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고 反하고…사진과 놀다 보니 사진을 넘어섰다 [전시를 듣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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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사진전 ‘사진에 반-하다’
12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전시
‘블로우업’ ‘버노그라피’ ‘픽셀’ 등
60년 사진 작업 변천사 한눈에

황규태 사진전 '사진에 반-하다' 전시 중 픽셀 시리즈. 오금아 기자 황규태 사진전 '사진에 반-하다' 전시 중 픽셀 시리즈. 오금아 기자

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사진에 반-하다’는 남다르다. 한 사진가의 작품인데도 시리즈별 결이 완전히 달라 흡사 단체전처럼 보인다. 틀림없이 사진전인데 작품 앞에 서면 ‘이게 사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남다른 사진전의 주인공은 바로 황규태 작가이다. 1938년생인 황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사진에 입문했다. 작가는 1963년 경향신문사 사진기자로 사진가의 길을 시작했다. ‘사진에 반-하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흑백’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스트레이트 사진을 소개한다.


사진 일부 잘라내고 확대한 ‘블로우업’

60년대 미국 영화 제목에서 나와

포토몽타주로 사진이 가진 한계 극복

80대 원로 사진가 계속된 ‘변화’ 시도


있는 그대로의 피사체를 담은 작가의 초기작에서 대상의 일부를 과감하게 잘라낸 크롭(Crop)이 발견된다. 황 작가는 “크롭의 다른 표현으로 블로우업(Blow Up)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블로우업이라는 표현은 작가가 본 1960년대 미국 영화에서 나왔다. “동명의 제목을 가진 영화인데, 사진가가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암실에서 확대하면서 사진 촬영 때 보지 못한 살인 사건을 발견하게 되는 내용이죠.”

블로우업 '흑백' ⓒ황규태 블로우업 '흑백' ⓒ황규태

필름을 확대하면 생각하지 못한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 넓게 찍어서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는 것. ‘파고드는 성질’을 가진 황 작가는 사진의 이미지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고 했다. “그러면 원화와 달리 보이거나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 나타나죠. 그게 환희로 다가왔어요.”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서울 명동성당 야외 기도대에서 같이 찍은 두 장의 사진은 ‘블로우업’ 전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도대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찍은 듯한 여성의 사진에서 ‘춤’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사진을 잘라내고 부분을 확대함으로 인해 다른 시선, 다른 해석이 유도된 것이다. 황 작가가 암실에서 조금씩 시도하던 블로우업은 컴퓨터가 나오며 본격화했다.

버노그라피 '녹아 내리는 태양' ⓒ황규태 버노그라피 '녹아 내리는 태양' ⓒ황규태
포토몽타주 '크리스티나의 세계- 앤드류 와이어스 이후' ⓒ황규태 포토몽타주 '크리스티나의 세계- 앤드류 와이어스 이후' ⓒ황규태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간 황 작가는 컬러사진 현상소를 운영하며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됐다. “필름을 가지고 놀다가 ‘이렇게 필름을 태워 인화하면 내가 원하는 파괴적 이미지가 나오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도시나 교량을 찍은 필름을 불에 녹여 ‘불타는 올림픽대교’와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버노그라피(Burnography) 시리즈 대표작 ‘녹아 내리는 태양’은 해를 찍은 필름을 움직여가면서 태운 것이다. 황 작가는 “환경 문제가 적극적으로 거론되기 전의 작업으로, 머릿속 상상을 작업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사진 조각을 조합한 포토몽타주는 사진이 가진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이다. 암실에서 시작한 포토몽타주 작업은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며 더 정교하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래픽 작업처럼 보이는 픽셀 시리즈는 TV 화면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작가의 호기심에서 나왔다. 조각보 같은 이미지에서 나온 ‘컬러 소용돌이’, 야구 모자를 쓴 작가의 옆모습을 반복해서 만든 ‘게슈탈트-형태심리학’, 부산 전시를 위해 만든 ‘픽셀 유체역학’ 같은 작품은 사진에 대한 개념적 경계를 무너뜨린다.

황 작가는 “사진 작업 자체를 즐기고 좋아해서 계속 가지고 놀다 보니 (사진을 넘어서는)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지난해 열린 ‘PiXEL AI PiXY’전 이전에는 픽셀 스스로 나타내는 것을 골라서 보여줬다면, 해당 전시 이후로는 내 감성이나 미적 표현이 많이 들어가게 적극적으로 픽셀을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픽셀 '게슈탈트-형태심리학' ⓒ황규태 픽셀 '게슈탈트-형태심리학' ⓒ황규태
픽셀 '육각형 색상코드 그라데이션' ⓒ황규태 픽셀 '육각형 색상코드 그라데이션' ⓒ황규태
픽셀 '하트' ⓒ황규태 픽셀 '하트' ⓒ황규태

하트나 불꽃 문양의 그라데이션 작품에서 ‘빛’의 존재감이 느껴진다고 하니, 황 작가는 “수십 년 사진으로 단련되었기에 아마도 내재된 (사진적)표현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팔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황 작가는 계속 변화할 사진 작업을 이야기했다.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픽셀에서 인간이나 동물의 모습을 찾아내는 거예요. 의식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가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 제목은 ‘사진에 매혹되고 몰두한다’와 ‘사진 매체의 규범적인 조건을 넘어서고 저항한다’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황규태 사진전 ‘사진에 반-하다’는 3월 12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로 452번길 16)에서 열린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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