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설국 / 홍일표(1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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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이 같은 눈사람의 언어를 물고 가는

흰 새가 있어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바람의 깃털이라고 했니?

눈사람의 말을 몰래 가져가는 너는

빛 속에서 지워지는 말이라고 했지

잠시 빛을 잡고 반짝이던 사람들

눈사람을 추억하는 그들은 알지

눈사람처럼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불구의 언어를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흩날리다 녹아 사라지는 처음부터 없던 문자를

- 시집 〈조금 전의 심장〉(2023) 중에서


‘눈사람의 언어’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설국일 것이다. 시인은 이 눈사람의 언어를 물어 채가는 흰 새를 본다. 흰 눈과 눈사람, 흰 새, 그리고 눈사람의 언어까지 모두 하얀 곳, 그곳에서 ‘잠시 빛을 잡고 반짝이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시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눈사람처럼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불구의 언어를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흩날리다 녹아 사라지는 처음부터 없던 문자’를 설국의 공중에 띄운다. 그런 문자로 쓰는 게 좋은 시, 새로운 시일 것이다. 언제나 시인은 많지만, 좋은 시인은 드물고 귀하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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