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이제 조침령, 아 저기 설악이 보인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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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한달음
한 달 전 만난 봄을 다시 만나다

아 저기가 설악. 구룡령에서 조침령으로 걷다가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가장 멀리 오른쪽 우뚝 솟은 봉우리가 대청봉이다. 왼쪽 봉우리는 점봉산. 아 저기가 설악. 구룡령에서 조침령으로 걷다가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가장 멀리 오른쪽 우뚝 솟은 봉우리가 대청봉이다. 왼쪽 봉우리는 점봉산.

"지금 어디 지나고 있습니까? 오버" "꽃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오버" "예? 우리도 꽃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만 오버." 선두와 후미가 2km 정도 간극이 벌어졌다. 아마도 꽃구경하느라 늦었을 것이다. 선두 대장이 무전기로 후미 대장과 교신했다. 지나온 곳도 꽃 터널이고, 가고 있는 곳도 꽃 터널이다. 산철쭉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남자 대원들이 차례로 꽃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남자들이 이렇게 꽃을 좋아했던가.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바뀌는 것일까. 백두대간 구룡령~조침령 꽃 터널은 아저씨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구룡령~조침령 등산 구간. 네이버 지도로 대략 그린 개념도. 네이버지도 캡처 구룡령~조침령 등산 구간. 네이버 지도로 대략 그린 개념도. 네이버지도 캡처

부산에서 너무 먼 구룡령

부산 서면에서 오후 10시에 출발해 강원도 홍천군 내면 명개리 구룡령까지는 대절 버스로 6시간이 넘게 걸렸다. 덕분에 버스 안에서 충분한 휴식을 했다. 구룡령 백두대간 방문자센터 인근에 있는 커다란 백두대간 비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조침령을 향해 출발한다. 시작부터 계단이다.

오늘 코스는 구룡령~갈전곡봉(1204m)~왕승골 갈림길~연가리골(샘터)~임선봉(1061m)~방태천3교 갈림길~쇠나들이~조침령까지 21.2km 구간과 조침령~진동리 조침령 터널 관리사무소까지 1.5km 임도 구간이다. 모두 22.7km를 걸었다. 대간 구간 21.2km는 휴식 시간을 포함해 9시간 13분 걸렸다.

누구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조침령 21km(10시간), 진고개 22km(11시간 40분)이 걸린다고 이정표에 적혀 있다. 결과적으로 따져 보면 부산등산아카데미 제1기 백두대간종주대(단장 박경효, 총대장 김창진)는 10시간의 소요시간을 살짝 단축한 것은 맞다. 물론 선두 기준이다. 이번에 용케 선두 그룹을 놓치지 않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구룡령은 도로가 개설돼 명칭을 챙겨갔지만, 옛길이 진짜 구룡령이다. 구룡령 옛길은 강원도 양양 서면 갈천리와 홍천군 내면 명개리를 잇는 오솔길이다.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명승은 국가 지정 문화재다. 경관이 아름답거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공물 등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지정한 것. 거제 해금강, 담양 소쇄원, 남해 죽방령 등이 그것이다. 명승은 그 자체로 경관이 아름다운 자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공물 등의 기념물 중에서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한 문화재다.

구룡령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상품 교역로이자 영동 사람들이 서울로 가던 길이다. 구룡령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룡이 승천하는 모양처럼 구불구불해서 붙었다는 설도 있다. 도로 구룡령은 일제강점기 이곳의 철광석 등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주민들을 강제 징용해 만든 도로라고 한다.

헤드램프가 반짝반짝하며 대간 능선을 줄지어 걷는다. 구룡령까지 40분이라는 이정표에 다다르니 동녘 하늘이 붉게 밝아온다. 마침 헤드램프의 밝기가 약해졌는데, 없어도 걷는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다. 평소보다 늦게 시작했고 해도 길어져 일찍 동이 튼다.


황계복 강사가 백두대간 능선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황계복 강사가 백두대간 능선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대간인데 산이 없다?

"이 구간에는 산이 없어요. 강원도 백두대간 구간 가운데 가장 온화한 구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황계복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강사가 설명해 준다. 그러고 보니 구룡령~조침령 구간 능선 어디에도 이름난 산은 없다. 보통 대간은 큰 산을 품고 형성돼 있는데, 22km 구간 내내 '산'이 없다는 게 특이했다. 그만큼 산길도 평온한 거라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유일하게 있는 갈전곡봉도 초반에 지나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

그래도 대간길이다. 아름드리 참나무 군락이 능선 좌우로 줄지어 서 있다. 보통 산정은 큰 나무가 견뎌내지 못하는데 세찬 바람에도 잘 버티고 있었다. 아름다운 길을 여유있게 걷는다.

