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때 ‘반짝’인 별빛, 1500광년 날아 오늘밤 지구에 닿았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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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왕도 김해천문대 별자리여행
부산 금련산수련원 시민천문대
국립부산과학관 등서도 ‘별 볼 일’

김해천문대 제1관측실에서 한 어린이가 200mm 굴절망원경으로 ‘M44성단’(별무리)을 관찰하고 있다. 김해천문대 제1관측실에서 한 어린이가 200mm 굴절망원경으로 ‘M44성단’(별무리)을 관찰하고 있다.

“밤하늘이 반짝이더라…문득 네 생각이 나더라…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국민 남자친구’ 박보검이 불러 뭇 여성들의 마음을 녹인 ‘별 보러 가자’ 노랫말이다. 찬찬히 음미해 보면 굳이 박보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아니라도 마음이 달달해진다. 고개를 들었을 때 반짝이는 밤하늘이라니. 그 순간 문득 생각나는 이가 곁에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대와 별을 제대로 함께하기 위해선 빛 공해가 덜한 도심 외곽으로 떠나는 게 좋다. 마침 요즘은 사계절 중 가장 화려한 ‘겨울철 별자리’를 관찰하기 좋은 시기다. 완연한 봄, 겨울 별들을 만나러 부산 근교 천문시설을 찾았다.

■ 별 볼 일 있는 ‘봄’

부산에서 가깝고 경남지역 주민들에게도 익숙한 대표 천문시설은 ‘김해천문대’다. 국내 3번째로 2002년 들어선 공립천문대로 매년 10만 명 가까이 ‘두 발로’ 찾는다. 분성산 아래 천문대 입구에 주차한 뒤 15분 남짓 걸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인기다.

오르는 길은 많이 힘들지도, 심심하지도 않다. 가로등엔 태양을 비롯해 수성·금성·화성 등 태양계 행성 조형물이 설치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형광물감을 흩뿌린 바닥은 눈부신 은하수를 닮았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김해 시가지 야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천문대다.

분성산 아래 김해천문대 입구. 차량을 통제하기 때문에 인근에 주차를 한 뒤 15분 가량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분성산 아래 김해천문대 입구. 차량을 통제하기 때문에 인근에 주차를 한 뒤 15분 가량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가로등마다 태양계 천체를 설명하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가로등마다 태양계 천체를 설명하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김해천문대는 우주영상·가상별자리·천체관측, 3가지 프로그램이 기본이다. 실내에서 진행하는 우주영상·가상별자리와 달리 천체관측은 하늘이 허락해야 가능하다.

천체관측에 앞서 가상 별자리 프로그램으로 사전 지식을 익히면 좋다. 천체투영실 의자 등받이를 눕힌 채 위를 응시하면, 돔 천장에 신비로운 밤하늘이 펼쳐진다. 점점이 박힌 별이 처음엔 하얀 점에 불과해 보인다. 잠시 뒤 천문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점을 이은 별자리 그림이 나타난다. 별은 그림의 눈, 어깨, 발, 목걸이가 되어 반짝인다. 오리온자리-큰개자리-작은개자리-쌍둥이자리-마차부자리-황소자리의 으뜸별 6개를 연결하면 육각형의 ‘다이아몬드’가 그려진다. 겨울철 별자리를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다.

우주영상도 천체투영실에서 시청하는데, 3가지 작품이 있다. ‘익스플로어(Explore)’ ‘그래비티(Gravity)’는 초등 고학년 이상, ‘보이저(Voyager)’는 만 4세 이상 관람이다. ‘보이저’는 1977년 태양계 외부 탐사를 위해 인류가 쏘아 올린 ‘보이저 1·2호’에 대한 이야기다. 지구에서 출발해 지금은 태양계 외곽 성간 물질로 진입한 보이저호의 여정을 보며, 꿈 같던 우주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온다.

천체투영관에 투영된 겨울철 별자리. 별자리 6개의 으뜸별을 이으면 다이아몬드 모양이 된다. 천체투영관에 투영된 겨울철 별자리. 별자리 6개의 으뜸별을 이으면 다이아몬드 모양이 된다.
김해천문대 보조관측실. 슬라이딩 돔 천장이 열리면 별이 수놓은 밤하늘이 펼쳐진다. 김해천문대 보조관측실. 슬라이딩 돔 천장이 열리면 별이 수놓은 밤하늘이 펼쳐진다.

별자리와 우주 맛보기를 마쳤다면 드디어 천체관측 시간이다. 오후 9시께 전시동에서 관측동으로 자리를 옮겨 먼저 안내·설명을 듣는다. 이윽고 슬라이딩 돔 천장이 서서히 열리고,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머리 위로 점점이 하얀 보석이 박힌 밤하늘이 펼쳐진다. 가상별자리보다 빛은 약하지만 위치나 모양은 똑같은 ‘겨울철 별자리’다. 그런데 왜 겨울일까. 계절별 별자리는 ‘자정’을 기준으로 한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간에 따라 별자리도 움직이기 때문에, 봄에는 자정에 봄철 별자리가 나타나고, 그보다 앞선 오후 9시쯤엔 겨울철 별자리를 관찰할 수 있다.

