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극장에서 본 ‘더 문’·‘비공식작전’…공들인 티 확실
여름 성수기를 노리고 일명 ‘빅4’가 연이어 개봉하면서 부진에 빠진 한국 극장가가 반등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앞서 지난달 27일 개봉한 류승완 감독 신작 ‘밀수’가 순항하는 가운데, 우주를 배경으로 한 한국형 SF 영화 ‘더 문’과 실화 기반 외교관 구출 작전을 다룬 ‘비공식작전’이 지난 2일 동시 개봉해 3파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는 9일에는 이병헌 주연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해 4파전으로 확장될 예정입니다.
현재까지 승자는 ‘밀수’입니다. 4일 영화관입장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밀수’는 전날 18만여 명의 관객을 모아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습니다. 이어 ‘비공식작전’이 전날 9만 4000여 명으로 2위였고, ‘더 문’(5만 4000여 명)은 6만 6000여 명을 모은 ‘엘리멘탈’의 뒷심에 밀려 4위에 머물렀습니다.
극장가 구원투수로 주목받던 ‘더 문’과 ‘비공식작전’의 성적이 예상보다 저조해 예매를 망설이고 있을 독자들을 위해 직접 극장에서 관람한 후기를 전합니다.
영화 ‘더 문’과 ‘비공식작전’. CJ ENM·쇼박스 제공
‘신과 함께’ 감독 손에 탄생한 한국형 SF ‘더 문’
“글쎄…” 극장에서 처음 ‘더 문’ 예고편을 봤을 때 기대보단 의심과 우려가 앞섰습니다. ‘SF 영화 불모지’ 한국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크게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2021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승리호’와 ‘고요의 바다’ 등으로 도전장을 던져 보기는 했지만, 크고 작은 아쉬움을 남겼다는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인터스텔라’(2014), ‘그래비티’(2013), ‘마션’(2015)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관객의 눈을 잔뜩 높인 영향도 있습니다.
지난 2일 베일을 벗은 ‘더 문’을 직접 봤더니, 우려와 달리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른 관객들도 “기대 없이 봤는데 재미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더 문’은 2029년 한국의 첫 유인 달 탐사선 ‘우리호’가 우주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영화 속 한국은 2024년 처음으로 쏘아올린 유인 달 탐사선 ‘나래호’가 대기권에서 폭발하는 대형 참사를 겪은 뒤 ‘우주연합’에서 퇴출 당합니다.
이후 독자적 기술 개발과 여러 차례 발사 연기 끝에 5년 뒤인 2029년 이상원(김래원), 조윤종(이이경), 황선우(도경수) 3명의 우주대원을 태운 달 탐사선 ‘우리호’ 발사에 성공합니다.
문제는 우리호가 달로 항해하던 중 발생합니다.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며 발생한 태양풍의 영향으로 우리호 선체에 이상이 생긴 것이 화를 불렀습니다. 공군 출신 베테랑 선배인 이상원과 조윤정은 사고로 숨지고, 해군특수전전단(UDT) 출신 대원이자 창창한 20대 청년인 황선우만 홀로 우리호에 남게 됩니다.
영화 ‘더 문’. CJ ENM 제공
선우는 좌절에 빠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본래 목적대로 달 탐사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번엔 쏟아지는 유성우 때문에 달의 뒷면에 고립됩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선우를 구하기 위해 정부와 나로 우주센터는 최선을 다합니다. 5년 전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전임 센터장이자 우주선을 설계했던 김재국(설경구)이 복귀해 구조작전을 지휘하지만, 저 멀리 우주에 고립된 선우를 돕기 위해 지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입니다.
재국은 전처인 미국항공우주국(NASA) 유인 달 궤도선의 메인디렉터 윤문영(김희애)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문영도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영화를 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은 주연 배우인 설경구와 도경수의 호연에서 나옵니다. 설경구는 남다른 결단력과 열정으로 카리스마를 선보이면서도 가슴 한 켠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김재국을 완벽히 연기했고, 도경수는 내면의 아픔이 있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시련을 이겨내는 황선우의 감정을 잘 전달했습니다. 영화엔 달에 착륙한 선우가 천천히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특수효과를 적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도경수가 느릿느릿 걸었다고 합니다.
‘신과 함께’ 시리즈를 연출한 김용화 감독 작품답게 시각효과도 훌륭합니다. 달 착륙 장면 등 일부 컴퓨터 그래픽 티가 나는 장면이 있지만, 대체로 우주 공간과 달의 표면이 정교하게 구현됐습니다. 달에 충돌하는 유성우의 파편을 뚫고 선우가 탈출하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였습니다. 극 초반에 우주를 유영하는 대원들의 모습은 실제 무중력 상태에서 촬영한 듯 실감납니다. 기자는 아이맥스로 감상해 영상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주선이 흔들리거나 유성우가 충돌하는 장면 등 4DX 효과를 신나게 즐길 수 있을 법한 장면도 많았습니다.
영화 ‘더 문’. CJ ENM 제공
이야기 설정과 전개, 연출 등에서는 조금씩 아쉬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선우를 극한의 상황에 몰고 가기 위한 설정 중 일부는 억지스럽거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예컨대 재국에게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아들이 바로 선우입니다.
