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실버타운과 양로원 사이 다른 선택지가 없다
노인 주거 ‘부익부 빈익빈’
관리비 월 수백만 원 실버타운
중산층 노인 감당하기엔 버거워
부산 노인 주거시설 턱없이 부족
단순 주거환경개선 사업 머물러
노인 주거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중간층 아우를 다양한 정책 필요
0.09%.
2022년 기준 전국의 민간 노인복지주택(실버주택)에 입소한 고령인구(만 65세 이상)의 비율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노인복지주택 39개소에 입소한 인원은 8121명으로 전체 고령인구 926만 7290명의 0.1%에도 못 미친다.
민간 실버주택은 현행법상 분양이 아닌 장기임대방식으로 공급돼 보증금에 더해 수백만원에 달하는 월 관리비를 부담해야 한다. 고령자복지주택 등 공공실버주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민간 실버주택은 자산과 경제력을 갖춘 부유층을 대상으로 공급돼 왔다. 최근에는 부유층을 겨냥한 실버타운 공급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호화 실버타운을 내세우며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공급된 ‘라우어’의 경우 국민 주택 규모인 30평대 보증금이 5억 850만~6억 5710만 원대에 달했다. 단순히 보증금만 따지더라도 올해 평균 4억 원대로 전세계약이 이뤄진 ‘해운대아이파크’나 ‘해운대마린시티자이’ 전용 84㎡ 수준을 훨씬 웃돈다. 여기에 2인 기준 매달 300만 원 안팎의 관리비를 부담해야 해 충분한 경제력이 없는 대다수 노년층에게는 사실상 ‘넘사벽’으로 여겨진다.
■ 초고령 부산, 노인주거 정책은 ‘편식’
이처럼 시장 원리에 따라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실버주택 공급이 늘어나면서 주거 격차로 인한 양극화가 더욱 가속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부산은 7대 특별시·광역시 중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고령자를 배려한 주거 시설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부산은 전국 주요 도시에 비해 양로시설,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 등 노인주거복지시설 수준이 매우 열악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부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1만 2412명으로 전국 7대 특별시·광역시 중 서울(165만 8207명) 다음으로 많지만, 노인주거복지시설 수는 서울(23곳), 인천(18곳), 대전(8곳), 부산(6곳) 순으로 인구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 부산에는 양로시설 4곳, 노인공동생활가정 1곳, 노인복지주택 1곳 등 총 6곳의 노인주거복지시설이 있다.
특히 노인주거복지시설 1곳이 부담해야 할 노인 인구는 9만 7000여 명으로 전국 7대 특광역시 중 부산이 가장 높다.
부산연구원 이재정 책임연구위원은 “부산은 전국 다른 지자체에 비해 고령화가 약 5년 빠르게 진행되는 곳인데도 지역별 노인 인구와 노인복지시설, 시설 근무인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노인주거복지 서비스 수준이 가장 열악한 지역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노인주거복지시설 공급은 지지부진하다. 부산시가 2016년부터 추진중인 ‘부산시 1호 공공실버주택’ 건립 사업은 8년째 무기한 중단된 상태다. 더구나 시는 나날이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데도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주거시설 공급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산의 주거복지시설 6곳 중 양로시설과 노인공동생활가정 등 5곳은 사실상 저소득층 노인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또 부산시에서 시행하는 노인 주거 관련 정책은 저소득 계층 노인을 대상으로 한 주거환경개선 사업에 그친다. 노인 생활 공간에 조명, 안전손잡이 등을 설치하거나 도배·장판 개보수 등 기존에 살던 집을 리모델링해주는 주거환경개선 서비스 등이다.
■ 노인 주거정책 패러다임 전환해야
통계청은 2025년 전체의 20.6%인 고령인구가 2035년 30.1%, 2050년 40.1%에 달할 것이라 예측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부산의 노인 주거 정책이 저소득층 지원 중심에서 벗어나 노인 계층 전반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초고령 시대에 따라 다양한 노년 계층의 수요에 맞는 주거 형태를 지원하는 공공 주거 정책이 마련돼 앞으로 닥칠 노인 주거 격차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LH토지주택연구원 진미윤 정책지원단장은 “평범한 중산층 노년이 민간에서 값비싸게 공급되는 노인 주거시설의 이용료를 감당할 수 없다면 양로원, 요양병원을 이용하는 것 말고는 마땅한 대안이 없어 각자도생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엔 아주 비싼 실버타운이나 저소득층 노인주택만 있어 ‘중간 모델’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베이비붐 세대인 5060세대가 고령화되면서 퇴직 이후의 주거와 삶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는만큼, 노인 주거 문제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중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라대학교 한지나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주거 정책에 있어 형식과 방식의 변화가 모두 필요하다”며 “‘노인주택’이라는 이름을 붙여 획일적으로 원룸 아파트를 짓거나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유주택, 셰어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를 장려하고, 정부와 민간 기업 파트너십을 통해 노년에도 자기가 살던 마을과 동네에서 다양한 방식의 주거 형태를 보장받을 수 있는 주거 대책과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