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진통에 에어부산만 ‘불똥’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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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신규 운수권 배정 제외
LCC마다 몽골행 확대 경쟁 속
EU·미 ‘통합 반대 의견’ 눈치에
2년 연속 노선 배분서 아예 배제
시민단체 ‘입닫은 정치권’ 맹비판

에어부산이 모회사인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합병 난항으로 노선 확장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에어부산 항공기 A321네오 모습. 부산일보DB 에어부산이 모회사인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합병 난항으로 노선 확장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에어부산 항공기 A321네오 모습. 부산일보DB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EU에 이어 미국까지 합병 반대 의견을 내자 불똥이 엉뚱하게 부산으로 튀고 있다. 양 사 합병 이후 노선 독과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국토부가 운수권 배분 과정에서 잇달아 아시아나 계열사인 에어부산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는 최근 항공교통심의위원회를 열고 12개 노선의 운수권을 배분하는 작업을 마쳤다.이번 운수권 배분의 핵심은 몽골 하늘길로 이어지는 울란바토르 노선이었다. 한국과 몽골 정부는 앞서 항공회담을 열고 양국 간 항공기 운항 횟수를 늘리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방 공항마다 울란바토르행 노선을 확대했다. 대구~울란바토르는 티웨이항공, 청주~울란바토르는 에어로K, 무안~울란바토르는 진에어가 주 3회 운항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부산 김해공항에서도 울란바토르 노선 운항이 주 3회 늘어났지만, 운수권은 에어부산이 아니라 제주항공이 가져갔다.

■“합병에 문제 생길라” 운수권 배제

운수권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항공사의 핵심 자산이다. 운수권을 적정하게 배분받지 못하면 성장 동력과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 에어부산은 2년째 신규 운수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운수권 배분에서 배제됐다.

부산-울란바토르는 경합 노선이었다. 경쟁사인 제주항공이 추가 배분을 받으면 부산 소비자를 위한 경쟁체제가 마련될 것이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항공업계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EU와 미국 등이 합병 조건으로 요구하는 독과점 해소를 위해 대한항공이 운수권을 반납해 몸집을 줄이고 있는 탓이다.

그사이 대구 등 다른 지역 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저비용항공사(LCC)는 유럽과 미주 노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구로 본사를 옮긴 티웨이항공은 야심 차게 이탈리아 로마와 튀르키예 이스탄불, 프랑스 파리 등 중장거리 노선에 도전장을 낸 상태다. 인천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신생 에어프레미아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인천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는 노선의 신규 운항에 들어갔다. 합병 주체도 아닌 대상의 계열사 신세인 에어부산은 입맛만 다시는 상황이다.

게다가 산업은행이 아시아나의 채권단 대표로 들어와 있어 에어부산은 사실상 손발이 묶였다. 1분기에 역대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기대하지만, 중장거리 노선 도전은커녕 직원 급여 인상도 뜻대로 못 한다. 에어부산은 이달 4년 만에 직원 채용에 나서 승무원 40여 명을 선발할 참이지만 핵심 인력인 조종사나 정비사 추가 채용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제주항공이 신규로 화물 전용기를 도입하고, 티웨이항공이 대대적인 공채에 나선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신라대 항공대 김재원 학장은 “국토부가 에어부산에 운수권을 배분해봐야 결국 합병 이후 독점만 부추기는 모양새다. 에어부산은 요즘 같은 항공업계 호황에도 기회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학장은 이어 “만에 하나 아시아나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독자생존을 모색해야 한다면 당장 내놓을 알짜 매물은 에어부산뿐”이라며 “EU에 이어 미국까지 반대하고 나서 양 사의 합병 불발 가능성도 커진 만큼 부산 지역사회는 이에 대비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짚었다.

■시민사회 “시·정치권 입도 뻥끗 안 하나”

국제적인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양대 항공사의 합병 잡음으로 엉뚱하게 부산이 불이익을 받게 된 데 대해 국토부의 과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무리한 합병은 둘째 치고 이를 명분 삼아 진에어로 LCC를 통합하려는 국토부의 그림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는 “국토부가 거듭된 운수권 패싱으로 결국 통합 LCC 본사를 부산에 두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에어부산의 성장 동력을 말려서 서울 진에어 중심으로 통합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으로 통합이 예상되는 LCC 계열사는 에어부산과 진에어, 에어서울이다. 3사 중 2년간 운수권을 받은 건 진에어가 유일하다.

LCC 통합 추진 과정에서 경쟁사가 될 진에어는 여타 지방 노선까지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에어부산을 제외한 다른 지역 LCC도 중거리 노선 선점에 나선 상황은 국토부의 에어부산 운수권 패싱이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시민연대는 부산 시민과 상공계가 15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낸 거점 항공사를 절대 수도권에 통합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연대 박인호 대표는 “에어부산과 에어서울만 2년 동안 운수권 배분에서 거듭 제외되고 있다. 결국 국토부 의중은 진에어 중심의 통합 LCC에 있지 않느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거둘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당장 대구만 해도 티웨이 항공 본사를 대구로 유치한 뒤 꾸준히 노선 확보 지원을 하고 있다. 부산은 멀쩡한 거점 항공사도 다른 지역에 떠나보낼 판”이라며 “국토부와 대한항공의 움직임에도 입 한 번 뻥끗하지 않는 부산시와 부산 정치권 그리고 에어부산 지분 놀이에만 매몰된 부산 상공계는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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