붉은 해가 떠오른다. 진행 방향의 우측에서 일출이 시작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거의 5시 방향이다. 누군가 '해 뜬다'라고 해서 보니 빨간 숯불 같은 해가 막 솟아오르고 있다. 산철쭉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갈전곡봉 정상의 비는 돌이 아니라 철비다. 스테인리스 재질로 돼 있다. 1204m 정상이라고 하지만, 구룡령 출발 지점이 1000고지가 넘었으니 높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가야 할 조침령까지는 16.54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다. 이곳 이정표는 디테일이 살아있다. 앞으로 볼 이정표에서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거리가 깨알같이 새겨져 있었다.

갈전곡봉은 방태산(1435m)과 연결돼 있고, 인근에 왕승골,아침가리골, 연가리골 등이 대간에서 발원해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아침가리골은 오지 중의 오지이자 한여름 계곡 트레킹 장소로도 유명하다.


백두대간 야생화. 왼쪽부터 고비, 피나물, 관중, 금낭화, 풀솜대, 둥글레, 은방울꽃, 미나리냉이. 백두대간 야생화. 왼쪽부터 고비, 피나물, 관중, 금낭화, 풀솜대, 둥글레, 은방울꽃, 미나리냉이.

여기도 천상의 화원이네

고비가 이제야 올라오다니. 이른 봄에나 볼 수 있는 고비 싹이 이제 올라온다. 신비로운 광경이다. 피나물 꽃도 만발했다. 가녀린 노란 꽃잎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어린 관중도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구룡령 백두대간에서 2023년 봄이 반복되고 있다. 발밑만 보며 감탄사를 연거푸 내뱉고 있는데 황 강사가 고개 들어 멀리 보란다. 설악산군이다.

점봉산과 그 너머 숨은 한계령 그리고 설악산 대청봉이다. 케이블카 건설 예고 등 인간의 간섭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청은 늠름하게 하늘을 이고 있다. 가야 할 길을 다시 눈에 담는다. 산이 푸르러지고 있다.

다시 아래를 보나. 금낭화가 수줍은 듯 피었다. 한국 원산 야생화인데 꽃잎이 신라 금관의 고리를 닮았다고 해 더 유명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첩첩산중에서 지게를 만난다. 그 옆에는 작은 잡목 등은 쉽게 잘려 나갈 듯한 칼날을 지닌 예초기도 있다. 뭔 일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길이 넓어진다. 대간길은 특별히 손을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인 경우가 많은데 무슨 산책로처럼 길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을 하느라 산철쭉 몇 그루 쯤은 얼마든지 베어 냈던지 길 양옆으로 잎을 채 키우지 못하고 죽은 나무가 즐비하다. 산길이 일정 정도 너비로 넓어진 것으로 봐선 야자매트 등을 깔 모양이다. 단풍취며 피나물이며 갖가지 야생초가 산길에 즐비해 차마 밟을까 조심조심 다녔는데 산꾼들을 위해 길을 확장하는 현장을 보니 기가 찬다. 일전에 다녀온 밀양 재약산은 진달래와 철쭉 군락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변 참나무를 무참히 베었다. 여기에서는 산길 확보를 위해 산철쭉을 너무 쉽게 베고 있었다. 고마운 일인가? 산길 정비는 최소화가 정답 아닐까? 채 피지도 못하고 시들고 있는 산철쭉을 보면서 분을 삼키고 있는데 은방울꽃 군락으로 화를 누른다. 은방울을 닮아서 은방울꽃인데, 실은 은방울꽃을 보고 은방울을 만들었다는 그 꽃. 은은한 사과 향과 레몬 향이 좋아 향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산행 도중 야생화를 찍는 종주대원. 산행 도중 야생화를 찍는 종주대원.

