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없는 노후아파트 또 화재… 일가족 행복 잿더미
3명 사상 부산 재송동 화재
결혼 2년도 안 돼 풍비박산
1990년대 지어진 노후 건물
소방설비 설치의무 비껴나
주말 새벽 발생한 화재로 일가족 3명 중 1명이 숨지고 0세 영아가 중상을 입는 등 큰 피해가 빚어진 부산의 한 아파트 역시 재송동 아파트 화재(부산일보 2022년 6월 28일 자 8면 등 보도)와 마찬가지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설비 의무 설치 규정에 비껴나 있는 노후 아파트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25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소방당국, 경찰 등 유관기관 관계자 10여 명은 이날 오전 해운대구 재송동의 한 아파트를 찾아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지난 23일 오전 1시 20분께 이 아파트 14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30대 남성 A 씨가 숨지고 A 씨의 아내, 0세 영아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이날 현장감식을 위해 찾은 A 씨의 집 복도에는 A 씨 자녀의 것으로 보이는 유모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깨끗한 모습의 유모차와 달리 검게 그을린 A 씨 집 내부 모습은 위험천만했던 화재 상황을 떠올리게 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피해자 유족은 갑작스러운 화재로 인한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피해자 유족에 따르면 A 씨는 약 3~4년 전부터 재송동에서 요식업을 운영했다. 이들 부부는 2021년 말 결혼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왔다. A 씨 아내는 A 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다 지난 2월 아이를 출산한 뒤 집에서 자녀를 돌보는 데 전념했다. A 씨 아내는 화재 당시 연기를 많이 들이마셔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로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 자녀는 이마, 귀 등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찾은 A 씨의 가게 앞에는 ‘상중(喪中)’이라는 한자가 붙어있었다.
피해자 유족은 “사고 당일 새벽에 울린 소방관의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 다급하게 병원을 찾았다”면서 “최근 들어 가족이 사는 경남으로 이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들 부부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던 상황이다. 아이도 무사히 출산하고 화목하게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이런 사고가 나 마음이 좋지 않다”고 애써 담담하게 털어놨다.
소방점검 결과 이 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80여 세대가 거주하는 이 아파트는 1990년대 만들어진 건물이다. 당시 소방법은 16층 이상 아파트를 대상으로 16층부터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번 화재는 15층 높이 아파트의 14층에서 발생했다. 해당 아파트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셈이다. 지난해 발생해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은 재송동 화재의 경우에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아파트 13층에서 불이 나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2005년부터 11층 이상 공동주택에 대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이 개정됐고 2018년부터는 6층 이상 공동주택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이 강화됐다.
소방 관계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불이 난 아파트의 경우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 당시 법령 기준으로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날 진행된 합동감식 결과를 바탕으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사진=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