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가면, 폐부품으로 만들어진 ‘외계인 마을’이 있다
울산 정크 아트 복합문화공간 ‘FE01’
‘고철·폐부품으로 만든 성’ 콘셉트
우주선 본뜬 공간에 1140여 작품 빼곡
스토리텔링 입혀 SF 영화 속 들어온 듯
초대형 로봇에 공룡…루프톱 경관도
울산 정크 아트 복합문화공간 ‘FE01’. FE버거 루프톱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우주선 모양의 야외 전시 공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영어로 ‘junk(정크)’는 쓸모없는 물건, 폐품, 쓰레기를 뜻한다. 정크 푸드(Junk Food), 정크 파일(Junk File), 정크 본드(Junk Bond) 등에서처럼 본디 의미대로 주로 부정적으로 활용된다. 그런 ‘정크’가 새 생명을 얻어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예술로 재탄생했다. 바로 ‘정크 아트(Junk Art)’다. 정크 아트는 버려지는 폐품과 쓰레기를 활용한 예술이나 예술 작품을 말한다.
주변에서 정크 아트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다. 이달 초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아테네 학당’에는 고대 철학자 흉상 5점과 아폴론 전신상과 아테나 전신상 등 7점의 정크 아트 작품이 전시돼 있다. 작가를 물었더니, 정크 아트 대가 김후철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부산 출신 김후철 작가가 정크 아트를 주제로 한 복합문화공간을 울산에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크 아트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FE01의 우주선 모양 야외 전시 공간은 미로 형태로 전시 공간을 나누고 있다. 벽체의 길이가 길다 보니, 벽체에 설치된 부조 형식의 작품은 무려 740여 점이나 된다. 작품의 섬세함에 놀란다.
‘루따따’라는 지구 생명체. FE01은 루따따가 지구의 환경오염으로 우주선을 타고 외계 행성을 다니면서 겪었던 우주 여행기를 정크 아트로 표현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루따따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애완 동물이다.
티라노사우루스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대형 정크 아트는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입체감이 돋보여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SF 영화 보듯 무한한 상상력 자극
울산 울주군 서생면(용연길 160)에 있는 정크 아트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은 ‘FE01’이다. 철의 원소 기호 ‘Fe’와 첫 번째 장소라는 뜻의 ‘01’을 조합했다. 고철을 이용한 작품이라는 의미와 원전 마을인 서생을 친환경적인 문화 마을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지난해 8월에 문을 연 데다, 울산의 변두리에 있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동해선 서생역에서 내리면 3km 정도 거리(차로 5분가량 소요)지만, 외진 곳에 있어 버스가 없고, 택시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아 자가용으로 찾아야 한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야외 전시 공간은 거대한 우주선이 땅에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선 ‘밀레니엄 팔콘’을 본떴다. 높이 5m가 넘는 거대한 두 파라오가 우주선 입구를 지키고 있고, 그 사이를 지나면 마치 SF 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FE01은 ‘루따따’라는 지구 생명체가 지구의 환경오염으로 우주선을 타고 외계 행성을 다니면서 겪었던 우주 여행기를 정크 아트로 표현했다. 루따따가 외계 행성에 가 보니 밤마다 외계인들이 지구에서 버려진 고철과 폐품을 가져가 자신들의 성을 만들었는데, 그 성이 FE01이다. 외계인들은 우주선 모양의 대형 건축물을 짓고, 벽체에는 지구의 4대 문명과 외계 문명을 기록해 두는 등 외계인들이 지구 문명을 도와줬다는 재밌는 스토리텔링을 담았다.
우주선 모양의 전시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면 벽체에는 인류의 4대 문명과 외계 문명을 표현한 다양한 정크 아트가 살아 숨 쉰다. SF 영화에서 한 번쯤 본 듯한 로봇과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괴생명체를 닮은 외계인도 있다. 고대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도 있고, 동양의 신비스러운 성도 보인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해 묘한 느낌이다. 미로 형태로 전시 공간을 나누고 있는 벽체의 길이가 길다 보니, 벽체에 설치된 부조 형식의 작품은 무려 740여 점이나 된다. 작품 수에 놀라고 섬세함에 한 번 더 놀란다.
전시 공간은 여러 테마로 꾸며졌다. 외계인 레스토랑, 외계인 전투, 영화 캐릭터존, 상상 동물원, 외계인 도서관 등이다. 우주선 모양의 전시 공간 가운데에는 음료와 도넛을 파는 FE01 카페가 있는데, 이 카페 건물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동선을 잡고 관람하면 좋다. 외계인 레스토랑에는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외계인, 기타 연주를 하는 외계인이 있다. 괴상한 외모에 무서움은 잠시, 우스꽝스러워 미소를 머금는다. 외계인 전투 공간에서는 외계인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다. 꽤 사실적이다. 외계인 전투 공간 밖 잔디 공간은 영화 캐릭터존이다.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범블비와 메가트론 등 로봇들을 비롯해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하록 선장, 헐크 등 SF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늠름하게 서 있다. 다시 우주선 모양의 전시 공간으로 돌아오면 외계인들이 당구를 치고 있고, 카드 게임을 하고 있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전시 공간 곳곳에서 반가운 영화와 만화 속 캐릭터들을 만나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금방 내달릴 것 같은 보랏빛 배트맨카와 아톰, 미니언즈, ET 등 만화 속 캐릭터도 볼 수 있다. 잔디밭에는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서유기의 손오공도 볼 수 있다. 특히 공룡 티라노사우스루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대형 정크 아트가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입체감이 돋보여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주변에는 앙증맞은 아기 공룡들이 뛰어 논다. 이 공룡들은 FE01의 속편이 될 ‘FE02’에 전시될 정크 아트 작품들이다. 일종의 예고편이다. FE01이 외계인 마을로 꾸며졌다면, FE02는 공룡 마을이 콘셉트라고 한다.