3둔과 4가리를 품은 곳

꽃을 보고 걷는데 앞서가던 종주대원 몇 명도 부산하게 꽃을 사진으로 담느라 바쁘다.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1기 백두대간 종주대와 만난 지 아직 몇 차례 되지 않기에 서먹서먹하다. 이들은 1기부터 30기까지의 기수 중에서 자원해 백두대간 종주대에 참여했다고 한다. 기수별 우정도 돈독한데 백두대간 종주라는 동일한 목표를 진행하고 있으니 막역한 사이가 분명했다. 그런데 종주대 막바지 코스에 편승하다 보니 한두 명의 지인 말고는 친해질 시간이 없다. 이번이 세 번째다. 그래도 기사를 읽었다며 인사해 주는 이도 있고, 쉴 참에 사과나 간식을 건네주는 분들이 있다. 굴러온 돌을 무시하지 않고 챙겨주는 따뜻함을 느낀다.

종주대의 특색도 조금씩 보이는데 커다란 의자를 지고 와서 쉴 때 확실하게 쉬는 분.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는 분. 맛난 간식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분. 막걸리 한 병 챙겨와 꼭 잔을 권하는 분 등 다양하다.

유독 친하게 다니는 분들이 있었는데 자기들끼리 부를 때 '이파리들'이라고 했다. 뭔 사조직인가 싶어 궁금했는데 낙엽팀이란다. 같은 기수로 종주대에 참여했는데 늘 뒤처져 스스로 혹은 모두가 낙엽(떨어짐)으로 불렀다는 것. 그런데 가만히 보니 닭목령 구간에선가 앞에서 빌빌거리고 있는데 성큼 추월하더니 이내 보이지 않던 등산 고수들이 아닌가. 왜 이분들이 낙엽이 되었는지는 나중에 그 비밀이 밝혀졌다..

연가리골 샘터에 도착했다. 능선에서 100m만 내려가면 샘터가 있다고 하는데 가 볼 엄두는 내지 않았다. 목이 그리 마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파리 팀 한 분이 건넨 오이와 사과를 먹고 나니 그나마 있던 갈증도 싹 가셨다.

연가리골은 아침가리, 적가리, 명지가리와 함께 4가리로 불리고 월둔, 귀둔, 살둔은 3둔으로 부른다. 3둔 4가리는 정감록에 기록돼 있다고 한다. 물과 불, 바람으로 인한 해가 없는 장소란다. 강원도 오지 중에서도 가장 오지란 말. 둔은 농사짓기 좋은 평퍼짐한 산기슭. 가리는 계곡 안에 자리 잡은 작은 땅이라는 뜻으로 소 쟁기질로 하루에 갈 수 있는 단위 '갈이'에서 나온 말로 보고 있다.


하산해서 만난 물길 방태천. 하산해서 만난 물길 방태천.

미라니냉이꽃 피나물꽃

조침령까지 남은 거리가 드디어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전날 부산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강원도의 숲길은 맑기만 하다. 알 듯 말 듯한 꽃이 있어 스마트렌즈로 검색했지만 도무지 이름을 알 수 없다. '미나리꽃일 확률이 52%입니다.' 미나리가 산속에서 필 리 없고, 미나리는 아는 식물이어서 100% 아니었다. 나중에 식물단체에 물어 확인하니 미나리냉이였다. 잎은 미나리를 닮았고 꽃은 냉이를 닮아 미나리냉이란다. 산지 그늘진 곳에 주로 자라는 여러해살이다. 이렇게 또 한 생명체를 배운다.

예의 이파리팀도 야생화에 빠져들었다. 넓게 펼쳐진 꽃군락지에서 카메라를 켜고 사진을 찍느라 걸음을 딱 멈췄다. 준족인 이들이 '낙엽 팀'이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산행을 더 풍족하게 즐기는 이들의 여유가 좋다.

뚜렷한 탈출로가 없는 구간이라고 사전 설명을 들었지만, 그래도 연가리골, 왕승골, 작은미아치골 등 중간 하산로는 있었다. 다만, 우천시에는 절대 통행금지라는 안내문이 있어 계곡이 험한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한때 지인 가족과 아침가리를 찾은 적이 있다. 꼬불꼬불한 임도를 올라 상류에서부터 계곡 트레킹을 했는데, 물길을 걷는 재미가 독특했다. 그 이후 물속에서 신는 신발을 여름마다 샀던 기억이 있다.


단풍취가 막 고개를 들고, 고비와 관중이 싹을 틔우는 백두대간은 아직 봄이었다. 단풍취가 막 고개를 들고, 고비와 관중이 싹을 틔우는 백두대간은 아직 봄이었다.

