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난방비 지원으로 27년 된 열배관 보수 기금 ‘바닥’ [이슈 추적, 왜?]
[이슈 추적, 왜?] 해운대 그린시티 지역난방 ‘시한폭탄’
지난해 10월 열 요금 15.91% 올라
도시가스 연료비 162% 인상 여파
주민들 “인상 과다” 납부 거부운동
갈등 장기화에 에너지시설 기금 소진
연료비 인상분 충당 위해 과다 사용
“시 예산 별도 지원·소통 채널 확대
열전용설비 요금 인상 관리제 도입”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폐열 무상 공급하라!’ ‘일방적인 지역 난방비 인상에 반대한다!’
부산 해운대구 그린시티 주요 거리를 뒤덮은 현수막 문구다. 따뜻한 봄 날씨가 무색하게 이곳에서는 여전히 지난해 겨울부터 이어진 난방요금 인상이 뜨거운 이슈다. 오히려 논란은 갈수록 거세진다. 최근 지역 주민들은 난방비 인상이 과도하다며 납부 거부에 이어 반대 서명 운동을 전개했다. 해운대 지역난방 요금 대책단에 따르면, 2개월간 서명한 주민만 6000여 세대. 주민 대책단은 이를 부산시에 전달하고 요금 인상에 관한 공청회를 요구하기로 했다.
■곪아 터진 부산시·주민 갈등
부산시는 지난해 10월 그린시티의 지역난방 열 요금을 15.91% 올렸고, 현재 추가 인상 여부를 검토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환경으로 인해 지난해부터 연료비가 크게 오른 여파다. 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지역난방에 적용되는 도시가스 열전용설비용 연료비는 2021년 1월보다 162% 올랐다. 지역난방을 적용하는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 기장군 정관신도시에서는 지난해 3차례에 걸쳐 35% 이상 요금을 올렸다.
그린시티 주민은 요금 인상 폭이 과다하다고 맞선다. 그린시티는 주거 밀집지에 소각장,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등 기피 시설을 설치한 유일한 지역인데 다른 지역과 똑같이 연료비 인상분을 주민에게 전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시가 과거 무상 열을 공급하는 소각장 1기를 폐쇄하고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설치할 때 요금 차원의 배려를 약속했다고 주장한다.
김영구 대책단장은 “명지국제신도시, 정관신도시와 달리 그린시티에는 집단에너지 시설 바로 옆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있다”며 “정책적 편의에 따라 일방적으로 혐오시설을 폐쇄, 설치해 놓고 이제 와서 그에 따른 요금 인상분을 과도하게 떠넘기려 한다”고 지적했다.
요금 인상 갈등의 장기화는 결국 집단에너지 기금을 축냈다. 기금이 당초 운용 목적대로 노후 설비 보수가 아닌 연료비 인상분 충당에 과도하게 쓰인 탓이다. 사실 기금의 세입 개선, 주민과의 난방 요금 인상 합의 등 근본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기금 고갈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시한폭탄’ 노후 열 수송관 어쩌나
시는 열 요금 중 가스비, 운영비를 지불하고 남는 돈의 80%를 기금으로 적립한다. 기금 이자, 시설 임대료 등도 세입으로 잡힌다. 기금 세입은 최근 5년을 기준으로 볼 때 연간 평균 2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3년간으로 쳐도 2021년 14억 원, 지난해 15억 원, 올해 17억 원 정도다. 대외 연료비 상황에 따라 한 번에 100억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 지출되는 상황에서 기금 고갈은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기금 부족은 매년 누수, 파열 문제가 터지는 노후 열 수송관에 치명적이다. 늦지 않게 대대적으로 수송관을 교체하려면 대규모 기금 적립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1996년 준공된 그린시티 열 수송관은 매설된 길이만 74.5km다. 언제, 어디서 노후로 인한 대형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최근 3년간만 보더라도 누수, 파공 등으로 수선 84건이 이뤄졌다.
시는 지난해 리모델링된 소각장으로부터 무상 열 공급이 늘고, 해외 연료값이 떨어지고 있어 기금 잔액이 차차 회복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악재가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는 막연한 기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료비 인상에도 주민 반발로 요금을 올리지 못하면 시는 또다시 기금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 미래에너지산업과 측은 “노후 열 수송관 안전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관련 용역을 진행 중”이라면서 “각 시설의 노후 정도를 파악해 효율적으로 기금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거센 후폭풍 예고…대책은?
집단에너지시설 기금 고갈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그린시티 난방요금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올겨울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해당 논란을 선점하려는 여야 정치권까지 가세해 갈등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그린시티는 해운대구에서 최대 표밭이다. 사태 장기화를 막기 위한 해결책이 시급하다.
우선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시 예산을 별도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집단에너지 공급사업은 자체 세입을 통해서만 운영되는 특별회계이기 때문에 기금 확보에 한계가 있다. 부산시의회 임말숙(해운대2) 의원은 “지속가능한 기반시설 관리기본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열 수송관 유지·보수를 지원할 수 있다”면서 “그린시티 조성 당시 나온 이익 3500억 원가량으로 광안대교 건설, 우회도로 건설 등 부산 발전에 기여했다. 별도 지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요금 인상, 기금 사용과 관련한 시와 주민 간 입장 차를 좁히기 위해 양측 간 소통 채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자문위원회의 주민 대표성 확보를 위한 구성원 확대, 주민 설명회 개최 의무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번 논란은 지역난방 요금 체계의 문제점도 드러냈다. 지역난방에는 주택용이 아닌 열전용설비용 요금이 적용된다. 주택용 요금은 정부가 인상 폭을 관리하기 때문에 대외 연료비 상승에도 급등하지 않는다. 반면 열전용설비용 요금은 통상 단가가 저렴하지만, 연료비 인상분을 수시로 반영하기 때문에 변화 폭이 크다. 지역난방 지역의 요금 인상 체감도가 다른 지역보다 큰 이유다. 이에 따라 가정에 공급하는 지역난방의 경우 주택용처럼 인상 폭을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