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쉬었다 갑시다…‘멍때리기 성지’ 양산시 황산공원
낙동강 둔치 황산공원, 멍때리기 명소
선베드 설치 대왕참나무숲에선 ‘숲멍’
강변 물멍존에선 강물·낙조 보며 ‘물멍’
가을밤 모닥불 둘러앉아 ‘불멍’ 체험도
쫀드기 등 주전부리 구워 먹기도 가능
시간을 허투루 보낸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멍때리기’가 끊임없이 일하는 뇌에 휴식을 주고, 심신을 이완시켜 집중력과 창의력을 높여 주는 효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경남 양산시 황산공원은 숲멍과 물멍, 불멍 ‘3멍’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 물멍 의자에 앉아 있으면, 잔잔함을 잃지 않는 강물 위로 신어산과 각성산 등줄기가 강줄기를 따라 길게 뻗어 있다. 파란 하늘 위로 흰 구름도 흐른다.
대왕참나무가 숲을 이룬 ‘황산힐링숲’에서 사람들이 숲멍을 즐기고 있다.
‘멍때리다’.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는 뜻의 신조어다. 그동안 멍때리기는 일분일초가 아쉬운 바쁜 현대 사회에서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는 의미로 인식되면서 다소 부정적으로 여겨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잠시 멍하게 있을 시간조차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이다. 업무를 마치고 놀거나 쉬고 있어도 일과 일상의 문제를 걱정하며 생각과 씨름하고, 몸은 쉬어도 머리는 끊임없이 일한다. 그런 의미에서 멍때리기는 피로한 뇌에 주는 진정한 휴식이다. 멍때리기가 심신을 이완시켜 피로를 풀어 주고 집중력, 기억력, 창의력을 높여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강과 해운대해수욕장 등지에서는 멍때리기 대회도 열린다.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 멍때리가 좋은 계절이다. 경남 양산시 황산공원에 3멍(숲멍·물멍·불멍)을 즐길 수 있는 힐링 공간이 생겼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멍때리기를 할 수 있다니. 멍때리기가 절실하다면, 황산공원에서 멍하니 한시름을 덜어 보자.
황산공원 대왕참나무숲은 ‘황산힐링숲’이라는 이름이 있다. 선베드 14개와 보행 매트 등이 설치돼 있어 숲멍을 즐길 수 있다.
선베드에 앉아 숲멍 중인 사람들. 멍하니 숲을 바라보거나 하늘을 보며 일체의 상념을 떨친다.
대왕참나무숲이 있는 황산힐링숲은 과거 대왕참나무 묘목을 기르던 양묘장이었다. 지금은 어린 대왕참나무들이 자라 청량한 숲을 이뤘다. 그늘이 부족한 황산공원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숲이다.
선베드가 다 채워졌거나, 그늘이 더 좋은 공간이 생기면 캠핑 의자도 동원된다.
■숲속 선베드 누워 ‘숲멍’
숲멍은 울창한 숲속에서 푸르른 녹음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에 빠져드는 시간이다. 멍하니 숲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 되고 디톡스가 된다. 전국적으로 숲멍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만, 황산공원의 숲멍존은 차별화된다. 대놓고 숲멍을 하라고 선베드가 설치돼 있다.
황산공원의 숲멍존은 황산공원 이팝나무길 주차장(황산공원 주차장5) 바로 옆 대왕참나무숲에 있다. 대왕참나무숲이 있는 곳은 과거 대왕참나무 묘목을 기르던 양묘장이었다. 지금은 어린 대왕참나무들이 자라 청량한 숲을 이뤘다. 낙동강 둔치 너른 부지에 조성된 황산공원은 그늘이 부족한데, 그런 황산공원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숲이다.
양산시는 대왕참나무숲에 ‘황산힐링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와 함께 선베드 14개와 보행 매트를 설치했다. 선베드는 황산힐링숲 대왕참나무 아래 띄엄띄엄 놓여 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숲멍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선배드에 누워 하늘을 우러러보니, 나무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따스한 햇살이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마중을 나와 숲멍의 시간으로 이끈다.
