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당 현수막 ‘역대급 난립’, 정치 실종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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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가 정해 준 선거법 개정 시한
여야 정쟁으로 어겨 입법공백 초래

여야가 ‘정치 현수막’ 규제 법안을 시한 내에 처리하지 못하고 ‘네 탓 공방’에만 열을 올린다. 1일 서울의 한 길거리에 난립한 정당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여야가 ‘정치 현수막’ 규제 법안을 시한 내에 처리하지 못하고 ‘네 탓 공방’에만 열을 올린다. 1일 서울의 한 길거리에 난립한 정당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곳곳에 무분별하게 설치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정당 현수막이 더 난립하게 됐다. 지난해 12월 정당 현수막 설치가 무제한 허용된 터에 최소한의 규제 장치조차 국회의 무능과 해태로 지난 1일부터 효력을 잃게 된 탓이다. 현수막 관리 기준을 구체화하려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무산된 것인데, 국민은 이제 말 그대로 현수막 홍수 속에 살아야 하는 형편에 처했다. 앞으로의 선거 역시 독설과 비방의 현수막 난장판이 되게 생겼다. 선관위가 나선다 해도 관련 법 조항이 없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혼란이 불 보듯 뻔한데도 현 사태를 초래한 정치권은 ‘네 탓 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어찌 개탄하지 않겠는가.

정당 현수막의 폐해가 지적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만들고 설치하고 폐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고, 소각 처리 때 발생하는 독소와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거기다 현수막으로 인한 안전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3년 전 부산 해운대구에선 현수막이 시야를 가려 자동차가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래저래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정당 현수막이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당의 정책과 정치 현안을 알리라고 허용해 준 현수막인데 정작 내용이나 문구는 공격적이고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이 주를 이룬다. 정치 발전은커녕 오히려 정치 혐오만 부채질하는 꼴이다.

규제하는 게 마땅한데 이를 위한 법 개정은 여야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무산됐다. 그 과정을 들여다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는 기존 공직선거법의 ‘선거일 180일 전부터 현수막 설치 금지’ 등의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지난달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를 방치하다 지난달에야 부랴부랴 개정안 논의에 들어갔고 결국 시한 내에 처리하지 못했다. 기존 법은 헌법에 위배되고 새 법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입법공백 상태가 된 것이다. 국회가 국민을 조금이라도 의식했다면 이런 한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다.

헌재가 1년의 시간을 주었는데도 입법공백을 초래한 것은 국회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그 폐해를 애꿎은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도대체 그동안 국회는 무엇을 했느냐고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에서 정치는 실종되고 여야 간 정쟁만 남았다는 세간의 비평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이번 사태로 새삼 확인하게 된다. 총선 1년 전까지로 돼 있는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을 오래전에 넘겨버린 국회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외치던 정치개혁은 말만 무성할 뿐 여태 아무런 진척이 없다. 국민의 시선 따위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가. 조금이라도 책임을 느낀다면 여야는 지금이라도 당장 선거법 개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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