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천사’ 마가렛 할매 오스트리아서 선종
향년 88세… 병원서 ‘대퇴골 수술’ 중 급성 심장마비로 숨져
소록도에서 40여년 간 봉사했던 마가렛 피사렉(88) 간호사가 지난달 29일 오스트리아의 한 병원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선종했다. 사진은 2017년 마가렛의 모습. 연합뉴스
소록도에서 39년간 한센인들을 돌보다가 건강 악화로 더 이상 봉사할 수 없게 되자 조용히 오스트리아로 귀국했던 ‘소록도 천사’ 마가렛 피사렉 씨가 선종했다. 향년 88세.
천주교광주대교구에 따르면 마가렛 간호사는 지난달 29일 오후 3시 15분(현지시각)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한 병원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운명했다. 마리안느 간호사와 함께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그는 2005년 오스트리아로 귀국 후 단기 치매 등으로 요양원에서 지냈으며, 최근 대퇴골 골절로 수술을 받던 중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폴란드 태생의 오스트리아 국적자인 고인은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구호단체 다미안재단을 통해 1966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파견됐다. 그는 공식 파견 기간이 끝난 후에도 아무 연고도 없던 소록도에 남아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한센인들을 돌봤다. 의료진이 부족하던 시절 진료하러 온 한국인 의사들도 환자들과의 직접 접촉을 꺼렸으나 마가렛은 환자들의 짓무른 손발을 직접 소독하고 고름을 닦아내며 치료를 도왔다. 맨손으로 자신들을 치료하는 것에 감명받은 한센인들이 그녀를 ‘수녀님’이라는 존칭으로 불렀지만 마가렛은 ‘할매’라는 친근한 애칭을 더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록도 할매 수녀들’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속 마가렛(왼쪽)과 마리안느. 연합뉴스
그는 한센인 환자 재활 치료와 의료시설 도입, 한센인 자녀 영아원 운영, 한센인 환경 개선 지원금 모금 활동 등을 하며 일생을 바쳤다. 마가렛과 마리안느 두 간호사는 나이가 들면서 몸 상태가 나빠지자, 2005년 11월 “섬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편지를 남기고 조용히 소록도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함께 돌아갔다. 마가렛은 귀국 후 요양원에서 지내며 단기 치매 증상을 겪었으나, 소록도에서의 삶과 사람들은 또렷하게 기억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오랜 세월 보수 한 푼 받지 않고 한센인들의 간호와 복지 향상에 헌신한 공을 기려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 1972년 국민훈장, 1983년 대통령표창,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여했다. 소록도 주민들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한국을 떠난 후에도 선행을 기렸으며 국립소록도병원은 이들이 살던 집을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의 집’으로 명명해 보존 중이다.
국립소록도병원은 2016년 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이들에 대한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과 함께 두 간호사를 모두 초청했다. 마리안느 간호사는 당시 소록도에 다시 올 수 있었지만, 마가렛은 건강상 이유로 오지 못하고 결국 운명했다.
2016년 ‘마리안느와 마가렛’ 다큐 제작팀과 만난 마리안느(왼쪽)와 마가렛. 연합뉴스
소록도성당 주임 신부였던 김연준 신부는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설립하고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윤세영 감독)을 제작하기도 했다. 고지선(마리안느), 백수선(마가렛)이라는 한국 이름도 가진 이들은 2016년 대한민국 명예국민으로 선정됐으며 대한간호협회 명예 회원이다. 김 신부는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사진이 명절 인사를 위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가 마가렛의 부음을 접했다”며 “고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사회를 위해 시신을 대학에 해부용으로 기증하겠다고 하셔서 장례 절차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동료 마리안느는 마가렛이 세상을 떠난 것이 서운하면서도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된 그가 부럽다고 했다고 한다. 마가렛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기 위해 소록도 한센인들은 이달 한 달 동안 매일 성당에서 추모 기도를 올릴 계획이다.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념관’ 입구에는 ‘희망은 드러나야 한다. 희망은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문구가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