선베드가 다 채워졌거나, 그늘이 더 좋은 공간이 생기면 캠핑 의자도 동원된다.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는 숲멍의 멋진 배경 음악이 된다. 시원한 바람은 심신을 달래준다. 숲멍에 빠진 이들은 멍하니 숲을 바라보거나 하늘을 보며 일체의 상념을 떨친다. 숲멍을 끝내고 낮잠에 빠져든 이들도, 담소를 나누는 이들도 보인다.
대왕참나무는 너무 빽빽하게도, 너무 드문드문 서 있지도 않다. 적당한 밀도로 숲을 이뤄 숲멍을 즐기기에 적당한 햇살을 받아들인다.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덕을 지닌 듯하다.
황산공원 황상힐링숲에서는 텐트 설치가 금지돼 있지만, 소형 원터치 텐트는 설치할 수 있다. 취사는 엄격히 금지된다. 황산공원의 소중한 숲 자원이자 숲멍 공간인 만큼, 정숙과 정리정돈 등 다른 이용객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잊지 말자.
물금선착장 부근 강변에 있는 황산공원 물멍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물멍을 할 수 있다. 저녁 어스름에는 낙조가 아름답다.
물멍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물멍 의자 뒤로는 강변을 따라 길게 나 있는 강변산책길이 있다. 건강을 위해 맨발로 흙길을 걷는 사람도 많다.
물멍존 뒤쪽으로는 황산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있고 언덕에는 고즈넉한 정자가 있다. 물멍 후 언덕과 정자에 오르면 계절이 바뀌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낙동강 바라보며 ‘물멍’
물멍, 물을 보면서 멍하게 있는다는 뜻이다.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면서 멍하니 있는 ‘불멍’이 있으니, 멍때리기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미 많이 알려진 숲멍, 불멍과 함께 최근에는 강이나 호수, 저수지 등에서 물멍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낙동강 둔치에 자리한 황산공원은 낙동강 강물을 바라보며 물멍을 하기 좋은 곳이다. 황산공원 물멍존은 낙동강 생태탐방선의 선착장으로 이용되는 물금선착장 인근에 있다. 낙동강변 물멍존에는 적당한 기울기로 등받이가 젖혀진 의자 7개(1인용 6개·2인용 1개)가 설치돼 있다. 낮에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저녁 어스름에는 낙조를 보며 물멍을 할 수 있다.
물멍 의자에 앉으니, 잔잔함을 잃지 않는 강물 위로 신어산과 각성산 등줄기가 강줄기를 따라 길게 뻗어 있다. 파란 하늘 위로 흰 구름도 흐른다. 한 폭의 산수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다.
물멍의 매력 또한 물을 바라보고 멍하니 있을 때 느끼는 안정감에 있다. 사람들은 물멍이든 불멍이든 숲멍이든, 가만히 있는 것으로부터 안정감을 얻는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하지만 그 움직임이 예상이 가능한 범주 내에 있을 때 진정한 안정감을 느낀다는 글이 떠오른다. 강물은 흐르지만 역류하지 않고, 모닥불은 바람에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더 큰 불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불타고, 숲은 바람에 흔들리고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지만 제자리를 지킨다. 결코 과하지 않고 예상이 가능한 움직임, 정중동((靜中動)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물멍에 빠져들면 그 의미에 지극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양산시는 물멍을 즐기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물멍 의자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는 수풀을 수시로 제거하고 있다. 또 11월까지 물멍 의자를 추가로 설치한다고 한다.
물멍 이후에는 물멍 의자 뒤로 강변을 따라 길게 나 있는 강변산책길을 걸어 보는 것도 좋다. 한가로운 흙길이다. 건강을 위해 맨발로 걷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다.
