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에서 내놓은 고등어 요리는 어떤 맛일까?
“맛은 기본, 건강에 안전까지 챙겼다”
부산에서 만난 ‘이색 생선 요리’ 3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가 시작되면서 먹거리 안전이 걱정이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평생 해산물을 멀리할 순 없는 노릇. 회·어탕·생선구이 등 다양한 바다 요리가 발달한 부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세간의 불안감을 아는 식당들은 신선한 재료, 맛의 본질에 더욱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음식 전문가부터 동네 주민까지 다양한 입맛의 추천을 받아, 믿고 먹을 수 있는 생선 요릿집 3곳을 소개한다.
■ ‘고등어’ 연구하는 사람들
버스를 타고 부산역을 지나 남포동으로 가는 길. 중앙동쯤에서 오른쪽 차창 밖으로 간판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등어연구소’. 부산 시어(巿魚)인 고등어를 연구하는 기관이라도 생긴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들 SNS에 하나둘 ‘후기’가 올라오며 의문이 풀렸다. 연구소의 정체는 요리전문점이었던 것.
며칠 뒤 붐비는 점심시간을 피해 자리를 잡았다. 키오스크로 대표메뉴인 ‘고태솥밥+오차즈케’ ‘고등어 온소바’를 주문하자 주방에서 금세 한 그릇씩 내어 준다. 두 음식 모두 큼지막한 고등어 순살구이가 두 덩이씩 얹혀 있다. 밥을 감싼 고등어와 국수에 빠진 고등어. 비주얼만 보면 비릴 것 같은데, 일단 향부터 예상을 깬다. 신기할 정도로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맛은 어떨까. 테이블 위에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 안내돼 있다. 먼저 고태솥밥+오차즈케. 솥밥 위의 고등어 살을 젓가락으로 잘게 으깨 밥·고명과 함께 잘 비빈다. 이어 공기에 덜어낸 뒤 간장과 고추냉이로 간을 맞춘다. 녹차 베이스의 오차를 부어 국밥처럼 먹어도 된다.
안내대로 부지런히 ‘작업’한 다음 한 숟갈을 뜨자 입안 가득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한다. 밥 한술에 고등어 구이 한 점 얹어 먹던 익숙함과, 기름진 생선임에도 비리지 않은 낯섦. 입맛에 싱겁다면 달짝지근한 간장을 넣어 비비거나 고추냉이와 함께 김에 싸 먹어도 좋다.
고등어 온소바도 솥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메밀 면은 기성품이 아니라 기장에서 수제를 공수해온다고 한다. 쪽파를 띄운 육수에다, 고등어 위에 살짝 유자 껍질을 올려 상큼함을 더했다. 면 한 끼에 고등어가 더해지니 든든하다.
그런데 식당 이름이 왜 고등어연구소일까. 고등어 레시피를 계속 연구해,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겠다는 김동주(34) 대표의 다짐을 담았다고 한다. 비린내 잡는 비결, 특제 소스와 고등어 껍질 벗기기도 연구의 결과물이다.
올 6월에 문을 연 고등어연구소는 현재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쓴다. 김 대표는 겨울께 우리나라 고등어철이 돌아오면 국내산으로 바꿀 예정인데, 값은 1만 원 아래를 고수하겠단다. 고태솥밥+오차즈케와 고등어 온소바 각 9800원.
■ 30년 역사, 솥에서 고아 낸 ‘바닷장어’
여름 하면 보양식, 보양식 하면 여름이다. 길고 길었던 올여름 무더위를 이겨 낸 몸과 마음에 보양식을 선물하고 싶다면, 생선 중에서도 펄떡이는 장어가 떠오른다.
건강한 맛이 듬뿍 담긴 바닷장어탕이 있다고 해 영도로 향했다. 영도다리를 건너 영도경찰서를 지나 대교사거리 앞에서 부산대교 쪽으로 길을 건넌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이내 장어탕 전문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옛날추어탕’에서 몇 년 전 이름을 바꾼 30년 역사의 ‘옛날장어탕’이다. 장어탕과 장어구이. 단 2가지 단출한 메뉴에서부터 장어를 향한 진심이 느껴진다.
