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솔향을 마신다…소나무, 명주가 되다 [술도락 맛홀릭] <11>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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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락 맛홀릭] <11> (주)솔송주 '담솔'

송순을 넣어 빚은 솔송주를 방울방울 증류해 만든 ‘담솔’. 수많은 주류대회에서 수상하며 미국·영국·호주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송순을 넣어 빚은 솔송주를 방울방울 증류해 만든 ‘담솔’. 수많은 주류대회에서 수상하며 미국·영국·호주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기개, 뚝심, 한결같음.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절개의 소나무와 전통의 우리 술이 만났다. 전통에 내음이 있다면, 왠지 솔솔 피어나는 솔향을 닮았을 것 같다. 경남 함양군에는 이름부터 소나무를 앞세운 양조장이 있다. 집안의 며느리가 오랜 가양주 맥을 이었고, 명주(名酒) 명인(名人)의 반열에 올랐다. 그 비결을 찾아 나섰다.

■ 오래오래 두루두루 대통령도 인정한 술

함양군 읍내에서 지곡면 개평마을로 접어드는 길. 마을 초입 야산 중턱에 소나무를 닮은 글씨체의 커다란 입간판(‘솔송주’)이 눈에 들어온다. 박흥선(70) 명인이 30년 가까이 남편과 함께 일궈 온 술도가 (주)솔송주의 본거지다.

양조장 방문에 앞서 ‘솔송주문화관’으로 향했다. 개평한옥마을 내에 있는 솔송주문화관은 솔송주의 역사와 전통을 알리는 공간이다. 15년 전, 박 명인은 자신의 생활공간이기도 한 시댁의 뒷마당에 자비를 들여 문화관을 지었다.

문화관 내부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에 낯익은 얼굴과 함께한 사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전직 대통령들이다. (주)솔송주의 술이 오랫동안 두루두루 인정받아 왔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솔송주는 2019년 대통령 설 선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정상회담 만찬주나 국제행사에서 건배주 등으로 여러 차례 소개됐어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이나 퇴임 이후 찾아 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개평한옥마을에 자리한 ‘솔송주문화관’. 박흥선 명인은 사비를 들여 솔송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있다. 개평한옥마을에 자리한 ‘솔송주문화관’. 박흥선 명인은 사비를 들여 솔송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있다.
솔송주문화관의 술독에서 발효 중인 술. 전통 방식 그대로 송순과 술이 함께 익어 가고 있다. 솔송주문화관의 술독에서 발효 중인 술. 전통 방식 그대로 송순과 술이 함께 익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 27번째 식품명인이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박 명인은 전통주 세계에선 큰어른이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시어머니께 배운 대로 가끔 집에서 술을 빚던 박 씨는 1996년 덜컥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술이 맛있는데, 많이 좀 만들어 보라’는 주변 어르신들의 권유에 마음이 동했다. 박 씨 부부는 선산 골짜기에 술도가(‘지리산 솔송주’)를 차렸다.

“무식이 용기였죠. 근데 막상 뛰어들어 보니 너무 힘든 거예요. 처음에 술독 열 개를 쭈욱 해놨는데 온도를 못 맞춰서 술이 다 쉬어버렸어요. 술 홍보를 해주겠다며 가져가선 술값을 떼먹는 사람들도 많았죠.”

초반 7년은 계속 적자였다. 그러다 복분자를 재배하며 함께 선보인 복분자술이 인기를 끌었고, 양조장도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복분자가 효자 노릇을 했지만, 지금의 (주)솔송주를 있게 한 대표술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솔송주’(13도·약주)다. 박 씨를 명인으로 만들어 준 술이기도 하다. 증류주인 ‘담솔’(40도·리큐르)도 못지않은 호평을 얻고 있다. 두 술 모두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대한민국 주류대상 등 국내외 각종 주류대회에서 다관왕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담솔은 2020년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호주·캐나다 등지로 수출길을 넓히고 있다.

대한민국 27번째 식품명인인 박흥선 명인이 솔송주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27번째 식품명인인 박흥선 명인이 솔송주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박흥선 명인 부부가 1996년 귀향해 함양군 지곡면 선산 골짜기에 세운 (주)솔송주 술도가. 박흥선 명인 부부가 1996년 귀향해 함양군 지곡면 선산 골짜기에 세운 (주)솔송주 술도가.
솔송주문화관에 전시 중인 문재인 전 대통령 기념품과 사인.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두루두루 솔송주와 연을 맺었다. 솔송주문화관에 전시 중인 문재인 전 대통령 기념품과 사인.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두루두루 솔송주와 연을 맺었다.

