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양박물관에 보존 선박 한 척 없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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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한국해양대 항해융합학부 대학원 해양역사문화전공 교수

세계 주요 항만 도시 ‘해박’ 필수
핵심 전시물 보존 선박이 일번
감척사업으로 어선들 소멸 중
실습선·해군함정도 활용해야

연구년을 맞아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에 머물고 있다. 버지니아는 1584년 영국의 정치가이자 탐험가 월터 롤리가 추진한 식민 사업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롤리는 이곳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투자하기를 바랐지만, 여왕은 스페인과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에 롤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정치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처녀지(Virginia)’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버지니아는 여왕이 이를 승인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사업 착수에 앞서 롤리를 ‘버지니아의 기사, 로드(경) 겸 총독’으로 임명해 버지니아 식민 사업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된다는 사실을 내비쳤다. 내가 머물고 있는 노퍽 인근에는 제임스타운, 윌리엄스벅, 요크타운 등 초기 영국인 정착촌 세 곳이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 잡아 백인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노퍽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해 미국 동부 최대의 해군 기지이자 뉴욕·뉴저지항과 서배너항 다음으로 바쁜 항만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의 어느 도시를 가든 먼저 박물관을 찾는 게 습관이 된 나는 노퍽의 대표 관광지를 찾았다. 노퍽에는 1988년 개장한 ‘너티커스(Nauticus)’라는 국립해양과학센터 및 박물관이 있다. 너티커스는 배나 뱃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Nauticus’를 그대로 사용했다. 말 그대로 배와 뱃사람과 관계있는 것을 모두 아우르는 곳 정도의 의미로 명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너티커스는 햄프턴로즈 해군박물관과 전함 위스컨신호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햄프턴로즈 해군박물관은 독립전쟁부터, 남북전쟁, 2차대전, 그리고 베트남전쟁 때까지 미국 해군의 활동상을 보여 주고 있다. 위스컨신호는 1944년에 취역해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 전투와 일본 본토 포격전에 참여한 바 있다. 6·25전쟁, 1991년 사막의 폭풍작전 등에 참전한 뒤 퇴역해 2010년에 노퍽시로 소유권이 이양되어 박물관 선박(museum ship)으로 전시되고 있다. 전함 위스컨신호는 길이 270m, 너비 33m, 만재흘수 11.5m, 만재배수량 5만 8134t의 제원을 갖추고 총 2000여 명의 승무원이 탑승할 수 있다. 위스컨신호는 마지막 세대 포함(砲艦)으로 주갑판에 설치된 3문의 16인치(40.6cm) 주포 아래에서 보면 그 거대함에 완전히 압도당하게 된다. 전체 10개 갑판 중 6개 갑판까지 내부를 완전히 공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녀 본 세계의 주요 항만 도시에는 어김없이 해양박물관이 자리 잡았고, 각 해양박물관의 핵심 전시물은 단연 보존 선박이었다. 영국의 그리니치 해사박물관 인근에는 유명한 차 운반선 커티샥호와 1967년 세계 일주 요트인 집시 모스 IV 정이 전시되고 있다. 영국 포츠머스에는 넬슨의 기함 빅토리호와 발굴선 메리 로즈호, 장갑함 워리어호, 기타 중소형 전함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독일의 브레머하벤 해사박물관에는 베제르 코그(cog) 발굴선이 보존 전시되고 있다. 이들 박물관은 전시관과 보존선이 결합되어 있는 형태지만, 보존선이나 발굴선 자체가 박물관을 구성한 곳도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바사박물관, 노르웨이 오슬로의 바이킹박물관, 덴마크의 로스킬데 바이킹박물관, 일본 요코하마 해양박물관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국립해양박물관에는 통신사선을 20분의 1 크기로 제작한 모형선이 전시되어 있을 뿐 보존선이라고는 잠수정 한 척, 요트 두 척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내부를 관람할 수 없게 되어 있다. 2006년에 완료된 연구용역에서도 보존 선박을 확보해 선박박물관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 바 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세 차례에 걸친 타당성 검토를 거친 뒤에야 어렵게 건립된 국립해양박물관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다. 현재 국립해양박물관은 매년 유물을 구입해 전시물을 확충해 가고 있지만, 언제까지 구입한 유물만을 전시자료로 활용할 수는 없다.

사라져 가는 다양한 어선과 역사성 있는 선박을 확보해 보존 전시할 장기적 계획을 한시라도 빨리 수립해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선은 어종에 따라 다양한 선종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감척사업으로 해마다 많은 어선들이 사라지고 있다. 다음 세대에 이르면 이와 같은 어선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또한 해양계 교육기관의 실습선들과 해군 함정들도 속속 퇴역하고 있다. 이제 사라져 가는 어선들을 보존하고, 수많은 해양인들을 양성해 낸 실습선들과 해군 함정을 퇴역시키지 말고 국립해양박물관의 박물관 선박으로 활용해 많은 국민들이 선박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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