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슬램덩크’ 흥행가도, ‘리바운드’-‘에어’에 약일까 독일까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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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습니다. 올해 초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슬램덩크)의 인기 얘기입니다. 개봉한 지 석 달이 넘은 이달 6일까지 4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습니다. 원작 만화인 ‘슬램덩크’의 열혈 팬층인 3040세대의 ‘n차 관람’에 더해, 입소문을 듣고 극장에 모여든 20대 관객이 흥행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슬램덩크’는 지난 5일 아이맥스(IMAX) 포맷까지 개봉해 관객몰이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날 서면 CGV는 아이맥스 관람객 전용 포스터와 스탬프 등 굿즈를 받으려는 MZ세대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마침 같은 날 개봉한 ‘리바운드’와 ‘에어’ 역시 농구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언뜻 보기엔 슬램덩크의 장기 흥행이 두 영화의 성적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마냥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리바운드’와 ‘에어’. 바른손이앤에이·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리바운드’와 ‘에어’. 바른손이앤에이·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만화 같은 실화 영화 ‘리바운드’

5일 개봉한 ‘리바운드’는 2012년 전국고교 농구대회에서 겨우 6명의 선수로 기적 같은 승부를 펼친 부산중앙고 농구부 이야기를 다룹니다. 장항준 감독이 ‘기억의 밤’(2017)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약체로 평가받던 고교 농구팀이 의기투합해 전국대회에서 맹활약한다는 스토리가 ‘슬램덩크’와 많이 닮았습니다.

사실 부산중앙고는 기자의 모교입니다. 게다가 2012년 당시 재학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농구부 친구들이 신화를 썼다는 소식에 큰 관심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고3 수험생이기도 했고, 농구부와 접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같은 학교 친구들이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하니 한동안 들뜬 분위기가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앙고 졸업생인 기자도 ‘리바운드’를 통해 농구부가 만든 각본 없는 드라마를 자세히 알게 됐습니다.

부산중앙고는 ‘농구 명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2012년에는 농구부 선수가 없어 존폐 위기에 놓인 상태였습니다. 새롭게 코치로 부임한 중앙고 졸업생 ‘강양현’(안재홍 분)은 농구선수 출신이자 공익근무요원으로, 코치 경험은 전무했습니다.

양현은 농구부 재건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진작부터 농구계에 마수를 뻗친 ‘청년인재 수도권 유출’ 문제에 가로막힙니다. 양현이 영입을 시도한 유망한 선수들은 수도권 농구 명문고로 떠나버리고, 힘겹게 모은 선수들은 오합지졸입니다. 그나마 실력이 좋은 가드 천기범(이신영 분)과 스몰 포워드 배규혁(정진운 분)은 중학생 시절 불화로 아직도 사이가 나쁜 앙숙입니다.

결국 양현이 이끄는 농구부는 첫 전국 대회에서 ‘최강’ 용산고를 상대로 실력에서도 매너에서도 완패합니다. 몰수패와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라는 최악의 결과를 받아든 중앙고 농구부는 그대로 와해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양현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팀을 재정비합니다. 선수는 겨우 6명이지만, 전국 대회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킵니다.

장항준 감독과 배우들은 실제 인물들을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거쳤습니다. 안재홍은 강양현 코치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복장이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했고, 체중도 10kg 늘렸습니다. 부산 출신이라 사투리 연기는 문제가 없었지만 강 코치의 말투를 따라하기 위해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농구부 선수들을 연기한 배우 6명은 두 달 동안 합숙하면서 농구 훈련에 임했다고 합니다.

맹훈련은 좋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리바운드’에서 구현한 경기 장면들은 꽤 생동감 넘칩니다. 다양한 앵글에서 잡은 컷들과 롱테이크 기법으로 박진감을 더했습니다. 촬영에 많은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6명에 불과한 선수단이 체력부담과 부상이라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도 흥미롭게 풀어냈습니다. 강 코치의 변칙 전술과 선수들의 투지로 강팀들을 꺾어나가고 결국 결승에서 ‘최강’ 용산고를 만나는 이야기는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대결을 그린 ‘슬램덩크’를 보는 듯합니다.

