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소소한 웃음 잡은 ‘드림’…양조위의 누아르 ‘무명’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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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2019)으로 ‘최연소 천만 감독’ 타이틀을 따낸 이병헌 감독이 10년이나 준비했다는 영화 ‘드림’이 지난 26일 개봉했습니다. 박서준과 아이유가 주연으로 캐스팅 된 점도 영화 팬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드림’과 같은 날 개봉한 추리 스릴러물 ‘무명’도 출연진에 눈길이 갑니다. 양조위(량차오웨이)와 왕이보가 호흡을 맞춰 중국 현지에선 이미 히트를 쳤습니다. 두 작품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갔습니다.


영화 ‘드림’과 ‘무명’.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주)콘텐츠판다 제공 영화 ‘드림’과 ‘무명’.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주)콘텐츠판다 제공

웃음보다 감동 강조한 ‘드림’

‘드림’은 실화 기반 스포츠영화입니다. 2010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홈리스 월드컵’에 한국 대표팀으로 나선 노숙인들의 활약상을 각색했습니다.

‘홈리스 월드컵’은 노숙인, 시설거주자 등 주거 취약계층이 국가대표로 참여해 풋살 경기를 치르는 국제대회입니다. 영국의 노숙인 자활 지원 잡지사 ‘빅이슈’의 제안으로 2003년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개최됐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2010년에 최초로 참가했습니다. 당시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10개국이었는데, 이 가운데 한국은 가장 열심히 뛰었다는 평가와 함께 ‘최우수 신인팀’ 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성적은 65개국 중 43위에 그쳤지만, 부상 때문에 일부 선수가 못 뛰는 악조건 속에서 투혼을 발휘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초 한국 선수들은 대회 참가에 필요한 비용인 3000만 원도 구하지 못해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습니다. 축구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기관과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이 이들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영화 ‘드림’은 이병헌 감독이 이러한 스토리에 감명을 받고 오랜 시간 준비해 내놓은 작품입니다. 이 감독은 지난달 30일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쓰는 단계까지 하면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드림의 주인공은 프로 축구선수 출신인 윤홍대(박서준)와 다큐멘터리 감독 이소민(아이유)입니다. 잘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사회적 물의를 빚은 홍대는 연예계에 발을 들이려 합니다. 홍대를 키우고 싶은 연예기획사는 ‘이미지 변신이 필요하다’며 홈리스 월드컵 선수단 감독을 맡아보라고 합니다. 소민은 홍대와 선수단이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보려는 PD입니다.


영화 ‘드림’.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드림’.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두 사람의 공통점은 홈리스 월드컵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이들에게 대회는 입신양명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감성팔이’로 시청률을 잡아보려는 소민은 실력보다는 애틋한 사연이 있는 노숙인을 선수로 뽑자는 황당한 제안을 하는데, 홍대는 별 생각 없이 이에 수긍합니다.

영화는 한국 스포츠 영화에서 숱하게 봐왔던 순서대로 전개됩니다. 오합지졸 아마추어들이 한데 모여 고된 훈련을 수행하고, 어찌저찌 힘겹게 나선 실전에서 위기를 겪지만, 선수들이 합심해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는 식입니다.

서사가 뻔하면 연출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여기서도 참신함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초반부터 노숙인 선수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소개하는데, 그리 가슴에 와닿는 건 없습니다. 감정이입이 쉽지 않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코믹’ 점수도 많이 아쉽습니다. 일부 헛웃음을 짓게 하는 대목은 있지만 작위적인 ‘억지웃음’을 짜내는 장면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축구를 처음 하는 노숙인들이 온갖 몸개그를 펼치는 초반 씬은 ‘관객이 만만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치합니다. 무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니 극장 안의 그 누구도 이 장면에서 웃지 않습니다. 축구를 할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어리숙하게 그려진 노숙인들의 모습은 약간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사연만 놓고 보면 어쩌다 노숙인이 된 안타까운 사람들인데, 행실을 보면 어딘가 모자라고 바보 같습니다.

그래도 ‘영혼 없는 듀오’ 박서준과 아이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합니다. 두 사람이 쏟아내는 신박한 대사에서 1600만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 ‘극한직업’ 감독의 역량이 엿보입니다. 특히 눈이 아닌 입으로만 웃는 아이유의 ‘가짜웃음’ 연기가 일품입니다. 월드컵 출전이라는 꿈을 가지게 된 노숙인 선수단에게 용대와 소민이 서서히 동화되며 열정을 되찾는 과정은 소소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족 서사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신파로 느껴졌습니다. 극중 ‘나쁜 사람’을 자처하는 연예 기획사 대표는 홍대에게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신파라니까”라고 말합니다. 관객 입장에선 불필요한 신파를 집어넣는 감독이 나쁜 사람입니다. 한국 스포츠 영화 단골손님인 동네 건달도 이제는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드림’.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드림’.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축구를 좋아하는 기자가 영화를 보며 가장 실망했던 점은 경기 장면입니다. 축구를 소재로 만든 영화인데, 축구 경기가 전혀 실감나지 않습니다. 롱테이크로 찍은 생동감 있는 장면은 드물고, 컷들이 뚝뚝 끊깁니다. 슛과 선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게 아니라 슛하는 컷, 선방하는 컷이 따로 놉니다. 두 컷을 각각 촬영해 이어붙인 장면이라는 티가 나서 경기 장면에 몰입하기 힘듭니다. 최근 개봉한 농구 영화 ‘리바운드’처럼 박진감 있는 경기 장면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선수들의 열정을 보여주는 방식도 단조롭습니다. 대회에 첫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실력도 체력도 부족한 ‘언더독’입니다. 그래도 선수들은 유럽 강팀을 상대로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펼칩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거친 몸싸움을 통해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려 한 것 같은데, 보고 있자니 이게 축구인지 레슬링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옷을 잡아당기고 다리를 걸고 몸을 밀치는 파울성 플레이가 난무하는데 심판은 반칙을 불지 않습니다. 비매너를 ‘열정’으로 포장해버리니 어디서 감동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포츠 영화 단골인 작위적 연출법도 등장합니다. 관객에게 “자~여기서 감동 받으면 됩니다”라고 외치는 듯한 올드한 감동 코드에 당황했습니다. 슬픈 음악을 배경으로 슬로우를 걸고 진지한 표정을 바짝 클로즈업하는 것까지, 전형적인 클리셰입니다.

