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모 따돌림, 아동학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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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아이가 만나기 싫다”라는 이유로
자녀 부모 면접교섭 거부 사례 많아

법원 명령 불이행에 과태료 처분 고작
가스라이팅 같은 불행한 사고 이어져

양육자 변경, 심리치료 대책 필요
천륜인 부모 역할은 계속되어야

“아빠.. 나는 그냥 아빠 안 만났으면 좋겠어.”

얼마 전 이혼을 한 당사자가 연락이 와서는, 면접교섭일에 딸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는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이혼 전 사이가 좋았던 딸은 어느 순간 아빠를 멀리했다. 딸이 어려서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것 같아 양육권을 상대방에게 주었고, 그래도 한 달에 두 번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일이 있기에 위안을 삼았는데, 그 약속은 좀처럼 쉽게 지켜지지 않더니, 급기야 자녀가 면접교섭을 거부했다. 이른바, ‘부모 따돌림’을 짐작게 하는 경우인데, ‘부모 따돌림’이란 이혼 후 아이를 키우는 양육 부모가 자녀에게 비양육 부모의 험담을 하거나 만남을 거부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말한다.

얼마 전 인천에서 발생한 故 김시우 군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경우도, 친모는 아이를 만나고 싶어 해도 친부와 계모에 의해 면접교섭이 차단됐다고 한다. 친부는 “당신이 나타나면 가정의 화목이 깨진다, 아이는 잘살고 있다”며 친모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고, 계모는 “먼발치서 보다가 걸리지도 마, 나랑 진짜 전쟁이야”라며 친모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면접교섭을 방해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친모가 무작정 학교로 찾아갔더니, 아이는 세뇌라도 당한 듯 친모와 말도 섞지 않으려 하고, 친모가 학교에 왔다는 걸 계모한테 알리려고 전화부터 걸었다고 한다. 아이는 그렇게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음에도 친모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자발적으로 면접교섭을 거부했다는 것인데, ‘부모 따돌림’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여, 친모는 절대로 만나면 안 되는 사람으로 조종당했는지도 모른다. 만일 친모에게 면접교섭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 아이의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면 그런 끔찍한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사소송법 제64조는 이혼 후 양육권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면섭교섭허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가정법원에 이행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행 명령에도 면접교섭을 허용하지 않으면 법원은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양육비는 강제집행, 면허정지 심지어 감치까지 가능한 반면, 면접 교섭 불이행 시에는 과태료만 내려질 뿐, 직접적으로 처벌할 길이 없다. 법원에서 정해 주는 면접교섭일이 되면, 비양육자는 양육자에게 연락하여 만나는 시각, 장소를 정하게 되는데, 양육자는 “아이가 만나기 싫다고 한다”는 명분으로, 비양육자의 면접교섭권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모의 가정폭력을 목격한 경우나, 부모와 갈등을 겪었던 자녀의 경우에는 실제로 부모 따돌림과 무관하게 자녀가 면접교섭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양육자가 비양육 부모를 적대시하며 만나지 말 것을 강요할 경우, 양육자에게 생존을 의지해야만 하는 자녀 입장에서는 이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이가 면접교섭을 거부할 경우 법원이 개입하여 강제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외국에서는 아이의 면접교섭 거부가 진정 자의로 내린 결정인지, 세뇌와 조종의 결과인지 부모 따돌림 행동 유형을 규정해서 법원의 참고 기준으로 삼고 있다. 영국의 경우 법원에서 부모 따돌림이 의심되면 양육권을 변경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고, 독일의 경우 부모 중 일방이 면접교섭권을 침해할 경우, 법원의 명령으로 면접교섭보조인을 선임할 수 있고 면접교섭보조인은 부모 사이를 중재하거나 면접교섭방식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도 실질적 면접교섭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률적·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이혼 소송 중 상대방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며 다투고, 양육권 쟁탈을 위하여 전쟁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미움을 자녀에게 주입하게 되고,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자녀에게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부모 따돌림’은 부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자녀에 대한 정서적 학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근간인 부모의 한쪽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우울증, 대인 기피증까지 겪게 될 우려가 있다고 하니,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모 따돌림은 멈추어야 할 것이다.

올해 2월 국내 최초로 부모 따돌림 현상을 연구, 홍보하고 입법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부모 따돌림방지협회’가 출범했다. 이혼 가정에서 벌어지는 ‘부모 따돌림’ 현상을 연구하고, 관련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변호사와 심리 전문가 등이 모였다. 외국처럼 공동양육제도나 양육자 변경 판결, 집단심리치료캠프 등 부모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이에 더해 지난해 면접교섭을 지원해 주기 위하여 부산가정법원 면접교섭센터 ‘징검다리’가 개소하였으니, 면접교섭에 어려움이 있다면 신청하여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 이혼으로 부부는 남이 되지만, 천륜인 부모의 역할은 계속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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