영화는 이 만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 공식을 답습합니다. 약체로 평가받던 주인공이 좌절과 불화, 위기를 극복하고 결국 기적 같은 결과를 낳는 식입니다.

이런 스포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출과 각색입니다. 관객 대다수는 이미 주인공인 중앙고 농구부가 선전을 펼쳤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이 스토리를 어떻게 극적으로 풀어나가느냐, 또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느냐가 완성도를 좌우합니다.


영화 ‘리바운드’.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리바운드’.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개봉 전후로 국내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평가는 대체로 나쁘지 않은 가운데, 기자는 ‘리바운드’가 아쉬운 대목이 많은 영화라고 조심스럽게 평가해 봅니다.

기자는 ‘슬램덩크’ 원작 만화를 전혀 보지 않은 채 올해 1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관람했습니다. 극장판 슬램덩크의 강점은 뚜렷했습니다. 우선 각 캐릭터의 매력이 확실했습니다. 우월한 피지컬과 리더십을 갖춘 채치수, 타고난 재능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강백호 등 선수 하나하나의 개성이 뚜렷했습니다. 무엇보다 송태섭이라는 확실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사가 흘러가 자연스럽게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완급 조절도 훌륭했습니다. 서사를 쌓아올리다가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 효과를 쏟아 붓는 연출로 감동을 극대화했습니다. 카타르시스를 정교하게 세공해낸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리바운드’에서는 이러한 흥행요소들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일단 캐릭터의 매력이 그리 와닿지 않습니다. 주연급 선수인 천기범과 배규혁의 ‘브로맨스’는 몰입하기 어렵습니다. 브로맨스는 비중이 애매하면 오히려 영화의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교섭’에서 그려진 황정민과 현빈의 어정쩡한 브로맨스가 그랬습니다. 서로 삐걱대던 두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면서 우정을 쌓는다는 기본 설정은 나쁘지 않지만, 갈등을 겪는 이유와 화합하는 과정을 다소 빈약하게 묘사했습니다. ‘리바운드’의 천기범과 배규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강양현 코치를 연기한 안재홍의 호연은 인상적입니다. 능청스러우면서도 패기 있는 입체적 캐릭터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연기했습니다. 극의 재미와 감동은 대부분 안재홍의 대사와 열연을 통해 전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출도 아쉬운 편입니다. 좋게 말하면 공식을 잘 따른 영화적 연출이고, 직설하자면 작위적이고 뻔한 연출입니다. 극적인 순간에 거는 슬로우와 클로즈업된 표정, 흥분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하는 캐스터…전혀 새로울 것 없는 연출법이었습니다.

한국 스포츠 영화에서 코미디는 빼놓을 수 없죠. ‘리바운드’도 곳곳에 웃음 포인트를 심어뒀는데, 취향에 따라 호오가 강하게 갈리겠습니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개그 코드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웃음을 자아내기 보다는 ‘콩트’로 웃기는 방법을 택했는데, 대부분 예측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예컨대, 슛을 하는 장면에서 잔뜩 기대되는 음악을 깔아놓는데 실제 슈팅은 골대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겁니다. ‘한국 영화 좀 봤다’ 하는 사람은 웅장한 음악이 나오고 슬로우를 거는 순간부터 ‘아, 슛이 턱도 없겠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천기범을 둘러싼 논란도 흥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천기범은 영화 제작이 한창이던 2022년 1월 음주운전 적발로 한국 프로리그에서 은퇴했고, 이후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연예매체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준비하던 스태프들 모두 ‘멘붕’에 빠졌다”면서도 “애초에 ‘리바운드’ 출발 자체가 누구 한 명이 주인공이 아니다. 한때 농구 선수였으나 포기한 스물다섯 살 청년(강양현 코치)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외된 청년들이 함께 여행을 가는 이야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천기범은 지난해 6월 일본행 배경에 대해 “타지에서 혼자라도 농구만은 계속하고 싶다는 게 유일한 바람”이라며 “죄책감과 후회, 부끄러움으로 마음이 무겁고 두렵기도 하지만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아 선택하게 됐다. 잘못의 무게를 잊지 않고 성실히 살아가겠다”고 공개 사과한 바 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리바운드’에 녹아있는 장 감독의 따뜻한 시선은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핵심 요인입니다. 장 감독 스스로 명대사로 꼽은 “농구는 멈춰도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는 관객에게 작은 위안이 됩니다.


