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조 KDDX 한화오션 vs HD현중 '경쟁 입찰'로 승자독식
방사청 22일 방추위서 ‘지명입찰’ 의결
내년 1분기 중 기본안 마련, 입찰 진행
보안사고 감점 HD현중에 불리한 방식
한화오션 수주 기대감에 거제시 들썩
예단은 금물 ‘뚜껑 열어 봐야’ 신중론도
방위사업청은 2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프로젝트 사업자를 지명 입찰 방식으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한국형 차기구축함의 조감도. 부산일보DB
속보=8조 원 규모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프로젝트를 책임질 사업자(부산일보 12월 8일 자 10면 등 보도)가 ‘지명 입찰’을 통해 결정된다.
KDDX 방산업체로 지정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2곳이 경쟁하는 방식으로, ‘보안사고 감점’을 떠안은 HD현대중공업에 비해 한화오션이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분석이다.
한화오션 사업장이 있는 거제 지역은 대형 사업 수주 기대감에 벌써 들썩이는 분위기지만 HD현대중공업이 보유한 ‘기본설계 가점’를 고려할 때 ‘뚜껑은 열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위사업청은 2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맡을 사업자 선정 방식으로 수의계약·경쟁입찰·공동설계 등 3가지 방안을 상정해 논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경쟁입찰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방사청 관계자는 “경쟁을 통해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다는 의견들이 많았다”며 “경쟁입찰이 수의계약보다 예산 절감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방사청은 내년 1분기까지 지명경쟁 방식의 사업추진기본방안을 마련해 방추위 승인 후,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진행한다.
이어 제안서 평가와 세부 협상을 거쳐 내년 말께 본계약을 체결한다는 목표다. 선도함은 2032년 말께 해군 인도하고 후속함 통합 발주 등을 통해 인도 시기를 앞당긴다는 구상이다.
KDDX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초의 국산 이지스구축함이다. 선체부터 이지스 체계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완성한다. 방사청은 7조 8000억 원을 투입해 6000t급 미니이지스함 6척을 건조할 계획이다.
통상 함정 건조는 1단계 개념설계, 2단계 기본설계, 3단계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4단계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한다. 앞서 개념설계는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2023년 12월 기본설계가 완료돼 지난해 3단계에 착수할 예정이었지만,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둘러싼 논쟁에 최근까지 표류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부산일보DB
경쟁입찰이냐, 수의계약이냐에 따라 양사의 유불리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는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맡았다. 복잡한 무기 체계와 전투 체계가 집약되는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는 연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다.
HD현대중공업은 관례와 기술 연속성을 근거로 수의계약을 주장했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전력을 근거로 절차적 공정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이번엔 경쟁입찰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설왕설래하는 사이 방사청은 빠른 납기를 명분으로 수의계약 안을 고수했다. 3, 4, 8, 9월 그리고 지난달 열린 분과위에 수의계약 안건을 올리고 통과시키려 했으나 민간위원과 정치권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발언으로 상황이 급반전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충남 천안 타운홀 미팅에서 한 참석자가 방산·군수 비리를 근절해달라고 요청하자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을 향해 “군사기밀을 빼돌려서 처벌받은 데다가 뭔 수의계약을 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러던데, 그런 것 잘 체크하라”고 지시했다.
특정 업체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HD현대중공업을 겨냥한 메시지로 읽히면서 수의계약 안은 사실상 배제됐다.
이후 경쟁입찰과 함께 ‘공동개발’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공동개발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역할을 나눠 상세설계를 진행하고 선도함 2대를 동시에 발주해 1척씩 건조하는 방식이다.
특정 업체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 데다, 양사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함정 건조 역량을 극대화해 개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늦어진 전력화 일정도 만회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양사는 이미 60조 원 규모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CPSP) 수주전에서 ‘원팀’을 구성해 독일과 경쟁할 만큼 공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이날 방추위를 앞두고 공동개발 전망이 우세했지만, 방추위는 공정성 담보를 위한 경쟁입찰이었다.
울산시 현대중공업 생산공장 모습 2025.09.24 부산일보DB
관건은 HD현대중공업의 감점 적용 여부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KDDX 군사기밀 탐지·수집, 누설로 인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8명은 2022년 11월에, 나머지 1명은 2023년 12월에 유죄가 확정돼 각각 징역 1~2년, 집행유예 2~3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방사청은 보안사고 감점 규정을 근거로 HD현대중공업에 무기 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1.8점을 감점하기로 했다.
두 사건을 동일한 사건으로 보고 감점 적용 기한은 최초 유죄 확정일인 2022년 기준으로 3년간인 올해 11월까지로 정했다.
그런데 최근 내부 법률 검토를 진행한 결과 기밀의 종류나 형태에 차이가 있다고 판단, 두 사건을 분리하기로 하면서 감점 기간이 내년 12월까지로 1년 연장됐다.
2023년 12월 마지막 형이 확정된 시점을 기준으로 보안 감점을 다시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소수점 단위로 승패가 갈리는 방산 수주전에서 이 감점은 치명적이다.
방사청은 “다음 입찰공고 행위가 발생할 때 해당 업체가 방사청에 문의해 확인할 사항”이라고 말을 아꼈다.
업계의 예상의 깬 경쟁입찰 결정에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화오션은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사업자 선정방식이 이제라도 결정된 것은 다행스러운 결과”라며 “향후 KDDX 사업 수주를 통해 대한민국 해군력 증강에 기여하고 2030년대 K-해양방산을 이끌 수 있는 명품 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방추위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간 지켜져 온 원칙과 규정이 흔들린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방추위 결정을 면밀하게 검토할 계획이고 향후 절차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변광용 거제시장. 거제시 제공
방산 업계에선 한화오션에 유리한 상황은 맞지만 결과를 예단할 순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제안서 평가 과정에 보안사고 페널티만큼, 기본설계 인센티브도 무시할 수 없다”면서 “사실상 사업이 원점으로 돌아간 만큼 피 말리는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한화오션 사업장이 있는 거제 지역은 한층 높아진 수주 가능성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변광용 거제시장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국내 조선산업의 기술력과 역량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한화오션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함정 건조 역량과 방산 기술력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가 방위산업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