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삼풍’ 악몽 소환한 ‘순살 아파트’ 공포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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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판 공법 삼풍백화점 참사 올해 28주년
아파트 건설 현장에 '철근 누락' 다시 등장
설계·시공·감리 '총체적 부실' 바뀐 것 없어

6월 29일은 올해로 삼풍백화점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무너진 지 28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사진은 당시 백화점 붕괴 현장. 연합뉴스 6월 29일은 올해로 삼풍백화점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무너진 지 28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사진은 당시 백화점 붕괴 현장. 연합뉴스

‘순살 아파트’ 공포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중 지하 주차장을 철근 없는 기둥으로 만든 아파트 15개 단지가 공개됐다. 부산·경남에서는 양산 사송단지 2곳이 포함됐다. 그 충격파는 이제 민간 아파트로 이동 중이다. 정부는 이른바 ‘무량판 구조’로 지은 전국 293개 아파트 단지로 안전 점검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부산을 포함한 민간 아파트 상당수는 주거동까지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량판 구조는 1995년 붕괴한 삼풍백화점이 채택한 공법이다. 그래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다. ‘삼풍’과 ‘무량판’, 이 조합의 소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래픽=연합뉴스 제공 그래픽=연합뉴스 제공

■ 무량판 공법이 뭐길래

무량판 공법은 ‘대들보(梁)를 쓰지 않는다(無)’는 그 이름에서 의미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수평구조 부재인 보 없이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수직재의 기둥에 슬래브가 바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슬래브는 기둥 상판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말한다.

무량판 구조는 벽식 구조(슬래브+벽체)나 라멘 구조(슬래브+보+기둥)와 달리 벽이나 보를 설치하는 공간이 없어도 된다. 그래서 실내를 넓게 활용하고 층고도 줄일 수 있다. 층간소음이 줄어드는 이점도 있다. 무엇보다 공사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크다.

하지만 기둥 주위로 전달되는 하중이 커서 균열에 취약한 만큼 안전성 강화는 필수적이다. 슬래브에는 가로로 길게 철근이 들어가는데 이를 수직 철강으로 보강해야 한다. 주로 기둥 상판 부근에 보강하는 철근을 전단보강근(剪斷補强筋)이라고 한다. ‘전단’은 위에서 누르는 힘과 밑에서 올리는 힘이 부딪혀 어긋나는 것을 뜻한다. 순수한 무량판 구조로는 건축허가 자체가 나질 않는다. 철근 보강은 구조 기준에 명시된 사항이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순살 아파트’는 어찌 된 일인지 전단보강근이 필요한 만큼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연결 부위를 제대로 보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뚫림 전단(punching shear)’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하중이 실린 천장이 그대로 구멍(기둥)을 뚫듯이 내려앉는 걸 말한다. 층이 높은 건물이라면 최악의 경우 상층부부터 차례로 아래층까지 떨어져 연쇄 붕괴할 위험성이 높다. 마치 떡시루처럼 겹겹이 쌓인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삼풍백화점 붕괴다.


2022년 1월 광주 화정 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외벽이 붕괴된 모습. 주거동에 무량판 공법을 적용했던 곳이다. 연합뉴스 2022년 1월 광주 화정 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외벽이 붕괴된 모습. 주거동에 무량판 공법을 적용했던 곳이다. 연합뉴스

■ 되살아나는 ‘삼풍’ 트라우마

6월 29일은 건국 이래 최대 참사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 28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사고 당시 건물 전체가 내려앉은 처참한 광경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약 1500명의 사상자 중 사망자 수 502명은 전 세계 건물 붕괴 사고 가운데 11위 기록이다. 부실 설계와 시공, 무리한 증축과 불법 확장, 인허가 관청의 부정부패, 건설업계의 비리, 경영진의 안일한 대응 등 총체적 과실의 결정판. 한국인에게는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은 참사다.

여기에는 삼풍백화점에 적용된 무량판 공법의 부실도 한몫했다. 설계대로라면 기둥과 천장 사이에 하중 전달을 보조하는 지판이 하나 더 설치돼 기둥 철근과 수평 철근이 잘 연결됐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판 두께가 불충분했다. 일부 기둥은 아예 지판 자체가 없어 기둥과 천장의 철근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상판의 수평 철근 끝부분도 ㄴ자의 갈고리 형태로 시공돼 상판 침하에 따른 연쇄 붕괴를 막는 제동장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양이 아니라 그냥 평평했다.

이마저도 모자랐던 걸까. 기둥들은 설계상의 지름보다 크기가 25%나 줄었고, 어떤 것은 아예 용도 폐기되기까지 했다. 사고 당시 5층 건물이 완전히 주저앉는 데 단 5분밖에 걸리지 않은 건 그런 이유다.

참사 이후로 무량판 공법은 상가나 전시 건물 말고는 별로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부터 공사비 절감과 내부 공간 활용이라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아파트 단지의 지하 주차장을 중심으로 다시 채택되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무량판 구조를 주거동에도 적용하는 아파트가 늘어났다고 한다. 내부 리모델링이 어려운 벽식 아파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준공된 전국 민간 아파트 중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단지는 모두 293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05개 단지는 공사가 끝나지 않았고 188개 단지는 이미 입주를 마친 상태다. 일부는 지하 주차장뿐 아니라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는 무량판 공법에 전단보강근이 누락된 경우이고, 2022년 1월 외벽이 붕괴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는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를 채택했던 곳이다. 그 이전의 사례도 적지 않은데, 그동안 위험의 징조는 꾸준히 확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2일 오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경기도 오산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보강 공사를 위한 잭 서포트(전단보강 기둥)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경기도 오산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보강 공사를 위한 잭 서포트(전단보강 기둥)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 ‘천민자본주의’ 그늘 언제까지…

국토부가 지난달 31일 아파트 철근 누락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내용은 충격적이다. △구조 계산을 잘못하거나 아예 누락한 경우 △제대로 구조 계산을 해 설계에 반영했지만 시공 과정에서 전단보강근이 빠진 경우 △설계 도면을 잘못 그리거나 다른 층의 엉뚱한 도면으로 시공하는 경우 등등. 최근 잇따르는 언론 보도를 보면, 실제 공사 현장에서 철근을 빼돌려 이익을 남기는 공공연한 관행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쏟아지는 현장의 관련 증언과 보도는 사람들의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물론 무량판 공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정밀한 설계와 철저한 시공을 거쳐야 하는데, 실수든 의도든 그냥 지나치는 관행이 쌓이고 쌓인 게 문제다. 무량판 공법과 관련해서 지금 현장의 전문성은 전반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와 감리사의 상호 검증 장치가 부실했고 정부의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전 세계에 ‘천민자본주의’의 오명을 남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건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간 제기된 설계의 재하도급, 시공 과정에서의 다단계 하도급, LH 출신의 전관예우, 이로 인한 설계·감리 부실, 묵인·짬짜미 의혹 등 여전히 무수한 비리와 불법이 도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건설 전반의 모든 문제점들을 파악해 제대로 된 종합대책을 내놔야 한다. 어째서 '순살 아파트'가 ‘프리패스’ 사용 승인을 받을 수 있었나. 철저하게 조사하고 그 책임을 묻지 않으면 100년이 지나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없을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김건수 논설위원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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