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산 동서고가, 그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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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파리 녹지 축 ‘프롬나드 플랑테’
동서고가에 강력한 영감 제공
하늘숲길, 지역 활성화 기여 전망
지역 주민 수용성이 변신의 관건
스스로 부산의 미래 선택해야

디자인회사 아키픽셀이 제작한 동서고가 하늘숲길 조감도.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디자인회사 아키픽셀이 제작한 동서고가 하늘숲길 조감도.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지난해 거의 20년 만에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다. 머무는 동안 공원과 정원을 중심으로 발품을 팔았다. 2024년 하계올림픽을 준비 중인 파리시는 안 이달고 시장이 표방하는 ‘변화하고 혁신하는 파리’라는 기치 아래 샹젤리제 거리의 1.7km 정원화를 비롯하여 도시 전체가 녹(綠)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심지어 이면도로까지도 차로 하나를 비우고 정원으로 조성하고 있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만성적 차량 정체로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던 20년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거리를 지배한 것은 자전거의 물결이었다. 놀라운 변신이었다.

정작 가슴 뛰게 만들었던 현장은 ‘푸른 나무와 식물들로 조성된 산책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였다. 파리 12구에 옛 철도 길을 따라 높이 10m, 총 4.5km 길이로 만들어진 이 기다란 녹지 축은 강력한 영감을 제공했고, 평소 눈여겨봐 왔던 부산 동서고가가 겹쳐 연상되었다. 고가 아래는 공방과 상가 등이 입점해 있었다. 옳거니 했다.

귀국하자마자 반년 정도 ‘부산 동서고가 하늘숲길 포럼’을 준비했고 그 첫 결과물이 지난 3월 선보인 ‘부산 동서고가와 도시를 바꾸는 시민의 상상력’이란 주제로 열린 세미나였다. 부제는 ‘기후위기에 답하고 지역 활성화와 시민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되는’ 동서고가였다.

틈이 날 때마다 현장을 방문했다. 철거를 주장하는 지자체와 고가 주변의 상황도 살폈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지만 안전상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철거를 주장하는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고가도로를 바라보기도 했다. 어느 날 졸지에 벽이 되어 단절과 소음에 노출된 시간이 내게도 전해졌다. 하물며 존치라니, 그 억하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너머이다. 예컨대 고가 주변 약 50만 주민의 이해가 반전되어,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희망과 활력소를 창출해 내는 장소가 된다면, 그리하여 부산시의 도시계획, 공원녹지, 보행과 이동, 건축, 관광, 경제를 관통하는 2040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그래서 단절이 소통과 연결이 되고 소음 대신 쾌적함으로 바뀐다면, 나아가 연계 가능한 크고 작은 도시 프로젝트와 결합하여 시너지를 높인다면, 장담컨대 뉴욕 하이라인쯤 우습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 해 8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적 명소 하이라인도 폐선 부지로 한때 흉물 취급을 받았지만 1.6km의 선형공원으로 바뀌면서 지위는 일변했고, 지금은 뉴요커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 시작을 뉴욕시민이 열었다.

존치가 결정된다면 부산 동서고가는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며 뉴욕 하이라인보다 휠씬 매력적인 장소가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길이가 최장 14km에 폭이 4차선 19~40m로서 언급한 두 선례보다 길고 넓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서고가는 단순한 녹지 축이 아니라 도입할 수 있는 거리와 연결 고리가 널려 있어 시방 부산시가 목을 매다시피 올인하는 월드 엑스포를 능가할 수 있다.

한데 이 모든 상상의 기본은 지역 주민의 수용성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 어떤 정보도 주민들에게 제공된 것이 없다. 그냥 철거냐 존치냐로 가부를 결정지을 일이 아니다. 장단점과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고 공부하며 지역민 스스로가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보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작금의 기후재앙 시대 탄소흡수원으로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이 도시에 머물게 할 배려이자 선물이기도 하다.

물론 관점에 따라 상반된 이해가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논쟁이 깊어질수록 다양한 아이디어와 문제 해결책이 분명 도출될 것이라 믿는다. 동서고가의 현명한 이용은 기존의 도시개조 프로젝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지역민과 시민 모두에게 이익으로 귀결되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부산그린트러스트는 그 길에 징검다리가 되겠다. 부산시도 동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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