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자체 곳간 '텅텅', 재정분권이 지방시대 관건
지방세수 급감 탓 여유자금 지출 늘어
지자체 재정난 해소할 세제 개혁 필요
지난 7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발족하고, 이달 4일 부산시 지방시대위가 공식 출범해 지방시대 개막을 알렸다. 지방시대위는 올 5월 국회를 통과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기존 국가균형발전위와 지방자치분권위를 통합한 조직이다. 시도별로 수립한 발전계획을 토대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강화하는 과제들을 추진해 진정한 지방자치 시대를 열기 위해서다. 하지만 열악한 지방재정이 지방시대 시작 초기부터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다.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있는 여유자금이 부족하거나 곳간이 텅 빈 지자체가 많아서다. 더욱이 세수 급감으로 내년 지방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게 예상돼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국감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243곳 중 107곳이 올해 적립된 여유자금을 이미 70% 넘게 소진했다고 한다. 특히 부산 수영구와 동래구, 울산 동구, 경남 김해시 등 6곳은 여유자금을 다 써 버린 상태라는 것이다. 이는 지방세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취득세 수입이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크게 줄어드는 등 지자체 수입 감소로 여유자금 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같이 여유자금이 없거나 부족한 지자체는 앞으로 세수 결손으로 적자가 생겨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주민 생활과 지역 발전을 위한 지자체 살림살이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셈이라 문제가 심각하다.
오랜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 탓에 정부의 지방교부세 배정액이 줄어들고 지방세 수입도 함께 감소해 내년 지방재정 사정은 매우 나빠져 적자가 우려된다. 올해 국세가 예상보다 덜 걷히면서 역대 최대 규모인 59조 원가량의 세수 결손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가 최근 재정 건전성 확보를 명목으로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 23조 원을 삭감하는 바람에 지차제마다 비상이 걸렸다. 지방세수 감소 속에서 앞으로 지출을 줄이는 방법 외에는 막대한 세수 결손을 메울 뾰족한 대책이 없어 각종 사업을 중단·축소해야 할 처지다. 지방재정 위기가 지방정부 활동에 걸림돌이 돼 지방시대 개막 의미를 퇴색시키는 꼴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방시대위를 출범시킨 취지를 살리려면 지방정부에 재정 충격을 안기기보다는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전국에서 잇따른다.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비수도권의 숙원인 재정분권이 꼽힌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조세 중 지방세 비중은 24.7%로 캐나다 55.1%, 독일 53.7%, 미국 46.5%, 일본 37.7% 등 선진국보다 많이 낮다. 지방세수가 절대 부족해 중앙에 크게 의존하는 이유다. 지자체의 재정 적자가 현실화한 만큼 정부의 능동적인 예산 운용책이 요구된다. 정부가 대책 없이 지자체에 허리띠 졸라매기만 강요할 게 아니라 재정분권 강화를 위해 세제 개혁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