두 단계 건너 다시 만난 봄

북진하는 백두대간 구간에서 국립공원 지역은 골칫거리다. 어떤 이는 비탐(비법정탐방로) 출입 금지 구간을 건너뛴다. 또 어떤 이는 개구멍을 찾아 기어코 지나간다. 감시하는 국공(국립공원관리공단)과, 기어코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이으려는 산꾼 사이에 항상 긴장이 흐른다. 그런데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이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산꾼이라면 수십 년을 출입금지 구역으로 묶어 놓는 것이 결코 정답이 아니란 것을.

예전에 가야산 만물상 코스가 수십 년 폐쇄됐다가 개방된 적이 있었다. 공식 개방을 앞두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협조를 받아 함께 사전 답사를 했다. 결과는 실망이었다. 수십 년 동안 출입금지구역이었다던 만물상 코스는 어느 코스보다 길이 반들반들했다. 몇 군데 절벽 구간에 안전 계단을 설치한 것이 개방과 비개방을 결정 지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안전 의식은 좀 독특하긴 하다. 서구의 경우 모든 레저나 활동에 자기 책임이 중심이다. 태풍 속에 서핑을 하던, 곰이 출몰하는 지역에서 야영을 하던. 미국 서부 개척 시대 영향인지 국립공원 지역에서도 야영도 하고, 모닥불도 피운다.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불씨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이지만, 유독 우리의 산에 관한 정책은 규제 일색이다. 특정 지역 방문을 제한해서 이익을 챙기는 집단도 있다. 백두대간도 이미 탐방 역사가 오래됐다. 3000km가 넘는 미국의 애팔래치아 국립경관트레일에 비탐 구간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존뮤어 트레일은 공원 보호차원으로 탐방객 수를 제한하지만, 길을 막지는 않는다.

백두대간도 가이드제, 입산 허가제 등의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원하는 사람은 제대로 완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백두대간 보호를 외치는 산림청은 도대체 백두대간 탐방 정책에 대해 뭘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오대산 비탐 구간을 어쩔 수가 없어 두 단계를 건너뛰고 구룡령으로 갔기에 할 말이 많다. 덕분에 산철쭉 화사한 2023년 봄을 다시 만나긴 했지만 말이다.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제1기 백두대간 종주대 31차 산행. 황계복 제공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제1기 백두대간 종주대 31차 산행. 황계복 제공

백두대간 타는 사람들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BCMA) 제1기 백두대간 종주대는 매달 한 번씩 대간 산행을 한다. 30여 기수를 배출한 아카데미는 제1회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는데 50여 명이 종주대로 시작해 30여 명이 꾸준히 대간 산행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31차 산행을 했다.

10년도 전에 시작해 마무리하지 못하고 오래 묵혔던 대간 산행을 완주할 욕심에 BCMA 종주대에 옵서버로 서너 번 참여했는데, 참 좋은 분들이 많다. 여든이 넘은 열성 회원도 있다. 종주대 전용 버스에서 출발할 때면 매번 특별한 떡을 나눠줘 그러려니 하고 받았는데 이분이 찬조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경규 선두 대장, 명용익 중간 대장, 이한철 후미 대장과 조윤정 간사도 사서 고생하고 있다. 이번 산행에는 조 간사가 개인 사정으로 오지 않아 다른 분이 대신해 살림을 맡았다. 그분은 대관령 숲길 탐방센터에서 유일하게 뜨거운 물로 손을 씻은 주인공이라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합천 운석공 산행에서 멋진 안내를 해준 신세균 수목산악회 회장과 황계복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강사도 늘 든든한 분들이다.

조침령이 4.8km 남았다는 이정표다. 어떻게 100미터 단위까지 정확하게 거리를 잰 것인지 모르겠지만, 좀 헷갈리기도 하고 또 정확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래 계곡은 작은미아치골이다. 어쨌든 이 구간 이정표는 갈전곡봉과 조침령을 기점으로 안내해 놓았다. 갈전곡봉이 멀어지니 조침령이 다가온다. 산길을 가만히 보니 예전에 정비를 했던 모양이다. 일부 구간은 야자매트가 깔렸던 흔적이 있다. 숲길은 많이 복원됐다. 인간이 더 이상 훼손하지 않으니 말이다.

