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편의점 생맥주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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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생맥주와 병맥주는 제조 과정 중 마지막 열처리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 살균 처리를 하지 않은 생맥주에는 효모가 남아 신선하고 독특한 고유의 맛과 향을 갖는다. 대신 생맥주는 냉장 보관을 해야 하고 2~3일 지나면 변질될 우려가 있다. 맥주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살균한 맥주가 병맥주(저장맥주)이다. 병맥주는 열처리로 효모가 대부분 죽기 때문에 6개월까지 보관할 수 있다. 요즘에는 병에 넣은 생맥주도 나오고 살균이나 여과 방법이 발달해 병맥주의 풍미도 생맥주에 근접해 간다. 같은 종류의 생맥주와 병맥주를 나란히 놓고 번갈아 마시면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정부는 편의점 등 주류 소매업자가 맥주 제조 키트에서 생산한 맥주를 소분(작게 나눔)해 판매할 수 있는지 묻는 세법 질의에 대해 ‘판매할 수 없다’고 최근 회신했다. 주류 소분 판매는 음식점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사실 주류 소분 판매도 2019년 7월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주세법 기본통칙을 개정해 생맥주 판매 규제를 완화한 결과였다. 그 덕분에 집에서 음식과 함께 생맥주를 배달시켜 먹거나, 음식점에서 원하는 대로 생맥주를 따라 마실 수 있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소분 판매를 하면 모든 편의점이 맥주 가게가 되는 셈이다. 기존 음식점들과의 형평성이나 관리·감독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생이나 과세 관리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JR동일본 그룹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뉴데이즈가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점포 위주로 이미 생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특히 신칸센 이용객 가운데 역사 편의점에서 신선한 생맥주를 사서 열차 안에서 가볍게 한잔하는 수요가 꽤 있다고 한다. 일본의 세븐일레븐도 생맥주 판매를 시도했으나 한꺼번에 수요가 몰리거나 편의점의 다른 손님 대응 문제로 판매를 중지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1989년 국내 첫 편의점이 문을 연 뒤 30여 년 만에 편의점 수 5만 개 시대가 되었다. 이 같은 숫자는 일본보다 조금 적은 편이라니 국토의 크기나 인구수 차이를 고려하면 한국에 편의점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편의점의 취급 품목이 생필품 외에 신선식품·와인·명품으로 늘고, 서비스도 세탁·펫케어·배달·택배·보험 가입 등으로 영역 제한 없이 확대되고 있다. 맥주 제조 키트를 생산하는 소규모 업체들은 편의점을 통해 판로를 찾으려 했으나 이번에도 규제에 가로막혔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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