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극단적 선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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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개인 문제인 것처럼 미루는 분위기
잘못된 인식 줄 수 있는 용어·기준
이제는 전문가들 모여 개선할 필요

TS 엘리엇이 가장 잔인하다고 한, 시인 김영랑이 찬란한 슬픔이라고 한 봄도 지나고 있다. 국내외 시인들이 봄을 잔인하고 슬프다고 노래한 이유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봄이 잔인한 계절이라는 것은 과학적 입증이 가능하다. 그 근거는 바로 ‘스프링 피크(spring peak)’다. 이는 일조량이 풍부한 봄에 세로토닌 합성이 활발해져 자살률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한두 달 사이 자살 관련 뉴스가 자주 보도되고 있다. 유명 아이돌 가수의 자살, 전세 사기를 당한 청년들의 연이은 자살, 우울증 갤러리를 통한 자살 방조에다 생중계까지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소식이 하루가 멀다고 들려온다. 그런데 자살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하나같이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서 의문이다.


왜 자살을 자살이라고 하지 않고, 극단적 선택이라는 완화된 표현으로 바꿔 말할까? 짐작건대 첫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자살을 터부시하기 때문에 완곡한 표현으로 바꿔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용어를 완곡하게 바꾸어 쓴다고 본질이 바뀌거나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직시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가령 운동선수들이 잘못된 자세를 교정하고자 할 때, 잘못된 자세를 촬영한 모습을 보고 이를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교정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딘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용어를 바꿔 사용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문제를 회피하는 자세이고 오히려 문제를 더 곪게 할 뿐이다.

둘째 이유는 미디어에서 자살이란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할 경우 베르테르 효과, 이른바 모방 자살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자살이란 용어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는 완곡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에 따르면 자살이란 용어 대신 다른 완곡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살을 줄이거나 예방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독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자살 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할 때 오히려 자살을 지지하고, 자살을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따라서 자살을 완곡하게 순화한 표현이 모방 자살을 예방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은 어떤 용어를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미디어에서 자살을 자극적 소재로 소비하는 데 있다.

셋째 이유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공동 제정한 ‘자살 보도 윤리강령’에서 자살이란 용어를 헤드라인에 쓰거나, 사인을 자살로 밝히는 것을 피하라고 권고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살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 이유가 타당하지 못함은 차치해도 자살이란 용어 대신 사용되는 극단적 선택은 자살 보도 윤리강령의 취지와 대립하는 용어로 적절하지 못하다.

자살 보도 윤리강령에서는 ‘자살 보도는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자살을 고려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한 방법이란 선택과 동일한 의미로 자살이 선택지가 되면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는 용어 자체에 자살이 하나의 선택지로 명시되어 자살 보도 윤리강령 제정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자기 모순적 용어다.

주지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6명으로 OECD 평균 11.3명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46.6명으로 OECD 평균 17.2명에 비해 3배 가까이 된다.

또한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바로 자살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자살이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살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선택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자살이 개인의 선택인 것처럼 문제를 회피해서는 발전된 논의를 시작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언론과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약 20년 전 만들어진 자살 보도 윤리강령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 ‘조력 존엄사’ 등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용어를 버리고, 있는 그대로 용어를 객관적, 중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빈곤과 폭력, 차별과 혐오 등 한 개인을 자살로 몰고 가는 사회 부조리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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