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도마뱀 꼬리 자르기와 탈당 행진곡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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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최근 국민적인 공분 초래한 의원들
국면 회피용 잇단 탈·복당 꼼수 예사

‘도마뱀 꼬리 자르기’ 빗대 거센 비난
하지만 도마뱀의 처절함 전혀 없어

“정당·의원 특권 조정” 여론 자초해
다가온 내년 총선, 국민 예의주시

예전 동남아시아 국가의 한 숙소에서 벽에 붙어서 오르내리는 도마뱀 두 마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저절로 나가기를 기다렸지만, 아예 침대 밑으로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직원의 말에도 밤새 잠을 설쳐야 했다. 사실 대부분의 도마뱀은 사람에게 해가 없다고 한다. 이전엔 우리나라 들판이나 집 마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특유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러 도마뱀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권에 연일 도마뱀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도마뱀과 꼬리 자르기가 한 세트로 묶여 통째 유통된다. 최근 김남국 의원이 가상화폐 보유·거래 의혹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자, 국민의힘에서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에 빗대 민주당의 도덕성과 진정성을 거세게 공격하고 있다.

김 의원이 자초한 의혹의 진실 여부야 관련 기관에 맡겨 두더라도, 또 국민의힘의 비난이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의 탈당은 이제 완연히 하나의 ‘정치 일회용품’이 됐다. 여기에 무슨 정치적 견해차이나 지향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소속 정당과 자신의 이해만 맞는다면 이런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은 김 의원 탈당으로 당과의 연계성을 차단할 수 있고, 김 의원은 당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진다는 모습만 연출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김 의원 스스로 “잠시 떠난다”라고 한 것처럼 복당은 암묵적으로 이미 탈당 속에 포함돼 있다. 이런 장면을 국민이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그러니 누굴 바보로 아느냐는 말이 안 나올 리가 없다.

도마뱀의 잘린 꼬리가 별 탈 없이 나중에 온전히 재생될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요란한 탈당의 행진곡은 응당 복당의 변주곡으로 바뀔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일은 민주당에 예삿일이 됐다. 탈당도 아무렇지 않고, 뒤의 복당은 더 아무렇지 않다. 이러다 탈·복당 무감각의 당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최근 사례를 보면 돈 봉투 의혹으로 탈당한 윤관석·이성만 의원과 송영길 전 대표가 있다. 모두 탈당은 했지만, 역시 복당의 실꾸리까지 자르고 나가지는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위법 판결에도 꼼수 탈당 1년 만에 복당한 민형배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자진 탈당한 뒤 4개월 만에 복귀한 양이원영 의원도 모두 복당의 실꾸리를 동아줄처럼 품고 있다가 되돌아왔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최근 최고위원 문제로 국민의 눈총을 받고 있는 점은 야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오십보백보 정도다. 그러나 헌법 근거를 바탕으로 온갖 제도적 혜택을 누리는 국회의원이 자기로 인해 벌어진 의혹 모면을 위해 탈·복당의 곡예를 부리고, 소속 당은 이를 무슨 큰 결단인 양 여기는 모습은 민주당 쪽이 더 많다. 여야가 이처럼 서로 뒤질세라 꼴불견의 행태만 벌이고 있으니, 모두 지지율이 바닥이다. 지지율만 보면 제1, 2당이 맞나 싶다. 국민들이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국회의원 정수 증가에 그토록 반대하는 심경을 알 만하다.

국회의원의 탈당을 빗대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사실을 알고 나면 적어도 우리 정치권은 함부로 이를 입에 올려선 안 될 것 같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것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필살기라고 한다. 한 번 잘린 꼬리는 다시 생기더라도 원형처럼 재생되지 않고, 또다시 자를 수도 없다. 또 잘린 꼬리로 인한 몸의 전체 균형 상실로 운신에 많은 제한을 받아 오히려 천적의 위험에 더 잘 노출된다고 한다.

단 한 번의 위기 탈출을 위해 앞으로 예상되는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결단할 수밖에 없는 처절함이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에 있다. 당장의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헌신짝 버리듯 쉽게 탈당했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복당을 되풀이하는 정치권의 행태와는 차원 자체가 다른 행위다.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의 속만 뒤집어 놓은 행태가 잇따르면서 국민들 사이에 정당과 국회의원의 특권적 위상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강하게 이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적잖은 설문에서 나타난 것처럼 정당과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는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런 정치권에 현재와 같은 특권적인 위상과 혜택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의 신뢰도나 역할에 비해 과도한 대접을 손볼 때가 됐다는 공감대는 지금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도 정당과 의원들의 헛발질은 그치지 않는다. 마치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한 모습이다.

정치권의 시계는 벌써 다음 4·10 총선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시계 자체를 바꿀 태세다. 도마뱀의 필살기처럼 내년엔 국민의 대대적인 정치인 꼬리 자르기가 행해질지 모른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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