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위기의식으로 '골디락스'에 힘 모을 때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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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활황세로 기준금리 동결
우리나라 1%대 저성장 고착 우려
고금리·고물가 겹쳐 국민 시름 깊어
추석 물가 폭등 탓에 서민 고통 가중
여야 경제난·민생고 해결 우선해야
고성장·저물가 향한 역량 집중 절실

최근 과일류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오른 가운데 지난 24일 부산 해운대구 반여농산물시장이 추석 차례에 쓰일 과일 등 제수용품을 구입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최근 과일류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오른 가운데 지난 24일 부산 해운대구 반여농산물시장이 추석 차례에 쓰일 과일 등 제수용품을 구입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달 20일 기준금리를 현 5.25~5.50%로 동결했다. 3.50%인 우리나라 기준금리와 간극이 커지지 않고 최대 2.00%포인트 차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행 역시 내달 12일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아 국내 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이 한동안 해소되기 때문이다. 고금리와 이자 부담에 시달리는 수많은 가계와 기업에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 기준금리 동결은 올 들어 두 번째로, 지난 6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지난해 3월부터 올 5월까지 10차례나 기준금리가 올라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른 고공행진 추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미 정부의 통화정책 긴축 기조로 연말께 금리가 다시 인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이번 동결은 경제 여건의 개선에 따른 활황세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미 연준도 자국 경제에 대해 ‘견고한 경제 활동, 견조한 일자리 창출, 낮은 수준의 실업률’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두드러진 호조세를 보인다. 경기가 식을 줄 모르고 호황을 이어 가자 취업이 급증해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고용지표의 안정세가 뚜렷하다. 물가 상승률도 크게 하락하고, 앞으로 상승폭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됐다. 미 정부가 기울이는 경기 부양책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키운다.

미국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 ‘골디락스’(Goldilocks)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다소 성급한 분석마저 잇따른다. 골디락스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상적인 경제 상황을 일컫는다. 영국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 등장하는 금발 소녀의 이름에서 따온 경제용어다. 길을 잃어 숲속을 헤매던 골디락스는 우연히 만난 곰들이 끓여 준 세 가지 죽-뜨거운 것, 차가운 것, 미지근한 것 중 미지근한 죽으로 허기를 채우고 기뻐한다는 게 동화 속 얘기다. 이같이 경제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인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호황 상태가 골디락스다.

미국 경제에 엿보이는 ‘고성장·저물가’의 모습이 부럽다. 오랜 경기 둔화와 저성장으로 1%대 저성장의 고착화가 우려되는 우리 사정과 대조적이어서다. 정부가 예측한 2023년 한국 경제 성장률은 겨우 1.4%다. 이미 수출 부진과 중국 경제 둔화세 등의 영향으로 상반기 경제 성장률은 0.9%에 그쳤다. 이대로 가면 성장률이 정부 예측치보다 낮아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JP모건, HSBC 등 해외 8개 투자은행이 내놓은 내년도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9%에 불과하다. 성장률이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1%대에 머무는 건 사상 처음이자 만성적인 ‘초저성장’의 늪에 빠진다는 의미라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과 고용 확대는 불가능에 가깝지 싶다.

민생과 직결된 물가도 진작에 비상이 걸렸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갈등 여파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바람에 거의 모든 물건값과 음식비, 공공요금이 크게 올랐다. 정부가 고물가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각종 가공식품 가격 인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더욱이 추석을 앞두고 제수용품과 식재료, 생필품 등 장바구니 물가가 폭등해 지갑이 얇은 서민층의 삶을 더욱 옥죈다. 체감 물가가 3%대인 소비자물가지수에 비해 월등히 높아 국민의 시름은 깊어지고 내수 진작이 힘들 수밖에 없다.

경제난의 그림자가 매우 짙게 드리워져 있는데도 경기 회복을 위한 정치권의 별다른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가계, 중소기업, 정부 모두 빚에 허덕일 만큼 경제 위기가 심각하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위기의식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상대방을 향한 적개심에 가득 차 격렬한 정쟁과 감정적인 이념 전쟁에 매달리면서 국회를 공전시킨다. 나라꼴이 어찌되든 정치적 이득만 취하려는 투여서 경제와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 까닭에 국내 금리의 추가 인상 요인이 상존한 데다 또다시 국제 유가가 치솟아 국가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야가 극심한 민생고를 방치한다는 거센 질타가 나오는 이유다. 이제라도 여야가 하루빨리 대화와 타협을 통해 실종된 정치를 복원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경제 위기를 외면할 경우 정당성과 공당 자격이 없어 퇴출돼야 마땅하다. 여야는 다가온 추석 민심을 제대로 읽어 경제 살리기와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최우선하고, 여기에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의 골디락스를 향해 합심하며 협치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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