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진의 여행 너머] 혼밥, 혼영, 혼여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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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라이프부 차장

최애 취미를 꼽으라면 ‘혼영’(혼자 영화보기)이다. 연애 시절에도 꼭 보고 싶은 영화만큼은 홀로 영화관을 찾았다. 직장 생활로 ‘혼밥’도 익숙해졌다. 기사 마감을 맞추려다 보면 때때로 혼자서 끼니를 때우곤 한다. ‘혼술’은 육아 노동으로 생긴 취미다. 온가족이 곤히 잠든 시간, 술잔을 홀짝이면 세계 평화가 이런 건가 싶다. ‘혼여’(혼자 여행하기)는 이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경험이다. 혼자 걸어다니다 혼자 밥을 먹고, 나 홀로 숙소에서 술을 마신다. 혼여의 재미는 낯선 동네에서 더 쏠쏠하다.

여행담당 기자를 하며 혼여 기회가 많아졌다. 아무리 좋아도 일이 되면 별로라지만, 혼여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동행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온전히 나의 기분과 취향, 보폭에만 맞추면 된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선물도 찾아온다. 외로워 보이는지 말 한마디라도 더 걸어주고, 불쌍해 보이는지 하나라도 더 챙겨 주려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 욕지도에서 만난 카페 사장도 “왜 혼자 왔냐. 대단해 보인다”며 한참을 말동무가 돼 줬다.

혼여 첫 경험은 17년 전이다. 대학 복학 뒤 여름방학 때 서울에서 땅끝마을까지 홀로 자전거여행을 떠났다. 거칠 게 없던 20대였다. 두 번째 경험은 4년 전. 몸과 마음이 방전 신호를 보냈고, 홀연히(허가를 득해) 정동진으로 떠났다. 당시엔 부전역에서 정동진역까지 무궁화호가 운행했다. 8시간이 넘는 기차여행 동안 앞자리 할머니가 건네 준 사탕 몇 개로 허기를 달랬다. 두 여행 모두 충전의 시간이었다. 남은 대학 생활을 잘 마무리했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무사히 복귀했다.

이들 경험을 바탕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혼여를 추천한다. 일상에 매몰될수록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자리,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곽튜브’ ‘빠니보틀’ 같은 여행 유튜버에 빠져드는 걸 보면, 우리 모두의 내면엔 혼여에 대한 갈망이 있다.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가 나 홀로 여행자에게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간혹 여행지에서 범죄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에게 특히 그렇다. 정동진에서 돌아와 아내도 똑같이 혼여 기회를 가졌지만, 고민하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다녀왔다.

혼여가 권장되는 사회는 바람직하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안전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리운 그때, 보고픈 그대를 그리다 다시 마주한 일상은 한층 풍성하게 다가온다. 그러니 혼밥, 혼술, 혼영하는 나 홀로 여행자를 만난다면 응원해 주자.

참고로 정동진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아, 지난해 결혼 10주년 가족여행으로 다시 다녀왔다. 어떤 여행이 더 좋았냐고?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직접 경험해 보시라.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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