김 감독 특유의 신파적 연출은 역시 호오를 가르는 요소입니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단역인 우주센터 직원들까지 작위적인 연기를 펼치게 한 것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신파가 전체 영화의 흐름이나 감정선까지 깨뜨릴 정도로 과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극의 현실감을 살리는 요소들은 양날의 검입니다. ‘더 문’에는 우주 관련 전문용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 용어들이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시종일관 전문용어가 쏟아져 나오니 문과인 기자는 조금 피로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선우와 우주센터가 실제로 마이크를 통해 통신하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한 음향효과가 현장감을 살리긴 하지만, 일부 대사는 먹먹하게 들려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더 문’은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극장에서 가족과 함께 즐기기 좋은 완성도 높은 대중영화입니다. 인류애, 용서, 화해, 용기와 같은 핵심 메시지도 거부감 없이 전달됐습니다. ‘SF 불모지’라는 오명이 ‘더 문’의 흥행을 통해 지워지길 기대합니다.
영화 ‘비공식작전’. 쇼박스 제공
‘교섭’ 닮았지만 완성도 훨씬 높은 ‘비공식작전’
배우 하정우와 주지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직접 봤던 두 배우는 묘하게 이미지가 비슷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뺀질뺀질하면서도 강단 있는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습니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는 연속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배우가 출연한 버디영화 ‘비공식작전’은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의 신작 ‘더 문’과 같은 날 개봉해 진검승부를 펼치게 됐습니다. 버디영화란 동성인 두 배우가 패를 이뤄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 장르를 뜻합니다.
비공식작전은 1986년 레바논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한국 외교관 도재승 서기관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이듬해인 1987년입니다. 외무부 중동과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사무관 이민준(하정우)은 무장단체에 납치된 후 1년 8개월 동안 행방이 묘연하던 외교관으로부터 생존 신호가 담긴 전화를 받습니다. 민준은 무장단체에 돈을 건네고 외교관을 구하는 비공식작전에 자원합니다. 위험한 임무지만, 미국 발령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인생을 걸었습니다.
브로커를 통해 무장단체를 만나려던 민준의 계획은 레바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꼬입니다. 거액의 협상금을 노린 현지 공항경비대의 총알세례를 벗어나려다 우연히 한국 출신 택시기사 김판수(주지훈)의 택시에 올라타면서 두 사람의 기묘한 모험이 시작됩니다.
영화는 중동을 배경으로 하는 실화 바탕의 구조·탈출 장르라는 점에서 ‘모가디슈’(2021)를 연상케 하는데, 전반적인 흐름은 올해 초 개봉한 ‘교섭’과 더 비슷합니다. 아프간 피랍 사태를 모티브로 한 ‘교섭’은 외교부 직원인 정재호(황정민)와 국정원 직원인 박대식(현빈)의 브로맨스를 그렸습니다. ‘교섭’에선 현지 사정에 밝은 한국인 도박꾼 카심(강기영)이 감초 역할을 했는데, ‘비공식작전’에선 카심 캐릭터가 김판수 역할을 맡은 격입니다.
전개는 비슷하지만, 두 영화의 만듦새를 비교하면 비공식작전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교섭에선 황정민과 현빈이 갈등을 벌이다 화합하는 일련의 과정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고, 전형적인 감초 역할에 그친 카심 캐릭터의 활용도 애매했습니다. 반면 비공식작전은 하정우와 주지훈 두 사람이 우정을 쌓는 서사에 관객이 집중할 수 있도록 감정선 완급조절에 성공했습니다.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는 두 사람이 서로 부딪치며 성장하는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대의보다 미국 발령에 관심이 있던 민준은 현지에서 생사의 기로를 오가면서 점점 희생정신을 갖춘 훌륭한 외교관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그런 민준과 어쩌다 엮인 탓에 함께 고생한 판수는 돈만 밝히던 속물에서 ‘건실한 청년’이 됩니다. 무뚝뚝하지만 열정 넘치는 하정우와 뻔뻔하지만 정이 많은 주지훈의 티키타카는 자연스러운 웃음과 감동을 자아냅니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액션의 농도가 짙어지며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그중에서도 총격이 난무하는 자동차 추격씬은 박진감을 살린 촬영 기법과 배우들의 호연이 어우러져 긴장감이 상당했습니다. 주지훈은 자동차를 고속으로 몰다가 급격히 방향을 꺾는 ‘드리프트’를 직접 해냈다고 합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사운드’에 공들인 티를 내는데, 액션씬에 돌입하면서 음향효과가 진가를 발휘합니다.
영화 ‘비공식작전’. 쇼박스 제공
영화 ‘비공식작전’과 ‘더 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공식작전 속 정부는 무능합니다. 안기부는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 이슈에 관심이 있을 뿐, 외교관 한 명의 목숨 정도는 우습게 생각합니다. 구조 과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됩니다. 이를 극복하고 외교관을 구해낸 건 소시민들의 희생과 용기였습니다.
같은 날 개봉한 ‘더 문’ 속 정부도 비슷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조한철)은 달에 고립된 선우를 구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긴 하지만, 문과 출신이라 우주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때로는 선우의 안전보다 정부의 위신을 더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한국 정부나 국회가 무능하게 그려지는 건 지독한 ‘현실 반영’이기도 합니다. 엄청난 폭우에도 도로를 제때 통제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내는가 하면, 새만금에서 진행 중인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준비 태만 탓에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정부 국정과제인 우주항공청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은 여야 대치가 이어지며 표류 중입니다. 정쟁에만 몰두한 무능한 정치는 영화 속에서나 볼 날이 과연 올까요.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