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 접고 수사 자료 홀로 수집… 끝내 눈물 쏟은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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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가 된 피해자] ‘돌려차기 사건’ 남성 35년 구형

바지 안감서 가해자 DNA 검출
수사 과정 ‘제3자’로 철저히 배제
사건 정보 얻으려 민사 소송 제기
“피해자 알 권리 보장, 제일 중요
2시간마다 잠 깨 여전히 약 의존”

지난달 31일 부산고법에서 항소심 결심공판을 마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가 지난 1년간의 소회를 취재진에게 밝히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위)과 지난해 5월 부산 서면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모습. 안준영 기자·피해자 제공 지난달 31일 부산고법에서 항소심 결심공판을 마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가 지난 1년간의 소회를 취재진에게 밝히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위)과 지난해 5월 부산 서면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모습. 안준영 기자·피해자 제공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인 박민지(28·가명) 씨는 그녀의 청바지에서 가해 남성의 DNA가 검출됐다는 소식을 듣자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성범죄 피해자로서 좋을 수만은 없는 일인데도 기쁨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1심 첫 공판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재판에 참석했고, 피고인을 앞에 두고도 내내 의연했던 민지 씨였다. 그녀는 지난해 5월 22일 발생한 성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꼬박 1년간 생업을 뒤로 하고 직접 사건을 파고들었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불사하며 민사소송을 걸었다. CCTV 영상과 포렌식 결과 등 1600쪽이 넘는 수사자료를 홀로 수집했다. 성범죄가 입증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오롯이 민지 씨 몫이었다.

부산고법 형사2-1부(부장판사 최환)는 지난달 31일 오후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 결심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가해 남성 A 씨에게 징역 35년과 위치추적 장치 부착, 보호관찰명령 2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DNA 재감정을 통해 민지 씨가 사건 당시 착용했던 청바지 안쪽의 허리, 허벅지, 종아리 부분 등 3곳에서 가해자의 Y염색체 DNA형을 확인했다. 당초 경찰이 실시한 1차 DNA 감정에서는 속옷의 밴드 부분에서 A 씨의 DNA가 나오지 않았고 청바지 바깥쪽 엉덩이 부분에서만 DNA가 나와 성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

민지 씨는 CCTV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라진 7~8분'의 행적과 A 씨가 범행 직후 휴대전화로 검색했던 ‘실시간 서면 강간미수’ 등의 포렌식 결과를 바탕으로 성범죄 혐의를 주장했다. 민지 씨는 1심이 시작되기 전까지 포렌식 자료 등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당사자인데도 수사 과정에서 철저히 ‘제3자’로 배제됐기에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수 없었다. 결국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건 뒤에야 사건 관련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민지 씨는 생업을 접고 매일 폭행을 당했던 CCTV 영상과 가해 남성의 황당무계한 진술을 들여다봤다.

민지 씨는 “처음에는 ‘언제 어디서 공판이 열릴 것이다’ 정도의 문자로만 형식적으로 통지가 이뤄졌다”며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관심이 높아지자 수사기관은 물론 재판부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반대로 말하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절대 다수의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계속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법정에서 이례적으로 피해자인 민지 씨에게도 발언할 기회를 제공했다. 범죄 피해자가 법정에서 의견을 진술할 기회는 법으로 보장돼 있지만, 실제 이 같은 권리가 주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민지 씨는 이날 “여전히 약을 먹지 못하면 2시간 만에 잠에서 깬다. 사건이 발생한 뒤 (체중)10kg이 넘게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검사와 판사에게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저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다. 선량한 시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엄정한 판단을 해달라”고 말했다. 또 “사건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민사 소송을 걸어야만 했다. 그때 그게 제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며 “회복적 사법이 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가해 남성 A 씨는 범행 직후 휴대전화로 ‘실시간 서면 강간미수’ ‘부전동 강간사건’ 등의 키워드를 왜 검색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냥 궁금해서 검색했다. 그런 사람이 형량을 얼마나 받는지 단순히 궁금했다”고 대답했다.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간 행위에 대해서는 “그곳이 CCTV 사각지대인 줄 몰랐다. 피해자를 구호하기 위해 7~8분간 뺨을 때렸다”고 말했다. A 씨는 또 “당시 길을 걷던 피해자가 나를 보고 뭐라고 하기에 따라가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들었느냐는 물음에는 “환청이었던 것 같다”며 횡설수설했다.

A 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양형이 과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항소심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2일 열릴 예정이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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