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세계와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
■크리스틴 선 킴 ‘자세히 읽기’
‘소리’는 세계를 인지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 중 하나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내는 소리를 듣고 상황을 인지하고, 반응한다. 이러한 일반적 소통 체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가가 있다.
크리스틴 선 킴(1980~)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농인으로 살아온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한다. 그는 ‘소리’의 범위를 좀 더 확장된 개념으로 인식한다. 예컨대 청력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소리 이외에 상대방의 움직임과 반응, 특정 시공간이 내포하는 의미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세히 읽기’는 작가가 농인 친구 4명(제프리 맨스필드, 에리얼 베이커-깁스, 앨리슨 오다니엘, 로렌 리들로프 협업)에게 반쯤 가려진 화면과 언어 자막이 제공되는 5편의 편집된 영화를 보여준 데서 출발한다. 친구들은 ‘아담스 패밀리(1991)’, ‘시스터 액트(1994)’. ‘사랑과 영혼(1990)’, ‘인어공주(1989)’,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등 대중에게 익숙한 영화 속 장면들에 과감히 개입한다. 공식 자막이 알려주지 않는 소리,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자막을 개인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채워 넣었다. 상단의 괄호 안 텍스트는 농인친구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자막이고, 하단의 검은 배경색을 동반한 텍스트는 공식 자막이다.
새로운 자막은 네 명의 친구들이 각자 감지하는 정신적이고 상상적인 영역들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동일한 장면을 상반된 정서로 인식하는 현상은 무척 흥미롭다. 예컨대 미소 짓는 인어공주를 클로즈업한 장면에서 제프리 맨스필드는 ‘사랑에 빠지는 소리’를, 애리얼 베이커-깁스는 ‘쨍그랑하는 소리 또는 오페라 아리아’를 부족한 자막으로 보충했다.
이 작품은 영화에 삽입된 공식 자막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작품을 감상하는 자들 또한 제한된 이미지를 애써 응시하는 대신, 농인이 작성한 자막에 훨씬 많이 의존하면서 새로운 맥락을 짚어나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오로지 ‘내가 감각하고 있는 지표’만을 인식하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믿고, 반응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의사소통’이라는 사회적 행위가 필연적으로 상호보완과 협력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과 공명하고 소통할 수 있다. 이해리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