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총선 제도 개선,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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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원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국회 전원위원회 토론·합의조차 없어
대의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 훼손
양대 정당 기득권 구조 고착하고
군소 정당에 불리한 제도만 고집
국회의원 특권 폐지·사표율 축소
후진적 정치 개선 위한 합의안 시급

총선 제도 개편이 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국회는 4월 10~13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의원 100명(민주당 53명, 국민의힘 38명, 비교섭단체 9명)의 총선 제도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들었다. 일종의 제안 과정으로 토론과 합의는 없었다. 국회는 오는 6월까지 전원위 발언에서 나온 공통의 내용을 소위원회와 워킹 그룹을 통해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 합의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국회가 왜 총선 제도 개편에 나선 것일까. 좋은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권자 국민의 한 표 한 표가 소중하고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하고, 주권자 국민의 표심이 국회 의석에 그대로 왜곡 없이 반영되어야 한다. 비례성이 확보된 총선 제도, 즉 정당이 얻은 득표율만큼 국회 의석률을 가져가면 그게 좋은 제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의 제도는 기본적으로 소선거구 단순다수결제로 비례성이 아닌 불비례성을 보여 왔다. 양대 정당은 선거 결과에 따라 번갈아 가며 자신의 정당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군소정당은 항상 득표율보다 더 적은 의석을 가져갔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총선 제도는 주권자 국민의 표심을 왜곡하고 양대 정당의 기득권 공존을 공고화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제도가 우리에게 아주 안 좋은 정치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거대 양당이 지역주의 정치, 이념 정치, 진영 정치, 혐오 정치를 동원하여 양당 기득권의 적대적 공존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기여했다. 국민을 진보와 보수로 갈라 서로 싸우고 혐오하게 만들면서 양당 체제를 유지하는 자양분으로 활용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제도는 50%가량의 아주 높은 사표율을 보여 왔다. 총선에서 주권자 50%의 표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표로 사라진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주권자 각자의 한 표는 동등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소위 말하는 표의 등가성 문제다. 사표율 50%는 표의 등가성을 크게 무너뜨리고 선출된 정치인의 대표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양대 정당은 지역주의와 결합함으로써 영호남을 나누고 정당 깃대만 꽂아도 당선되는 자신들의 부동의 요새를 확보해 왔다.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양당제 유지를 위해 오히려 활성화해 온 것이다.

그러니 총선 제도를 바꾸고 그것을 통해 지금의 병폐적인 양당제를 개편하는 것이 우리 정치 개혁의 근본적인 핵심 과제이다. 높은 비례성을 확보하고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는 일이 이 지긋지긋한 나쁜 정치를 끊어 내는 지름길이다. 이렇듯 우리 공동체와 공익을 위해 제도를 개편해야 하는 필요성은 명확한데, 이번 국회 전원위에서 보여 준 양대 정당 다수 의원의 모습은 당파적이고 사익 추구적이며 퇴행적이라 지극히 실망스럽다. 총선 제도 개선의 기본적인 방향은 비례성 확보, 사표 방지, 양당제 폐해 극복, 지역주의 해소, 이념 정치와 진영 정치 및 혐오 정치 해소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선거전문가들은 이런 목적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비례의석 확대,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추진, 대선거구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제안해 왔다. 그런데 양대 정당 의원들은 이번 국회 전원위에서 현행 지역구 의석(253석) 고정을 당연시하거나 비례의석 완전 폐지 등을 주장했으며,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보다 준연동형(50%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 게다가 비례성을 확보하는 또 다른 방안인 대선거구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한 양대 정당 의원은 민주당 의원 극소수였다. 한마디로 대다수 양대 정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불비례성과 높은 사표율을 유지하고 군소 정당에게 불리한 제도를 주장한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의 국회 전원위 발언은 지극히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김기현 대표는 의원 정수를 30명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총선 제도 개선 노력을 시작부터 부정하는 속내를 보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와 과거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퇴행적 회귀 등을 주장하고 심지어 비례의석 완전 폐지까지 제안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총선 제도를 개선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 준 것이다.

이렇게는 안 된다. 진영 싸움과 혐오 정치로 점철 중인 후진적인 한국 정치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게 대한민국 공동체와 국민이 사는 길이다. 언제까지 후진적인 정치가 대한민국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게 방치할 것인가. 국회는 의원들의 특권과 기득권을 축소하고 폐지하는 동시에 약속대로 오는 6월까지 선거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 발전적인 합의안을 내놓기 바란다. 국민은 이런 선진 정치에 너무나 목말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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