영화 ‘에어’.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에어’.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에어 조던’ 탄생 비화 담담하게 그린 ‘에어’

‘리바운드’와 같은 날 개봉한 ‘에어’ 역시 실화에 기반한 농구 관련 영화입니다. 1980년대 중반 농구화 시장 점유율 꼴찌였던 나이키가 NBA 신인이었던 마이클 조던에게 과감히 ‘베팅’해 업계 1위로 오른 신화를 그렸습니다. 할리우드 스타 밴 애플렉이 연출했고 ‘절친’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벤 애플렉은 나이키 대표, 맷 데이먼은 선수 스카우터를 맡았습니다.

나이키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평가받지만, 시작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1980년대 농구화 시장 서열은 컨버스가 1위, 아디다스가 2위였고 나이키는 3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과 콜라보해 출시한 ‘에어 조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는 나이키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습니다. 영화 ‘에어’는 나이키가 조던을 설득해 신발을 만든 과정을 보여줍니다.

‘에어 조던’ 신화는 나이키 농구화 부서에서 선수 스카우터로 일한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 분)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소니는 1984년 당시 대학 농구에서 주목받아 미국프로농구(NBA) 데뷔를 앞두고 있던 신인 선수 마이클 조던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소니는 조던이 농구계 전설로 성장할 것을 확신하고 회사에 과감한 투자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당시 나이키는 인지도가 낮고 예산도 부족한 회사였습니다. 좋은 선수들은 모두 컨버스, 아디다스와 계약하길 원하니 애초에 중급 선수들만 노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소니는 조던을 위해 회사의 모든 걸 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용 예산을 전부 조던이라는 선수 한 명에 ‘올인’해야 한다며 나이키 창립자 필립 나이트(벤 애플렉 분)를 끈질기게 설득합니다. 조던이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는데 20년 경력을 건다고 호언장담하는 소니에게 결국 필은 두 손을 들었고, 예산 지원을 약속합니다.

문제는 조던입니다. 마이클 조던은 아디다스의 광팬이고, 에이전트는 나이키와 미팅조차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니는 포기하지 않고 조던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노스캐롤라이나로 향합니다. 에이전트를 거치지 않고 선수의 가족을 만나는 무례를 범한 이상, 소니는 이 계약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소니는 업계를 떠나야 하는 처지입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과한 연출이나 신파를 배제한 채 ‘에어 조던’의 탄생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흡인력은 소니를 비롯한 나이키 구성원들의 열정에서 나옵니다. 마케팅 임원인 롭(제이슨 베이트맨 분)과 농구화 부서 책임자 하워드(크리스 터커), 디자이너인 피터(매슈 마허)가 한 팀이 되어 각자 제역할을 해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또 마이클 조던이 자신의 어머니 델로리스 조던 역으로 직접 추천한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굿 윌 헌팅’(1997)과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21)에 이어 세 번째로 협업한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의 노련한 연기 호흡은 재미 보증 수표입니다. 이사회의 반대가 뻔한데도 소니를 믿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창립자 필립의 인간적인 면모는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어렵게 성사된 조던과의 미팅에서 소니가 진심을 담아 쏟아내는 연설은 가히 명장면입니다.

나이키 슬로건인 ‘Just do it!’의 유래나 ‘에어 조던’ 로고 탄생기, 나이키라는 사명과 스우시 로고의 탄생 비화를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다만 힘을 빼고 만든 잔잔한 영화인 만큼, ‘인생 영화’로 꼽을 정도로 큰 감동을 선사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머니 볼’처럼 길이 회자될 스포츠 영화로 남을지는 의문입니다.

마이클 조던 영화지만 조던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점도 아쉽습니다. 극 중 조던의 얼굴은 자료화면을 통해서만 노출되고, 간혹 조던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뒷모습이나 목소리만 나옵니다. 이에 대해 벤 애플렉은 “마이클 조던은 관객들이 상상하는 이미지 그대로 남겨두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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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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