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이야기] 젊은 피 수혈하면 젊어질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박정현 인제의대 부산백병원 내과 교수 / 동남권항노화의학회 회장

수많은 공포영화의 원조가 되는 인물 중 하나가 드라큘라 백작이다. 다른 사람들의 피를 마시며 영생과 영원한 젊음을 누리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와 유사한 존재인 뱀파이어 또한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다. 최근에는 미국의 한 백만장자가 항노화 치료를 위해 10대 아들의 혈액을 정기적으로 수혈받는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젊은 사람의 피 속에 늙은 사람을 젊어지게 하는 성분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이렇게 뿌리가 깊다. 유럽 각국에서는 이러한 행위들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1900년대 초반 러시아에서는 공개적으로 이에 대한 임상시험(?)이 있었다. 레닌의 딸도 참여했다고 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젊은 사람의 혈액을 투여받은 사람은 활기가 넘쳤고,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으며, 인지 기능과 성 능력도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험을 주도했던 의사 알렉산더 보그다노프는 자살했는데, 반복적인 수혈에 의한 부작용으로 발생한 정신질환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1950년대 초반 미국 코넬대의 과학자들은 늙은 쥐와 젊은 쥐를 사용한 병체결합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수술을 통해 늙은 쥐와 젊은 쥐의 혈관을 연결한 상태로 관찰한 것이며, 늙은 쥐가 젊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미국 스탠퍼드와 버클리대학의 과학자들이 이 실험을 다시 정교하게 시행했다. 늙은 쥐는 거의 모든 노화 지표가 젊어진 반면, 젊은 쥐는 심한 조로 현상과 일찍 죽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 실험을 통해 젊은 쥐의 혈액 속에 노화를 억제 혹은 치료하는 성분들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후 이러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후보 물질이 여러 개 발견됐다. 이 분야의 연구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2016년 미국 스탠퍼드 의대 출신들이 암브로시아라는 벤처회사를 설립해 젊은 사람의 혈액으로 만든 혈장을 투여하는 항노화 치료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참여자가 8000달러를 내야 하는 시험이었는데, 1년 만에 600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식품의약품안전청이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근거 미비를 공개적으로 우려했고 시험은 중단됐다.

단기간 소량의 수혈은 장단기적으로 건강에 거의 위해가 없다. 하지만 장기간 반복적으로 수혈이 이뤄지는 경우 어떠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자료는 아직 부족하다. 젊은 사람의 혈액 속에는 육체와 정신을 젊게 유지하는 수많은 성분이 당연히 들어 있다. 그들의 혈액을 수혈받으면 젊어진 듯한 활력과 함께 외관 역시 일시적으로 젊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통제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아픈 것처럼, 그 효과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노화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젊은 사람의 피를 수혈받기보다는 젊은 사람들을 따라 하면 어떨까? 활기차고 즐겁게, 꿈과 희망을 다시 가지고, 열심히 운동해서 날씬해지고. 이게 더 근본적인 항노화 치료가 아닐까?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