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홍범도 장군의 또 다른 유산
김남석 문학평론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철거)에 대한 논의로 소란스럽다. 누구 결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정도 소란은 감수할 수 있다는 듯, 어느 날 자연스럽게 흉상 철거 논리가 흘러나왔다. 철거를 결정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논리가 굳건하며 또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하긴, 그들의 논리에도 근거가 있기는 하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홍범도는 부적격의 인물일 수도 있는 논리가 그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 중 어느 일군의 사람들은, 홍범도를 존중하지도, 그의 삶을 가치 있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홍 장군 흉상 이전 논의로 소란
그를 존중하지 않는 이들 있어
대의·역사보다 사익·편견 우선
홍 장군 민족 앞날 위해 희생
무엇을 생각하고 경계해야 할지
지금 우리의 모습 성찰하게 해
일본의 위엄과 목소리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에게, 홍범도는 그리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있다. 대대로 부와 명예를 누렸고 일제 강점기와 유신 체제를 지나면서도 부와 명예를 악착같이 지켜냈던 이들에게, 여전히 홍범도는 가난하고 미천한 종의 자식일 수 있다. 홍범도가 남긴 유산은 많지만, 흉상 논란을 통해 아직도 이 땅에는 대의나 역사보다는 사익이나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점은 또 다른 유산이 아닐까 한다. 더욱 고마운 것은, 죽은 홍범도가 겪는 모든 수모 역시 우리가 지금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만드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역에 묻혀서도, 고국에 돌아와서도, 다시 시간이 흘러서도, 우리가 늘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깨우쳐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빈민으로 태어나 한글조차 익히지 못했으면서도, 그는 어떠한 지식인보다도 민족의 앞날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다. 위기에 처했을 때도 지조를 잃지 않았으며, 배운 자들도 좀처럼 하지 못했던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세상’에서 우리가 누구를 경계하고 우리의 삶이 누구로부터 위협받고 있는가를 다시금 알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위협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과정에도 망령처럼 살아나고 있고, 사익을 위해 국정을 농락하는 모습에도 여전히 살아나고 있으며, 개발과 출세를 위해 이력을 세탁하고 친일을 비호하며 이를 비판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범죄자 프레임으로 덧씌워 세상을 속이려는 자들의 처세에도 분명히 살아나고 있다. 나는 2021년 8월 19일 ‘공감컬럼’에서 홍범도 유해 귀환을 접하며, 다음 자문을 던진 바 있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를 모셔오는 방법만이 최상의 예우였는지. 혹 그 과정에서 중앙아시아에서 여전히 힘겨운 삶을 구가하는 남은 고려인들에 대한 우리의 예우는 충분했는지. 나아가서, 그렇게 어렵게 정착하면서까지 자신을 지켜야 했던 홍범도 자신이 그곳이 아닌 과연 이곳에 다시 묻히기를 과연 원했을지. 이 질문에는 그 누구라도 선뜻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을 충실히 던진 이후에 그의 유해 송환을 추진했는지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묻고 싶다. 우리는 이 질문을 충분히 수행하고 그의 유해를 모셔 온 것인지. 과연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홍범도라고 주장할 권리가 남아 있는 것인지.”
지금 와서 돌이켜 보아도, 우리는 그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일본의 국익을 해치는 이들을 ‘반일종족주의’의 헛된 유산처럼 몰아가는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홍범도 장군을 이 땅에 모실 자격이 없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그래서 홍범도 장군이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한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역사의 시간과 그 그늘에서 비겁하게 기생했으면서도 여전히 오만하게 살아나는 누군가를, 이제는 똑바로 보아야 할 때라고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늘, 우리는 홍범도를 헤아릴 자격이 없었지만, 언제나, 그는 우리를 걱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