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녹차와 한복의 만남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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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4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경남 하동에서 ‘자연의 향기, 건강한 미래, 차(茶)!’를 주제로 열리고 있는 세계차엑스포. 12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차 문화의 모든 것, 녹차의 효능과 우수성, 국내외 차 산업의 현재와 미래상을 보여 주는 자리다. 지난 26일 짬을 내 다녀왔다. 이날 다양한 전시관과 부대 행사장을 기웃거리다 다례상을 앞에 놓고 마주 앉은 화사한 한복 차림의 여성들이 보이는 다례 체험장에서 발길이 멈췄다. 이들이 천천히 녹차를 우려내 앙증맞은 찻잔에 따른 뒤 맛과 향을 음미하는 자태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녹차와 한복이 서로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미의 극치라고나 할까.

이 때문에 이날 오후 차엑스포 주무대에 마련된 한복 패션쇼를 찾은 건 당연했다. 패션쇼는 ‘찻잎 살포시 내려앉다’라는 주제로 1시간가량 펼쳐졌다. 부산에서 한복점 ‘신라의 멋’을 운영하고 한문화진흥협회의 한복홍보대사로 활동하는 한복 디자이너 강명래(58) 씨의 다채로운 작품 30여 점을 선보였다. 새하얀 저고리나 치마에 푸른 찻잎과 10월께 찔레꽃을 닮은 흰 꽃으로 피는 차나무꽃이 곱게 그려진 한복, 풍성한 치마와 도포에 한자 ‘茶’를 가득 새긴 한복을 입은 모델이 무대 위를 걸을 땐 관중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패션쇼 주제에 딱 맞는 녹차와 한복의 만남은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느긋하고 섬세하게 차를 우려 마시는 다도와 속옷부터 두루마기까지 옷고름을 꼼꼼히 매면서 단정하게 한복을 차려입는 절차가 묘하게 닮았다는 느낌이다. 녹차와 한복은 삶의 여유와 건강을 추구하는 요즘 웰니스(Wellness) 시대에 적합한 문화로 보인다.

이와 달리 일상에서 잊히는 전통문화라는 공통점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녹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전통찻집이 나날이 사라지는 반면 테이크 아웃이 가능한 커피 문화는 우후죽순 생기는 카페에 힘입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국내 1인당 연간 차 소비량은 세계 평균치에 한참 못 미치지만, 커피는 세계 평균의 세 배 이상이 된다는 통계도 있다. 한복 역시 결혼식장에서나 간간이 볼 수 있는 의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복을 자기 문화라고 우기는 중국에 제대로 맞설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다. 경북 경주 황리단길 등 일부 관광지의 한복 대여가 인기인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래서 이번에 녹차와 한복의 의기투합을 시도한 차엑스포 주최 측과 디자이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같은 노력이 쌓여 녹차와 한복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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