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54만 은둔 청년
논설위원
히키코모리는 일본어로 집에 틀어박혀 사회와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다. 정신질환이 원인이 되는 은둔과 구별하기 위한 시사 용어로 만들어졌다. 영국 등에서 출발한 니트족이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한다면 히키코모리는 관계 맺기나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심각한 단절 상태를 의미한다. 1980년대 말부터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장기 침체가 시작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히키코모리가 우리 사회에 건너온 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때다. 실직자와 비정규직이 쏟아지고 사회와 단절되는 청년들이 늘어나자 일본의 히키코모리를 ‘은둔형 외톨이’로 번역해 우리 사회를 조명했다. ‘오타쿠(덕후)’처럼 일본 특유의 문화적 현상으로 진단하던 서구에서도 2000년대 이후 게임이나 소셜미디어 등장으로 사회와 담을 쌓는 청년들이 늘어나자 히키코모리를 세계적 현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2010년 8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신조어 ‘hikikomori’가 등재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 방안’ 보고서에서 19~34세 청년 가운데 고립·은둔 청년 비율이 2021년 기준 5.0%로 100명당 5명꼴이라고 발표했다. 2021년 청년 인구를 적용하면 53만 8000명에 달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3.1%, 약 33만 4000명이던 데 비해 20만 4000명이 늘었다. 오랜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고립이 심화된 것이다. 청년 고립이 지속되면 고립 장년, 고립 중년, 고립 노년으로 남은 삶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청년기부터 선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청년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절정에 도달해 무르익는 나이대다. 청년 하면 열정, 젊음, 힘, 도전, 희망, 생기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러나 앞선 통계에서 보듯 고립, 은둔, 불안, 격차, 우울 등 부정적 표현들이 청년을 수식하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 서울시는 올해 전국 최초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벌이고 종합대책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부산시의회가 사실은 앞서 부산복지개발원이 지난해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를 벌였는데 부산시의 정책 무관심 때문에 서울에 뒤진 것처럼 비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어쨌든 정부든 자치단체든 은둔 청년에 관심을 쏟아야 할 일이다. 청년이 활력을 잃은 사회에 밝은 미래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