황산공원 불멍존(미니 캠프파이어존)에는 돌화로와 통나무 의자, 땔감 등이 모두 준비돼 있다. 공원 안전 관리요원 2명이 불멍을 할 수 있도록 불을 피워 주고 뒷정리도 해 준다.
황산공원 불멍존은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다. 고기를 굽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지만, 마시멜로와 쫀드기, 소시지 등 간단한 주전부리는 꼬챙이에 끼워 구워 먹을 수 있다.
불멍존 모닥불. 저녁 기온이 내려가는 가을과 겨울은 불멍을 하기 좋은 계절이다.
■주전부리 먹으며 ‘불멍’
캠핑족들로부터 유행하게 된 ‘불멍’. 캠핑족이 아니라면 경험해 보기 쉽지 않다. 화로와 토치가 있어야 하고 땔감도 있어야 한다. 아무 곳에서나 불을 피울 수 없으니 안전한 공간도 있어야 한다.
황산공원에 있는 불멍존(미니 캠프파이어존)에서는 이런 준비물들이 필요 없다. 돌화로(3개 소)가 있고,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불멍을 즐길 수 있도록 통나무 의자들도 비치돼 있다. 땔감도 준비돼 있다. 불멍 체험 시간 중에는 공원 안전 관리 요원 2명이 머무르며 불을 피워 주고 뒷정리도 도와 준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오르고 돌화로 주변 의자에 앉아 모닥불을 응시한다. TV에서 볼 수 있는 모닥불 ASMR 영상이 더 익숙한 시대다. 초가을이라 아직은 모닥불의 온기가 고맙게 느껴지진 않지만, 밤 기온이 더 내려가는 늦가을과 겨울에는 불멍이 더욱 그리워진다. 돌화로 주변에는 불멍 중인 이들도 있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즐거운 얘기를 나누는 가족도 있다.
올 3월 운영을 시작한 불멍존은 7월과 8월에는 폭염과 호우 등으로 운영이 잠시 중단됐다가 이달 다시 문을 열었다. 불멍 체험은 원래 오후 4시와 오후 8시 두 차례 가능하지만, 이달 한 달간만 오후 8시 한 차례 운영된다. 불멍존에선 고기를 굽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대신 마시멜로와 쫀드기, 소시지 등 간단한 주전부리는 꼬챙이에 끼워 구워 먹을 수 있다. 먹거리는 미리 챙겨가면 된다.
경남 양산시 수변공원팀 권용태 주무관은 “춘천 남이섬에 있는 모닥불을 벤치마킹해 만들었는데,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많은 분들이 찾아오신다”며 “불멍을 즐기고 간단한 간식도 먹을 수 있어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불멍존은 예약을 미리 받지 않는다. 불멍존이 운영되는 시간에 직접 찾아가면 언제든지 불멍을 즐길 수 있다. 이용 시간 제한은 없지만, 이용 수요에 따라 현장에서 이용 시간을 조정한다. 비가 오는 날이나 강풍이 부는 날 등 악천후 땐 운영되지 않는다. 황산공원 불멍존은 황산공원 미니기차 탑승장 옆에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황산캠핑장과도 가깝다.
불멍존 바로 옆에는 모래놀이터인 황산공원 샌드 키즈파크존이 있다. 분진이 없고 투수율이 높은 모래인 주문진규사가 깔려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다. 모래 위생에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남평주차장 근처 양산낙동강교 하부 공간에 있는 피크닉존도 숲멍이나 물멍, 불멍 전후에 찾기 좋은 힐링 공간이다. 평상(13개)이 설치돼 있고, 낙동강교가 만들어 준 그늘 아래에 시원한 강바람이 솔솔 분다. 글·사진=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불멍존 바로 옆에 있는 샌드 키즈파크존이 있다. 분진이 없고 투수율이 높은 모래인 주문진규사가 깔려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다.
양산낙동강교 하부 공간에 있는 피크닉존. 평상에 앉으면 낙동강교가 만들어 준 그늘 아래에 시원한 강바람이 솔솔 분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