었나. 자녀 관련 사생활이 공직자 검증의 주요 항목이 된 지 오래다. 법무부의 태도도 의아하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폐지되면서 고위 인사 검증 임무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정 변호사 검증에 대해 법무부는 아무런 확인을 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검증을 했든 안 했든 법무부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논란이 있다. 국가수사본부장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상징한다. 검찰의 과도한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한 법안이 지난 2000년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만들어진 자리다. 요컨대 검찰 출신 정 변호사를 임명한 것은 그런 법 취지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출신을 너무 많이 쓴다는 비판이 있다. 이번 사태 역시 그 연장선에서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 여하튼 전국 3만 수사 경찰을 대표하는 국수본부장 자리는 당분간 공석으로 남게 됐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현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전면 쇄신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