추모석 한 개가 길섶에 있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다가 돌아가신 모양이다. 3년 동안 대간 산행을 하다가 마무리 3구간을 남겨 놓고 돌아가셨다고 해 놓았다. 명복을 빈다. 대간을 시작할 즈음 지리산 구간을 지나 고기리 즈음에서 산더미 같은 등짐 배낭을 지고 가던 늙은 산꾼을 추월한 적이 있다. 그분은 대간을 다 마쳤는지…. 이 길에 서면 늘 궁금하다.


산철쭉 앞에서 걸음을 멈춘 종주대원들. 산철쭉 앞에서 걸음을 멈춘 종주대원들.

산정에는 봄, 산 아래는 여름

조침령이 1.3km 남았다. 모두 걸음이 한껏 여유롭다. 갑자기 대열이 멈춘다. 철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다. 너도나도 환한 표정을 짓는다. 꽃 앞에서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찍는 모습을 보니 꽃보다 남자다.

조침령 임도와 만나는 지점은 특이하게 철문이 있다. 가축 전염병 예방 차원에서 산돼지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한 시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사람 막는 길인 줄 알고 지레 놀랐다.

조침령 임도는 군인들이 만든 모양이다. 기념비에 그렇게 쓰여 있다. 다음에 올 때도 비석을 볼 수 있겠지만, 그리 힘들지 않게 이번 구간을 마친 덕분에 되돌아와야 하는 길을 굳이 가서 백두대간 조침령 기념석을 보고 왔다. 박경효 단장이 조침령 옛 비 앞에 미리 와서 종주대를 마중하는 전을 펼쳐 놓았다. 마른 멸치에 고추장을 찍어 하산주 한 잔 마신다.

임도를 제법 걸어 내려가니 빨간 버스가 기다린다. 아침가리 계곡이 근처라는데 계곡물에 풍덩 몸을 담그고 싶었다. 마침 버스가 서 있는 조침령 터널 관리사무소 앞이 방태천 상류였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계곡에 첨벙 빠져들었다. 먼저 시원하게 씻고 나온 한 분이 '선녀탕'이 있다며 위치를 알려준다. 여벌로 가져 온 옷이 있어 좌고우면하지 않고 물에 뛰어 들었다. 온몸이 시원해 날아갈 것 같다. 강원도 물 참 좋다.

버스로 돌아오니 입구에 세워 둔 등산 스틱이 없었다. 채 정리하지 못해 세워 두었는데 잠시 당황했다. 다들 시원하게 씻고 버스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던 종주대원들이 맥주를 권하며 '스틱은 누가 차에 실었다'고 알려주었다. 자리에 가 보니 옆 좌석에 앉았던 분이 어찌 아시고 잘 챙겨 주셨다.

'알탕'까지 마쳤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산에서는 봄을 봤는데, 산 아래에서는 성큼 다가온 여름을 만끽했다. 백두대간 산행을 하며 계절을 훌쩍훌쩍 넘나든다. 강원도 명물인 메밀국수 맛집을 찾아가 하산식을 거나하게 먹고 부산에 돌아오니 깊은 밤이었다.

백두대간 조침령/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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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시작부터 계단이다. 구룡령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시작부터 계단이다.

조침령까지 10시간이 걸린다는 이정표가 있다. 조침령까지 10시간이 걸린다는 이정표가 있다.

구룡령 옛길 이정표.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구룡령 옛길 이정표.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동이 트기 시작한다. 오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동이 트기 시작한다. 오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우측으로 한참을 돌아 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우측으로 한참을 돌아 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이번 구간에서 유일하게 정상 표지가 있는 갈전곡봉. 이번 구간에서 유일하게 정상 표지가 있는 갈전곡봉.

나무를 베면서 산길을 정비 중이었다. 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베면서 산길을 정비 중이었다. 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침령과 갈전곡봉이 기점인 이정표. 조침령과 갈전곡봉이 기점인 이정표.


연가리골 안내 이정표. 연가리골 안내 이정표.

말안장처럼 구부러진 고목. 말안장처럼 구부러진 고목.

방태천3교 갈림길 이정표. 방태천3교 갈림길 이정표.

작은미아치골 갈림길에서 기념. 작은미아치골 갈림길에서 기념.
탁트인 조망지. 탁트인 조망지.

백두대간 산행 중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작은 표지석. 백두대간 산행 중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작은 표지석.

조침령으로 가는 막바지 오름길. 조침령으로 가는 막바지 오름길.


철문이 달린 조침령 임도 길. 철문이 달린 조침령 임도 길.

백두대간 조침령 기념비. 백두대간 조침령 기념비.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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