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 ‘전두환 호’ 딴 일해공원 명칭 유지한다
제3차 지명위원회서 명칭 변경 주민청원 ‘부결’
주민 토론회·공론화 참여 기구 구성 권고도
시민단체 “부결은 꼼수…새로운 운동 돌입”
경남 합천군 일해공원 표지석. 16년 동안 명칭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현우 기자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따 이름 지어진 경남 합천군 ‘일해(日海)공원’의 지명이 유지된다. 원래 명칭인 ‘새천년 생명의 숲’으로 바꿔달라는 주민 발의 제정안이 최종 부결됐다.
합천군은 19일 군청 소회의실에서 제3차 합천군지명위원회를 열고 2021년 12월 주민 1500명이 발의한 ‘일해공원 명칭 변경 주민청원’을 부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날 지명위원회는 전체 7명 위원 중 개인 사정 등으로 불참한 2명을 제외하고 5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명칭을 존치하자는 의견과 변경하자는 양측 주장이 대립되고 있어, 현 ‘일해공원’ 지명을 ‘새천년 생명의 숲’으로 지명으로 제정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공원명칭 논란이 수년 간 지속돼 온 만큼 주민 의견을 모을 수 있는 토론회나 공론화 참여 기구를 구성할 것을 권고했다.
조건부 기각이지만 주민 의견이 합치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공원 명칭 변경을 거부한 셈이다.
합천군 이정열 기획담당은 “앞으로 지명위원회 권고에 따라 민간협의기구를 구성, 주민 의견을 수렴해 공원명칭을 재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은 19일 합천군지명위원회를 열고 ‘일해공원 명칭 변경 주민청원’을 부결했다. 합천군 제공
주민청원을 진행한 새천년 생명의 숲 되찾기 운동본부는 지명위원회 판단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19일 오후 군청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률과 규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합천군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존치와 변경이 대립돼 지명제정이 적합하지 않다면, 부결시킬 게 아니라 재공모해야 하는 것이 옳다”면서 “공원지명을 제정해달라는 청원을 부결한 것은 존치 쪽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의결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원명칭에 ‘일해’라는 지명을 부여한 것은 공간정보관리법과 정부 지명 규정을 위반한 행위”라며 “기존 지명을 다시 사용하거나 군민들에게 새로운 지명을 공모하여 제정하라”고 주장했다.
고동의 운동본부 간사는 “상급기관의 심의를 피하기 위해 지명을 의결하지 않고 우리가 제출한 안만 부결시키는 꼼수를 썼다”며 “부결 결정에 법률적 하자가 없는지 살펴보는 한편, 공원 이름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운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일해공원 명칭이 법과 편람에 명시된 헌법 정신을 위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지명 표준화 편람’ 제2장 지명 표준화 원칙을 보면 ‘대한민국의 지명 표준화는 헌법과 법률이 지향하는 가치를 반영해야 하며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원리, 국민의 행복추구권 등이 포함된다’고 규정돼 있다.
반면 일해공원은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학살 주동자인 전두환 호를 공원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어 헌법과 법률,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천년 생명의 숲 되찾기 운동본부’는 지명위가 꼼수를 쓰고 있다며 새로운 운동에 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김현우 기자
또 생존 인물 지명 배제 원칙을 어겼다는 지적도 있다. 일해공원 명칭은 전두환 생존 당시 지어졌다.
여기에 지명 표준화 편람에는 ‘사후 10년이 지난 인물 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전두환은 2021년 숨졌다.
한편 군은 지난 2004년, 경남도 지원을 받아 합천읍 황강변에 ‘새천년 생명의 숲’이란 이름으로 공원을 만들었다.
그런데 2007년 돌연 전두환의 아호인 ‘일해’를 본 따 일해공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전두환의 고향이 합천이라는 점을 이용해 대외적으로 합천을 알리겠다는 의도였는데, 이후 16년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21년 12월에는 운동본부가 주민 1500명의 의견을 모아 주민청원을 신청하면서 지난해 1월 공원 명칭과 관련한 첫 합천군지명위원회가 열리기도 했다.
1차 회의에서는 ‘새천년 생명의 숲’ 변경안 검토에 들어가 토론회 형태의 주민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기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공원 명칭 유지와 변경의 입장차가 커 결국 토론회는 무산됐다.
한 달여 뒤 열린 2차 지명위원회에서는 일해공원 명칭 변경 관련 심의와 의결을 보류했다.
이후 문준희 전 합천군수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군수직을 박탈 당하면서 지명위원회는 1년 넘게 열리지 않았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