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 공간·스프링클러 없는 노후 아파트 ‘화재 무방비’
3명 사상 부산진구 아파트 화재
경량 칸막이 미비 초기 진화 애로
1992·2005년 소방법 개정 불구
상당수 아파트 소방설비 의무 제외
전문가 “대피 방법 등 교육 필요”
화재가 발생해 일가족 3명 중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은 부산의 한 아파트(부산일보 9월 11일 자 2면 보도)는 피난 공간이나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30년 이상된 노후 아파트는 소방설비 의무 설치 대상에서 빠져있고 법이 개정됐어도 기존 건물에 대한 소급 적용이 어렵다 보니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노후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이번처럼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관계 당국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1일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9일 불이 난 부산진구 개금동 한 아파트는 피난용 소방 시설인 경량 칸막이와 화재 초기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불이 난 아파트는 피난시설 구비 규정이 신설된 이전에 지어져 화재 피해에 그대로 노출됐다. 해당 아파트는 15층짜리 건물로 1992년 2월 준공됐다. 주택법상 경량 칸막이 등 피난시설 구비 규정이 신설된 1992년 7월보다 준공이 빨라 설치 의무 대상에서 빠져있다. 자동화재탐지설비와 옥내소화전은 설치돼 있었으나 정상 작동 여부는 현재 소방과 경찰이 조사 중이다.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라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도 없어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프링클러는 1992년 소방법에 따라 16층 이상 공동주택에 대해서만 설치가 의무화됐고 그전까지는 의무가 아니었다. 2005년 소방시설법 시행령에 따라 11층 이상 아파트 건물 전체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도록 기준이 강화됐고 이후 2018년 6층 이상 건물을 지을 때 스프링클러를 모든 층에 설치해야 한다. 노후 아파트는 대체로 스프링클러가 미설치 돼 있거나 설치가 돼 있는 곳도 점검이 꾸준히 이뤄지지 않았다면 오작동일 가능성이 크다.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설이 노후 아파트에는 갖춰있지 않아 화재 피해에 그대로 노출됐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노후 아파트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1일 부산시와 16개 구·군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부산시 내 1992년 이전에 지어진 20세대 이상 공동주택은 약 14만 세대다. 부산지역 내 공동주택이 약 90만 세대로 15%가 30년이 넘은 공동주택인 것이다. 인명 피해에 노출돼 있는 것은 이번 화재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재가 난 개금동 아파트처럼 상당수 노후 아파트는 화재 발생에 대비한 별다른 피난시설이나 스프링클러가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 놓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2022년 부산소방재난본부의 부산지역 3971개 아파트 단지의 피난시설 전수 결과를 보면 이중 화재 대피 재난시설이 설치돼있는 곳은 1443단지(36.3%)이다. 소방이 조사한 공동주택 1만 2756동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은 7380동(57.9%)이고 4676동(36.6%)이 전층 스프링클러 미설치 돼 있었다. 지하층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은 700동(5.5%)인 것으로 확인됐다.
비슷한 사고가 재발할 수 있는 만큼 예방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산경상대 소방행정안전관리과 김만규 교수는 “노후 아파트의 시설적인 부분을 손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소방 시설이 없는 노후 아파트 등을 전수조사해서 실정에 맞는 화재 예방책 마련과 대피 방법 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일 오후 4시 15분께 부산진구 개금동 한 아파트 7층에서 불이 나 약 30분 뒤 꺼졌다. 당시 집 안에는 40대 남성 A 씨와 그의 4세 자녀, 베트남 국적인 장모 50대 B 씨가 있었다. 이들은 불길과 연기를 피해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있다가 추락했다. A 씨와 B 씨는 베란다에서 추락하면서 모두 숨졌다. 엄마인 베트남 여성은 생업인 과일 가게 일을 하느라 집을 비운 상태인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부산진구청은 구 차원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 등에 도움을 줄 만한 행정적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A 씨와 B 씨의 빈소는 아직 차려지지 않은 상태로, 경찰 등 관계 당국에서 부검을 마무리하는 대로 장례식을 치를 예정으로 전해졌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