특히 한국 골키퍼의 처절한 선방쇼는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몸이 부서져라 강슛을 막는 골키퍼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는 동료들…20년 전 영화인 ‘소림축구’(2001)를 오마주한 것이라면 인정입니다. 이 거친 액션들을 소화한 김종수·고창석 등 베테랑 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감동적입니다.

경기를 계속 치를수록 클리셰는 활개를 칩니다. 모든 해외 관중들이 한국을 응원하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희망찬 음악이 귓가를 때리지만 아쉽게도 심장이 요동치지는 않았습니다.

비싸진 티켓값을 고려하면 ‘드림’은 주변에 강력히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친절하고 직관적이라 큰 기대 없이 가볍게 보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이병헌 감독이 영화 개봉 전 SNS에서 말한대로 “부모님과 함께 관람하기”에는 괜찮은 가족 영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기자의 앞줄에는 어르신 두 분이 앉아계셨는데요, 기자가 억지웃음 또는 신파라고 생각했던 장면에서 어르신들은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웰메이드 누아르 ‘무명’…불친절하지만 눈은 즐겁다

‘양조위의 누아르 첩보물.’ 지난 26일 국내 개봉한 청얼 감독 작품 ‘무명’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무명’의 시대적 배경은 중일전쟁입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고 상하이를 점령한 1941년, 상하이에서 결성된 비밀 결사는 일본 조직에 첩보원들을 심어놓습니다. 그러나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혼란이 이어지고, 이름 없는 스파이들의 암투가 벌어집니다.

영화는 중일전쟁 역사를 알고 보는게 좋습니다. 1937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 당시 중국은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중국 대륙을 장악했던 장제스의 국민당은 1927년부터 공산당 토벌에 나섰고, 공산당은 격렬히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중국 땅을 넘보자 국민당과 공산당은 내전을 멈추고 손을 맞잡습니다. 고육지책으로 연합한 양측은 여전히 갈등을 벌이면서도 각자의 방식대로 항일전쟁을 이어갑니다. 중일전쟁 중 일본은 난징대학살을 비롯해 용서받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1945년 패망합니다.

극중 허 주임(양조위)은 일본 측에 침투한 상하이 비밀 조직 요원입니다. ‘스포일링’이 아니라, 공식 포스터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설정입니다. 허 주임 밑에서 일하는 예 선생(왕이보)은 어느 편에 섰는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인물입니다.

누아르 영화 팬들이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는 영상미입니다. 첩보물은 일단 소위 ‘때깔’이 좋아야 보는 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긴장하고, 의심하고, 고뇌하는 스파이 연기를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습니다. 여기에 감독의 역량으로 무겁고 진중하면서도 긴장되는 분위기를 잘 연출한다면 금상첨화입니다. 기자가 최근 본 근대 첩보물 중에선 ‘더 스파이’와 ‘공작’이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했습니다.


영화 ‘무명’. (주)콘텐츠판다 제공 영화 ‘무명’. (주)콘텐츠판다 제공

‘무명’ 역시 이 조건들을 갖춘 영화라는 점에서 고평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다. 양조위와 왕이보가 멋드러진 수트를 차려입고 펼치는 호연은 흠잡을 데 없습니다. 냉혹하면서도 따뜻한 스파이 양조위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이 영화가 시네필에게 소구할 수 있는 강점입니다. 대세배우로 떠오르는 왕이보도 강렬한 감정연기로 제역할은 해냈습니다. 양조위와 왕이보가 맨손으로 혈투를 벌이는 클라이맥스 액션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치열하고 실감납니다. 비밀스러운 정보책 ‘미스 천’(저우쉰)과 예 선생의 약혼녀 ‘미스 방’(장정의)은 갈등 구조를 심화시킵니다. 긴장감이 흐르는 서스펜스 연출도 어색하거나 허술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묵직한 저음역대의 배경음악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감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라운드 고출력 스피커에서 내뿜는 무거운 음악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킵니다. 다만 조금 과한 측면도 있습니다. 몇몇 장면에선 ‘음악을 빼는게 나았겠다’ 싶기도 합니다.

아쉬운 점도 남습니다. ‘무명’은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중일전쟁을 배경으로 하는데, 흐름이 뒤죽박죽이라 스토리를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플래시백의 과용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덕분에 단조롭게 느껴지지는 않고, 나름의 반전 효과를 배가한다는 순기능은 있습니다.

비슷한 느낌의 한국 영화를 찾자면 두 남자의 대결구도를 그린 ‘헌트’(2022)가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극중 흐름을 한 번 놓치면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재관람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불친절함을 갖췄습니다. 항일 스파이 영화라는 배경 설정만 놓고 보면 올해 개봉한 ‘유령’과도 유사합니다.

‘무명’의 또 다른 불호 요소는 중국식 ‘국뽕’입니다. 국민당은 배제한 채 공산당의 항일투쟁을 중점적으로 다룬 점은 다소 편향적입니다. 하지만 외국 관객들이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노골적이진 않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100년 전 일”에 대해 100년째 사과하지 않고 있는 전범국 일본을 겨냥한 권선징악이라는 메시지가 뚜렷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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