천체관측은 실내 프로그램 예약자가 우선인데, 특히 토요일에 방문객이 몰린다. 최대 40명까지 많은 인원이지만 3개 조로 나눠 관측실 3곳을 돌아가며 관찰하기 때문에 대기 시간은 길지 않다. 태양보다 800배나 큰 오리온자리의 초거성 ‘베텔기우스’는 붉은 빛이 감돈다. 태어난 지 800만 년밖에 안 됐지만 몸집이 너무 커 벌써 소멸 중이다. 매일 밤 만나는 달도 망원경 렌즈를 통하니 새롭다.

제2관측실에서 관찰한 ‘M48성단’의 반짝임은 무려 1500광년을 날아온 빛이다. 대략 우리나라가 삼국시대 때 출발한 빛을 지금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별빛 하나하나가 ‘타임머신’인 셈이다.

보조관측실에서 한 어린이가 소형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고 있다. 보조관측실에서 한 어린이가 소형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고 있다.
천체망원경 렌즈에 담긴 달.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천체망원경 렌즈에 담긴 달.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 별 하나에 추억과…

김해가 멀다면 부산에서도 별자리여행을 떠날 수 있다. 부모 세대도 익숙한 금련산청소년수련원에는 부산시민천문대와 천체투영관이 있다. 장마철인 7월을 제외한 매월 둘째·넷째 주 토요일 저녁에 공개관측행사(일부 유료)를 진행한다. 천체투영관에서 영상물과 가상별자리를 보고, 천문대에서 무료로 천문강의와 천문관측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매월 둘째·넷째 주 금요일엔 가족 프로그램(‘별이 빛나는 가족사랑’·유료)도 운영한다. 교육실에서 천문해설사 강연을 들은 뒤, 시민천문대 옥상에서 생생한 해설과 함께 천체관측을 해 볼 수 있다.

금련산은 부산 도심이지만 의외로 별이 잘 보인다. 너무 밝게 빛나 인공위성인줄 알았던 점들이 실은 1·2등성 짜리 진짜 별이었음을 알고 나니, 밤하늘이 새롭게 보인다.

서쪽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눈에 들어온다. 선조들이 샛별이라 이름 붙인 ‘금성’이다. 금성은 태양빛을 반사해 빛나기 때문에 별이 아니라 ‘행성’이지만, 여느 1등성보다 훨씬 밝다. 오후 9시쯤, 서쪽에서 금성이 지는 와중에 반대편 동쪽에선 붉은 달이 떠오른다. “와, 너무 멋지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온다. 광안대교를 벗삼은 달에 얼마나 시선이 머물렀을까. 어느새 구름이 달을 집어삼킨다.

부산시 금련산청소년수련원의 천체투영관. 2017년 문을 열었다. 부산시 금련산청소년수련원의 천체투영관. 2017년 문을 열었다.
금련산청소년수련원 시민천문대 옥상에서 소형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할 수 있다. 전깃줄에 걸린 밝게 빛나는 점이 ‘금성’이다. 금련산청소년수련원 시민천문대 옥상에서 소형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할 수 있다. 전깃줄에 걸린 밝게 빛나는 점이 ‘금성’이다.

요즘은 비구름뿐만 아니라 미세먼지도 천체관측의 걸림돌이다. 바꿔 생각하면 지구의 날씨는 별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만드니, 이 또한 별자리 여행의 묘미다. 달도 별도 매일 뜨기 때문에 너무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오늘 못 만났다면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계절마다 다른 별자리를 만날 수 있으니, 부지런히 올려다보면 비싼 별들도 언젠가는 얼굴을 내어 준다. 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금련산에서 내려다보는 도심 야경도 충분히 아름답다. 금련산청소년수련원 가족 프로그램의 경우 LED 성단 무드등 만들기, 가족사진 머그컵 등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도 제공한다.

부산에선 이밖에 국립부산과학관, 부산창의융합교육원 등지에서도 천문체험을 해 볼 수 있다. 국립부산과학관은 국내 최대 규모인 360mm 굴절망원경을 갖췄다. 태양을 관측하는 주간 프로그램(매일)과 별자리와 우주를 관찰하는 야간 프로그램(수·일요일)을 운영한다.

부산시교육청 산하 창의융합교육원도 이달 말부터 월 1회 ‘가족과 함께하는 별자리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천체투영실 관람, 천체 공작, 천문이론 수업에 이어 천체망원경으로 계절별 별자리와 달을 관찰해 볼 수 있다.

별과 좀 더 자주 만나고 싶다면 집에서도 가능하다. 천체관측 프로그램에 쓰이는 이동식 천체망원경은 100만 원 안팎. 억만장자나 우주비행사처럼 우주선을 타지 않고도 매일 밤 별자리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 투자해 볼 만하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시민천문대 옥상에서 바라본 달과 광안대교 야경. 자연과 인공의 만남이 꽤나 잘 어울린다. 시민천문대 옥상에서 바라본 달과 광안대교 야경. 자연과 인공의 만남이 꽤나 잘 어울린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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