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좌우 날개 부실한 대한민국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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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정치부 차장

20여 년 전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책이 한 권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책 표지는 낡고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빛이 바래가지만 그래도 그 책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여전히 컬러 사진처럼 선명하다.

그 책은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가 ‘사상의 은사’라고 격찬했던 고 리영희 한양대 전 교수의 명저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새가 제대로 날려면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 모두가 필요하며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리 전 교수는 책의 머리말에서 ‘인간보다 못한 새들조차 좌익과 우익을 아울러 가지고 시원스레 하늘을 날지 않은가?’라며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된 이분법적 사고에 일침을 날렸다.

리 전 교수의 이러한 가르침은 군부 정권 시절을 거쳐 어렵사리 출범한 문민 정부까지 혼란스러웠던 한국 현대사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알려줬다. 이러한 가르침이 켜켜이 쌓이고 구석구석 확산되면 한국 정치도 좀 더 성장할 것이라는 희망마저 가지게 됐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그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새는 추락하기 일보 직전처럼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이라는 두 날개는 언제라도 끊어질 듯한 두루마리 휴지처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당의 근간이자 기반인 양심과 도덕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상임위 회의 중 코인 거래 논란,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크스. 어디 그뿐인가.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 2020년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잇따르는 성비위 의혹까지. 무엇보다 이러한 사건이나 의혹이 터질 때마다 민주당은 반성은커녕 진실을 은폐하는 데 급급하고 내로남불과 같은 태도로 일관했다. 지금은 이 대표의 ‘방탄당’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민주당에 제대로 된 날갯짓을 희망했던 많은 이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민주당이 흔들리면 다른 날개인 국민의힘이라도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지만 오히려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최근 들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으로 이념 논쟁에 열을 올릴 뿐 벼랑 끝에 선 경제와 민생에는 뒷전인 모습을 보인다. 한국의 지난해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에서 13위로 떨어졌고 올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경제성장률은 1.4%에 그칠 전망이다. 민생은 정말 고통스럽다. 교통비, 전기료 등도 치솟아 만 원 한 장으로 점심조차 먹기 힘들 정도다. 무능한 정부와 여당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여기다 현재 두 날개는 이 정국을 놓고 서로 ‘네 탓’ 타령만 한다. 한국은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든 갈림길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팬데믹 후유증,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악재는 여전하다. 여기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G2를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면서 정치·경제도 시시각각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두 날개가 힘을 모아 대응해도 역부족일 텐데 여전히 답도 나오지 않는 소모전만 진행 중이다. 이러한 두 날개를 바라보는 국민 마음은 어떨까? 하루빨리 소모전을 그만 두고 현실을 직시할 때이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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