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하의 월드 클래스] 프랑코포니와 표준어
정치부 기자
〈부산일보〉에서 국제뉴스를 담당하면서 외국 외교관이나 관료를 한 명씩 만나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기자는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리투아니아·벨기에·코트디부아르·퀘벡 외교관 4명을 한꺼번에 만나 대화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연관이 없는 듯한 이들 나라를 묶는 공통점은 프랑스어권 국가·정부 기구 ‘프랑코포니’ 회원국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어와 한국어 순차 통역으로 인터뷰가 진행되던 중 알루 완유 웨젠 비티 주한코트디부아르 대사가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한국어를 다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는지 궁금하다”며 기자에게 질문했다. 기자는 같은 한국어지만, 서울말과 각 지역 방언의 차이점을 비티 대사에게 설명하자 그는 “프랑스어도 한국어만큼 다양하다. 어디에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프랑스어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들은 기자는 프랑스어에도 대륙마다 방언이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프랑소와 봉탕 주한벨기에 대사의 부연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프랑코포니는 프랑스어 연구를 통해 언어가 잘 발달할 수 있도록 장려하지만, 획일화 정책에는 반대한다”며 각 대륙의 파생된 프랑스어도 존중한다고 말했다. 봉탕 대사가 설명한 프랑코포니의 프랑스어 정책은 한국과 확연한 대조를 이뤘다.
한국에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의 서울말’, 즉 서울말로 한정한 표준어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극성을 부린다. 비수도권 국민이 쓰는 사투리는 열등한 것처럼 대우받는 일이 일상화됐다. 서울에 취업하려는 비수도권 청년,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는 북한 이탈 주민들은 사투리를 교정받는 일까지 벌어진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답변한 관료에게 “사투리 고치라”며 호통 친 일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이 서울말로 획일화되고 개성 넘치는 지역 사투리는 소멸을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물론 여러 대륙에서 다양한 프랑스어가 파생된 것을 두고 프랑스 식민지의 잔재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프랑코포니는 적어도 언어 정책에 있어서는 제국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프랑코포니가 회원국들에게 ‘현대의 교양 있는 파리지앵들이 두루 쓰는 프랑스어’만 쓰기를 강요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프랑스어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TV5 몽드와 같은 방송은 다른 국가의 다양한 프랑스어 프로그램을 여과없이 내보낸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어는 물론 해당 지역의 토착어와도 공존을 모색한다.
언어마저도 지역색이 무시되고 서울 일극주의로 쏠리고 있는 현실. 언어 다양성 포용을 제1의 가치로 삼는 프랑코포니 외교관과의 만남은 ‘서울 공화국’의 그림자가 언어에까지 짙게 드리워졌음을 새삼 일깨워줬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