외계인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외계인들.
기타를 치고 있는 외계인들.
FE카페 건물 뒤편에 서 있는 13m짜리 초대형 로봇. 로봇의 이름은 따로 없지만 얼굴이 호랑이를 닮았다. 다가서면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전투 중인 외계인들. 전투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야외 전시 공간 뒤편 영화 캐릭터존에는 친숙한 영화 속 주인공들이 늠름하게 서 있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로봇도 눈에 띈다.
■루프톱 올라가면 외계인 마을 한눈에
생각보다 작다고 느낀 전시 공간에 대한 첫 인상은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이내 바뀐다. 빼곡히 들어찬 작품의 수가 1140여 개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김후철 작가가 26명의 작가와 함께 외계인 마을을 만드는 데 걸린 기간은 4년 6개월이나 된다.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체인, 톱니바퀴, 호스, 볼트, 너트, 스프링, 링, 쇠사슬, 고철 등 온갖 폐부품들이 망라됐다. 쓰인 폐부품 종류도 114종이라고 한다. 대부분 자동차와 오토바이에서 나왔다.
전시 공간을 다 둘러봤다고 끝이 아니다. FE카페와 FE갤러리1·FE버거, FE갤러리2, 정크 아트 체험장·굿즈숍 등의 부속 건물에서는 색다른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FE카페는 입구가 있는 전면의 양쪽에 거대한 외계 로봇이 머리로 건물을 받치고 있다. 입구 앞에는 만화 뽀빠이에 나오는 올리브가 대형 도넛에 팔을 기대고 있다. 모두 정크 아트다. FE카페 2층과 3층에는 13m짜리 초대형 로봇을 코앞에서 볼 수 있도록 난간으로 된 관람 공간이 마련돼 있다. 호랑이 얼굴 모양을 한 로봇은 FE카페 건물에 붙어 있는 발사대에서 출동을 준비하는 듯하다. 로봇 앞에 서면 로봇을 개발한 로봇 박사나 수리하는 엔지니어가 된 기분이 든다.
FE갤러리1·FE버거 건물은 FE01 입구 바로 옆에 있다. 1층에는 현재 ‘Museum of African Art’ 주제로 기획 전시가 진행 중이다. 청소년기 4년 동안 부모님과 아프리카에서 거주한 적이 있는 김후철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수집한 다양한 예술품으로 전시 공간을 꾸몄다. 마스크와 조각상, 생활 소품, 창, 악기 등 종류와 수가 의외로 많아 깜짝 놀란다. FE카페나 FE버거에서 음료나 햄버거를 구입한 영수증을 제시해야 관람할 수 있다. 2층 FE버거는 루따따가 우주 여행을 하면서 외계인들도 좋아할 수 있는 버거를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라는 스토리를 입혔다. 보라색 톤의 조명에 귀여운 만화 캐릭터와 로봇, 우주인 등의 소품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3층 루프톱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만화 영화 등에 등장하는 영화 배우나 영화 속 캐릭터, 히어로들이 작은 액자에 담겨 있다. 영화광인 김후철 작가가 수집한 디스플레이용 액자들로, 오르는 동안 눈이 즐겁다. 루프톱에 올라가면, FE01이 자랑하는 정크 아트 작품인 벤츠 자동차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1934년식 바우어 메르세데스 벤츠 500K 승용차다. 금빛 표면 덕분에 더욱 고급스러워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있다. 루프톱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FE01의 ‘뷰 맛집’이다. 우주선 모양의 야외 전시 공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김후철 작가는 현재 FE02를 기획 중이라고 말했다. “공룡 마을을 주제로 한 FE02를 만들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FE01과 가까운 곳에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FE버거 루프톱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전시된 디스플레이용 액자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눈이 즐겁다.
FE01이 자랑하는 정크 아트 작품인 벤츠 자동차 모형. 포토존으로 인기가 있다.
FE01에서 만난 김후철 작가. 그는 외계인 마을인 FE01의 속편인 FE02를 공룡 마을을 콘셉트로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행 팁=FE01 입장료는 일반인 5000원, 미취학 아동 3000원. 연중 무휴.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8시. 울산시는 최근 울산시티투어 노선에 FE01을 포함시켰다. 매주 금요일에만 FE01 관람 코스가 운행된다. 오전 9시 40분 울산역에서 출발하는 ‘힐링 투어’ 코스(울산역~태화강역~간절곶~FE01~외고산 옹기마을~태화강역~울산역)다. 요금은 성인 1만 원, 만 19세 미만 8000원. 정크 아트 체험장·굿즈숍에서는 정크 아트 제작 프로그램(단체 대상으로만 진행·대표 전화로 예약)을 진행하고 작품을 판매한다. FE01의 모든 공간은 키즈 케어존이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