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병진원 우한 수산시장 유전자 샘플 재분석 결과

코로나19 초기 중국 우한 수산시장에서 채취한 유전자 샘플 분석 결과 너구리의 유전자가 상당량 발견됐다. 연구팀은 시장에서 거래됐던 너구리가 코로나19의 숙주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17일(현지시간) CNN 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 과학 연구소인 스크립스 리서치, 호주 시드니대학교, 미 애리조나대학교 등 소속 국제 연구진은 중국 우한의 화난(華南) 수산시장 내 동물 우리, 수레, 바닥 등 곳곳에서 2020년 1월∼3월 채취된 유전자 데이터에 대한 재분석을 실시했다.

중국 화난 수산시장은 수산물뿐 아니라 박쥐, 천산갑, 뱀, 오리, 지네, 너구리, 토끼 등 각종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팔았다. 2019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정체불명 폐렴으로 처음 보고하면서 이 시장을 발병지로 지목했다. 그동안 박쥐나 천산갑이 숙주로 지목됐다.

이번 유전자 샘플은 당초 3년 전 수집돼 중국 과학계가 분석했으나 중국은 올해 1월 국제 인플루엔자 정보공유기구(GISAID)에 관련 데이터를 공개했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삭제했다. 데이터가 완전히 삭제되기 전 프랑스의 한 생물학자가 이를 우연히 발견해 재분석을 거치게 됐다.

앞서 중국 측은 화난 시장에서 발견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동물이 아닌 인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을 보인 유전자 샘플에 이 시장에서 판매됐던 너구리의 유전자가 상당량 섞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에 대해 너구리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숙주였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주 WHO 내 '새로운 병원체의 기원 조사를 위한 과학 자문그룹'(SAGO)에 이 결과를 전달했다.

국제 사회에서는 중국이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 데이터는 3년 전 공유될 수 있었고 공유됐어야만 했다"면서 "우리는 중국이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한 조사를 수행하며 그 결과를 공유할 것을 계속해서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전염병학자 사라 코비는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단순히 인간에 의한 감염이라면 유전자 샘플에 이렇게 많은 동물 DNA, 특히 너구리 DNA가 섞여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재분석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루이지애나 주립대 슈리브포트 보건과학센터의 바이러스 학자 제러미 카밀은 "감염된 너구리가 그 시장에 있던 것은 분명하다"면서 "중국 정부가 실제로 뭘 알고 있는지에 대한 더 큰 의문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다만 CNN은 이번 재분석 결과가 코로나19의 기원을 완벽하게 밝혀주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정보만으로는 너구리가 처음으로 인간에게 코로나19를 전파한 게 맞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