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난민 학살 의혹… 인권단체 “엑스포 개최 자격 없다”
국제단체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
국경수비대가 총·박격포로 공격
여성 등 655명 사망 증언 쏟아져
“엑스포 후보서 사우디 제외를”
12개 국제 인권단체 BIE에 촉구
‘네옴시티 프로젝트’도 인권 논란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수비대가 최근 15개월간 아프리카 이주자 수백 명을 학살했다는 국제인권단체 보고서가 나왔다. 국경수비대가 여성과 아동이 다수 포함된 비무장 이주민들을 상대로 총은 물론 박격포 등 폭발 무기까지 사용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국제사회에서는 그동안 사우디의 인권 탄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최소한 난민 수백 명이 학살당하는 또 다른 사우디의 인권유린 사태가 불거지면서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를 놓고 한국과 경쟁 중인 사우디의 엑스포 유치 행보에도 적신호가 켜질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 국제 인권단체들은 사우디의 2030엑스포 개최 자격을 문제삼고 나섰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1일(현지 시간) ‘그들이 우리에게 총알을 비처럼 퍼부었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사우디 국경수비대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6월까지 약 15개월간 에티오피아 이주민 집단을 수십 차례 공격해 최소 65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에티오피아 이주민 38명을 포함해 42명의 증언, 법의학 전문가들의 검증, 현장 사진·영상, 사우디·예멘 국경지역 위성사진 분석 결과 등이 담겼다.
인터뷰에 응한 에티오피아 이주민들은 당시 사우디 국경수비대의 무자비한 공격을 증언했다. 이주민들은 대개 집단을 이뤄 월경을 시도했는데 국경수비대는 이들에게 박격포 등 포탄을 쏘거나 근거리 총격을 가했다. 한 생존자는 약 170명이 함께 국경을 건너려다 국경수비대의 공격을 받아 90명이 숨졌다고 말했다. 지난 2월 60명가량으로 구성된 집단과 함께 국경을 넘으려던 14세 소녀 함디야는 “포탄 공격으로 약 30명이 숨졌다”고 증언했다.
HRW 난민·이주민 인권부서의 나디아 하드먼은 영국 BBC방송에 “최소 655명이지 실제로는 (희생자가) 수천 명은 될 것 같다”며 “우리가 기록한 것은 본질적으로 대량 학살이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는 더 충격적인 내용도 있다. 사우디 국경수비대가 추방 명령을 받아 예멘으로 돌아가던 에티오피아 이민자까지 공격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피해를 입은 20대 여성은 “국경수비대가 우리를 차에서 모두 내리게 한 뒤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1km가량 달아나 쉬고 있는데 그들이 우리를 향해 박격포를 발사했다”고 말했다. HRW는 보고서에서 “사우디 국경수비대의 행위가 사우디 정부의 이주민 살해 정책의 일부로 자행된 것이라면 이는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강조했다. 사우디 정부는 이 같은 주장을 정면 부인하고 있다.
사우디의 인권 탄압 논란은 하루 이틀 사안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에티오피아 이주민 학살 논란을 비롯해 지속적인 사형 집행, 여성 차별 등 사우디의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최근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한 핵심 사업인 ‘네옴시티’ 프로젝트도 인권 탄압으로 비판받는 대상이다.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 경제를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이다. 그러나 인권 단체들은 이 프로젝트로 인해 하우야타트 부족을 비롯한 사우디 타부크 지방의 부족들이 이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권단체들은 “이주에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테러 혐의로 수십 년의 징역형과 처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는 2018년 터키에서 피살된 반체제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문제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국가와 12개 국제 인권단체는 국제박람회기구(BIE)에 2030월드엑스포 개최 후보국에서 사우디를 제외할 것을 촉구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MENA 인권단체 관계자는 BIE에 “만약 사우디가 2030월드엑스포를 개최하면 이는 전 세계가 사우디의 끔찍한 기록을 덮어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며 “사우디의 행동은 세계 엑스포의 정신과 완전히 모순된다”고 지난 5월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에 밝혔다. 이달 초 유엔 전문가들도 사우디의 인권 침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프로젝트 참여 기업들이 심각한 인권 침해에 기여하거나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사우디 인권 문제가 드러날수록 인권 문제를 중요시하는 선진국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