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여러번 보고·범행 후 피해자 옷 입고…정유정 '신분 탈취' 노렸나"

이정숙 부산닷컴 기자 js021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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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은둔형 외톨이? 자폐 성향?
전문가들 "섣불리 규정지어선 안돼" 경고
"정유정, 지난 5년간 어떤 일 있었는지 알아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온라인 과외 앱으로 만난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23)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 은둔형 외톨이, 자폐적인 성향 등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다만 이러한 성향으로 정유정의 범행 동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며 정유정에게 지난 5년 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이 같은 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1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밀실 안의 살인자 정유정은 누구인가?'라는 부제로 잔혹한 사건의 범인, 살인자 정유정을 조명했다.

체포 직후 정유정은 과외 앱을 통해 영어 과외를 받고 싶어 피해자를 찾아갔다가, 말다툼이 생겨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취재진은 정유정이 계획적 범행을 저질렀다는 단서를 여럿 확보했다.

정유정은 범행 3개월 전부터 '시신 없는 살인'에 대해 집중 검색했다.

정유정은 범행 직전 중학생으로 보이기 위해 긴 머리를 잘랐고, 사건 당일 미리 구매한 중고 교복을 입고 중학생인 척 위장했다.

범행 대상은 과외 앱에서 물색했는데, 접근한 사람이 피해자 한 명이 아니었다. 사건 발생 직전 정유정에 과외 문의를 받았다는 과외 선생 둘은 피해자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학부모라고 소개하며 접근해왔다고 전했다. 또 한결같이 '혼자 살고 있는지', '선생님 집에서 과외받는 것이 가능한지' 등의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정유정은 20대 고학력자 중 자택에서 과외가 가능한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노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범행 후 도주하지 않고 확인 사살을 한 점, 시신을 훼손한 후 유기한 점까지 우발적 범죄와는 거리가 멀며 일반적인 성향의 범죄와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정유정은 "평소 범죄 수사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고, 살인에 대한 충동이 있어서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정유정은 이후 변호사가 오기 전까지 진술하지 않겠다고 진술을 거부하고, 심신 미약을 주장했는데 이를 전문가는 "미리 학습한 내용들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정유정이 고3이던 2017년 당시 한 회사 면접관이었다는 제보자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정유정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면접관은 당시 정유정이 ‘검정고시 후 취업준비 중’이라며 골프장 캐디에 지원했는데, 면접 때 고개를 푹 숙이고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다만 면접에서 탈락한 정유정이 2~3차례 다시 이력서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화풀이를 하며 회사 게시판에까지 탈락 이유를 확인하는 등 집요함을 보였다고 전했다.

정유정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환경을 바꾸고 싶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유정은 캐디 지원 당시 '기숙사 생활'을 희망한다는 점을 썼는데, 부모의 이혼 후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반영됐을 거란 분석이다.

정유정이 ‘신분 탈취'를 노리고 범행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정유정은 최초 진술에서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다른 사람이 범행 중이었다. 범인이 나에게 피해자 신분으로 살게 해 줄 테니 시신을 숨겨달라고 했다"라는 주장을 했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피해자의 신분으로 산다는 것이 보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피해자의 신분이나 환경에 동경이나 열망이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신분으로 사는 것이 보상인 것처럼 말한다"라며 "이런 방법으로 타인의 신분으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라고 본인만의 세계관에서 상상했을 수 있다"고 정유정의 심리를 추측했다.

그리고 정유정이 경찰 조사에서 영화 '화차'를 반복 감상했다고 언급한 것에도 주목하며 범행 후 피해자의 옷을 입고 나온 것 또한 그러한 욕구의 반영이라고 했다

영화 '화차'는 주인공 장문호(이선균 분)가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 강선영(김민희 분)을 찾는 과정에서 강선영은 차경선이라는 여자가 신분을 사칭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전문가는 "왜곡된 목적이 설정되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범죄적인 행동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다. 결국 스스로 살인 판타지를 키우고 실행에 이르렀다"라고 했다.

이밖에도 정유정이 위기에 처하자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사이코패스가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졌다. 실제 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28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대표는 "높은 점수를 받을만한 항목에 해당되는 것이 없다. 높은 점수받기에 무리가 있다"라며 "섣부르게 사이코패스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찾아가서 죽이는 행동에 합리적 설명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정유정이 날 때부터 사이코패스라고 단정 지어야 안심하게 된다"라며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정유정은 사이코패스다. 정유정은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다, 이런 순환 논리에 갇히게 된다"라고 성급한 판단을 경계했다.

전문가들은 정유정의 범죄에 대해 은둔형 외톨이 범죄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정신과 전문의는 정유정의 성향에서 자폐적인 성향이 보인다고 주목했다. 특히 정유정의 경우에는 고기능성 자폐, 아스퍼거의 특성을 가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으로 범행의 동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정유정에게 지난 5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이 같은 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표 대표는 "정유정은 섣불리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그가 왜 이런 괴물이 됐는지 그 과정 중에 우리 사회가 발견하거나 막을 수 있는 여지는 없었는지 주목해야 한다"며 "정유정을 섣불리 단순하게 규정지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이정숙 부산닷컴 기자 js021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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