장어탕을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에서 반찬 통 3개를 내어 준다. 탕에 넣어 먹을 다진 마늘과 고추, 방앗잎이다. 뚝배기에 담겨 나온 장어탕은 붉은 기운의 국물 빛깔부터 남다르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번 휘저으니 손끝으로 푸짐함이 전해진다. 간간이 눈에 띄는 숙주나물을 빼면, 숟가락에 걸리는 대부분이 장어다. 혹자는 장어탕 국물이 빨개 ‘여수식’같다고 하지만 ‘속사정’은 많은 차이가 있다. 시래기·고사리·양파 등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여수식과는 달리 주인공 장어로 가득 채웠다는 게 주인장의 설명이다.
두툼한 살코기는 뼈를 발라내지 않았다. 자연의 맛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뼈째 씹어 먹을 수 있어 더 든든하고 건강에 이롭다 여길 만하다.
장어 살코기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뚝배기마다 한 그릇씩 끓이지 않고, 큰 솥에다 바닷장어 수십 kg를 한꺼번에 푹 고아 냈기 때문이다. 건강한 요리를 추구하는 주인장의 고집이 우러난 맛이다.
국물은 붉은 빛깔에 비해 매콤한 기색이 거의 없다. 고춧가루 대신 홍초를 써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다. 매운 맛을 꺼리는 이들도 부드럽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속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오이무침, 고추장아찌, 숙주나물 등 식당에서 직접 만든 찬도 정갈하다.
바닷장어는 서해와 경남 통영 등지에서 통발이 아닌 낚시로 잡아 올린 싱싱한 녀석들만 쓴다. 그래서인지 장어 특유의 비린내가 없다. 하루치 양이 다 나가면 일찍 장사를 접는다. 장어탕 한 그릇 1만 7000원.
■ 정통 일본식으로 만나는 ‘활참복어’
건강한 생선요리 하면 복어를 빼놓을 수 없다. 대개 복요리는 어른이 되어 복국으로 입문한다. 복요리도 알고 보면 복샤브, 복불고기, 복튀김 등 남녀노소 두루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다양하다. 해운대구 마린시티에서 정통 일본식으로 복어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이 있다고 해 찾았다.
두산제니스스퀘어 2층에 들어선 일식당 ‘마루신’. 입구 앞 알림판 문구가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식자재 중 일본산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활참복요리, 민물장어덮밥, 스시 등 마루신 메뉴 중에서도 복요리가 대표다. 일본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던 신민아 대표가 본인이 좋아하던 일식 복요리를 그대로 한국으로 들여왔다고 한다.
마루신은 참복·까치복·밀복·은복 중에서 가장 고급인 참복을 쓴다. 남해에서 양식한 녀석을 식당 수족관으로 옮겨와 주문 즉시 잡아서 내어 준다. 활참복 샤브(뎃지리)를 주문하면 껍질초회(유비끼), 튀김(가라아게), 죽(조스이)까지 코스처럼 맛볼 수 있다. 코스요리(A·B)는 숙성이 필요한 사시미(뎃샤)가 추가되기 때문에 예약이 필수다.
애피타이저처럼 맨 먼저 나오는 참복 껍질초회는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폰즈소스와 어우러진 복어 껍질이 마치 콜라겐 덩어리를 씹는 느낌이다. 복요리엔 간 역할을 하는 폰즈도 중요하다. 무를 갈아 고춧가루를 섞은 ‘아카오로시’와 간장에 유자·청귤을 베이스로 한 폰즈는 신 대표가 직접 개발했다. 참복 튀김의 식감도 흥미롭다. 눈을 감고 먹으면 치킨인 줄 착각할 정도다.
드디어 메인 요리인 참복 샤브다. 접시 위 토막 난 복어 살코기가 꿈틀거린다. 갓 잡은 활어란 증거다. 뎃지리(샤브)는 좀 더 맛있게 먹는 순서가 있다. 끓는 육수에 뼈가 붙은 부위를 먼저 익혀서 먹은 다음, 나머지 복어 살과 각종 채소를 넣는다. 잘 익은 살코기는 알맞게 부드럽고, 아가미 부위 살점은 적당히 쫄깃해 색다르다.
배추, 청경채, 대파에다 표고·팽이버섯까지 우러난 맑고 뽀얀 국물은 복국 특유의 시원한 진국이다. 한 모금 두 모금 계속 들이켜게 되는데, 조금 남겨 일본식 죽(조스이)으로도 음미해 보길 권한다. 활참복 샤브(1인) 5만 8000원.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