■ 전통주와 칵테일, 매력 넘치는 만남

(주)솔송주 술의 가장 큰 특징은 ‘송순’(소나무의 어린 싹)이다. 전통 방식의 솔송주는 4~5월 개평마을 주변 산에서 딴 송순을 쪄서, 밑술에 고두밥과 함께 넣어 발효시킨다. 담솔은 솔송주를 방울방울 정성스레 증류한 술이다.

“증류를 하고 난 뒤 숙성을 오래 하면 할수록 좋아요. 담솔은 최소 6개월 이상 탱크에서 숙성시키는데, 길게는 2년에서 5년이 넘은 술도 있습니다.”

처음엔 박 명인 혼자서 수작업으로 술을 빚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 자동화 설비를 갖췄고, 지금은 2000L짜리 대형 증류기로 술을 내린다. 대신 솔송주문화관에서 전통 방식인 소줏고리 증류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엔 박 명인이 직접 시연에 나섰다. 고택 마루 한편에 보관 중인 술독을 열자 송순 향이 어우러진 술 익는 내음이 은은하게 번진다. 수면 위로 동동 떠오른 쌀알과 송순은 술이 잘 익었다는 증거다.

가마솥에 소줏고리를 올린 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전통방식으로 술을 증류하는 모습. 가마솥에 소줏고리를 올린 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전통방식으로 술을 증류하는 모습.
가마솥이 충분히 달궈지면 소줏고리 주둥이에서 한 방울씩 영롱한 술방울이 떨어진다. 가마솥이 충분히 달궈지면 소줏고리 주둥이에서 한 방울씩 영롱한 술방울이 떨어진다.

가마솥에 한 바가지 술을 붓고 소줏고리를 올린 다음 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얼마쯤 지났을까. 주둥이 끝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맑은 액체가 떨어진다. 명인의 정성이 빚어낸 영롱한 빛깔이다.

“발효는 온도를 비롯해 환경을 잘 만들어야 해요. 술을 ‘빚는다 빚는다’ 하는데, 진짜 비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걸 많이 느끼거든요.”

담솔은 알코올함량이 40%나 되지만 향만 놓고 보면 고도주스럽지 않다. 병에서 잔으로, 잔에서 코끝으로 은근히 퍼져 나가는 솔향엔 상쾌함을 넘어 향긋함마저 감돈다. 한 모금 입으로 가져가면 그제서야 알코올이 본색을 드러낸다. 그래도 독한 정도가 비슷한 고량주나 양주보다 덜 자극적이고, 목넘김도 부드럽다.

독한 술이 부담스러운 이들은 칵테일로 즐길 수도 있다. 한복 차림의 명인이 만들어주는 전통주 칵테일이라니.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지만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칵테일 4종 중 가장 인기 있는 ‘담솔 줄렙’은 담솔 한 잔과 라임·민트·탄산수·얼음 등이 들어간다. 블루 큐라소를 살짝 넣은 ‘솔바람’은 파란 빛깔부터 매력적이다. 담솔을 맛본 바텐더가 직접 칵테일 레시피를 추천했다고 한다. 과연 술 초보자도 즐길 만한 상큼하고 시원한 맛이다.

박흥선 명인이 '담솔'을 이용해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박흥선 명인이 '담솔'을 이용해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명인의 손맛으로 만든 칵테일 '솔바람'과 '담솔 줄렙'(오른쪽). 명인의 손맛으로 만든 칵테일 '솔바람'과 '담솔 줄렙'(오른쪽).

■ 지리산 흑돼지와 나물, 반주로 즐겨도…

서로 닮은 한국인과 소나무처럼, (주)솔송주의 술도 우리나라 전통 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도수가 높은 담솔은 생선회·돼지고기 등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입맛을 깔끔하게 잡아 준다.

함양은 지리산 흑돼지가 유명해 곳곳에서 흑돼지 요리를 만날 수 있다. 그중 상림공원 인근 ‘까망꿀꿀이’는 현지 주민들도 즐겨 찾는 흑돼지 맛집이다. 두툼한 생삼겹·목살은 빛깔부터 신선함이 감돈다. 흑돼지답게 식감 역시 일반 삼겹살보다 훨씬 쫄깃하다. 바삭하게 구운 비계도 느끼하지 않다. 여기에 담솔 한 잔을 더하면, 돼지고기의 고소함에 상쾌한 솔향이 어우러지면서 입이 더욱 바빠진다. 지리산 기슭, 산이 많은 고장답게 쌈 채소엔 취나물 등 제철나물이 함께 나온다. 묵은지와 조피 가루를 넣은 겉절이 등 찬도 입맛을 돋운다.

솔송주는 한식에 곁들여 반주로 즐겨도 좋다. 고깃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예당’은 산채비빔밥 전문이다. 함양 할머니들이 채취한 취나물·피마자·머위나물·고사리 등 10여 가지 푸짐한 나물에다 산양삼이 화룡점정이다. 쌉싸름한 산양삼과 함께 매일 달라지는 나물반찬은 접시째 비우면 약이나 다름없다.

고도주인 '담솔'과 잘 어울리는 지리산 흑돼지. 쫄깃한 식감이 여느 돼지고기와 확연히 다르다. 고도주인 '담솔'과 잘 어울리는 지리산 흑돼지. 쫄깃한 식감이 여느 돼지고기와 확연히 다르다.
10여 가지 나물과 산양삼이 들어간 산채비빔밥. (주)솔송주의 술은 한식과 함께 반주로 즐기기에 좋다. 10여 가지 나물과 산양삼이 들어간 산채비빔밥. (주)솔송주의 술은 한식과 함께 반주로 즐기기에 좋다.

함양의 청정 자연과 소나무의 기운 덕분일까. 박 명인의 시어머니는 97세까지 솔송주를 드셨고, 100세 넘게 장수하셨다고 한다. 정작 명인은 술을 잘 못 마신다. 그래서 술 빚기에 더 진심이다.

“제가 시작할 때만 해도 외국 술에 비해 무시당하곤 했는데, 지금은 젊은이들이 전통주 양조에 뛰어들 정도로 열기가 대단해요. 특히 우리 솔송주 술은 해외로 수출되는데, 외국에선 우리나라의 얼굴이잖아요. 그러니 더 열심히, 더 좋은 술을, 더 잘 빚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은 상당수 작업을 직원들이 담당하고 있지만, 박 명인은 여전히 오전 8시 30분 출근해 하루 종일 양조장에서 보낸다. 한결같은 모습이 소나무를 닮았다. 그 뚝심으로 조만간 25도짜리 담솔을 출시할 예정이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동영상=김보경 PD harufor@

-제품명 : 담솔40

-양조장 : (주)솔송주(경남 함양군)

-내용량 : 375mL

-알코올 : 40.0%

-원재료 : 정제수·쌀·입국·누룩·송순농축액·꿀 등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목넘김이 좀 부담스러운데, 얼음을 넣으니 훨씬 깔끔하다.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리겠다.”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도수는 굉장히 높지만 깔끔하고, 달짝지근한 향도 느껴진다. 차갑게 마시면 더 좋을 듯.”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비슷한 도수의 독하기만한 고량주와 달리 상쾌하고 좋은 향이다. 느끼한 음식과 먹고 싶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너무 독해 식도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려운 맛인데, 얼음이랑 같이 마시면 좋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바닐라 향과 함께 달콤한 향이 메인 캐릭터로 다가온다. 흰 꽃 향과 아주 약간의 바나나 향, 참외 같은 과일 향이 함께 느껴진다. 향의 강도는 중간 이상으로, 알코올 감이 조금 강한 편이다. 맛에서도 부드러운 곡물의 단맛이 혀를 적시며 퍼져나가는데, 여기에 향이 함께 움직이듯 춤춘다. 맑고 깨끗한 소나무라는 이름 그대로 입안에서의 느낌도 부드럽고 깔끔하다. 후미에서 40도의 존재가 강하게 발산되며 여운이 길다. 상온에서 즐기면 좋을 것 같은 증류주도 있지만, 담솔은 청량함을 더하는 게 이 술의 매력을 살려 주는 듯하다. 차갑게 맛보는 걸 추천한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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