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하마터면 부산에 '자유의 여신상'이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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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하마터면 부산에 '자유의 여신상'이

짝퉁 논란 거제 거북선 철거됐지만

'통영VR존' 등 세금 낭비 전국 만연



짝퉁 논란을 빚었던 거제 거북선이 철거되고 있다. 부산일보DB 짝퉁 논란을 빚었던 거제 거북선이 철거되고 있다. 부산일보DB

짝퉁 논란을 빚었던 거제 거북선이 결국 철거되어 사라졌다. 경남도가 2011년에 애써 복원한 지 12년 만의 일이었다. 거북선의 목재 부분은 화력발전소로 보내 땔감으로 사용됐고, 철근 부분은 고물상에 넘겼다고 한다. 사실 이 거북선은 바다에 띄우면 물이 새고 기울어서 전혀 쓸모가 없었다. 너무나도 참담한 거북선의 최후다. 국민들의 혈세를 16억 원이나 들여 만들었던 것인데 속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거북선이 통영·여수 등에만 11척이나 있다고 한다. 아니, 비단 거북선만이 아니다. 기가 막히는 지자체의 각종 세금 낭비 사례를 짚어 봤다.


적자 누적으로 1월부터 임시 휴관에 들어간 통영VR존. 부산일보DB 적자 누적으로 1월부터 임시 휴관에 들어간 통영VR존. 부산일보DB

■ 울며 겨자 먹기 운영 '통영VR존'

올 1월부터 임시 휴관했던 통영VR존이 이달 말께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통영VR존은 4D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통영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체감해 보는 시설이다. 통영시가 2020년 국비 25억 원 등 50억 원을 들여 개장했다. 처음엔 연평균 이용자 10만 명을 기대했다. 예상은 터무니없이 빗나가 3년간 하루 평균 17명밖에 오지 않았다. 이용객들은 가격은 비싼데 재미가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또 영상이 조잡해서 잠시만 보고 나와도 눈이 아프다고 했다. 통영시는 6개월간 임시 휴관하며 진단한 결과 폐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폐관도 쉽지 않았다. 정부 공모사업 시설은 내용연수 5년을 채워야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한 전 폐기 시 주무 부처 사전 승인을 받거나 국비를 반납해야 한다. 통영시는 당분간 단축 운영으로 손실 최소화에 집중하고, 존폐는 내용연수 5년이 종료되는 2025년 이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통영시는 국비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청하고 보는 공모사업의 폐해를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수영고가도로 밑에 조성한 컨테이너 복합 생활문화시설 '비콘 그라운드'. 부산일보DB 수영고가도로 밑에 조성한 컨테이너 복합 생활문화시설 '비콘 그라운드'. 부산일보DB

■ 도시재생의 애물단지 '비콘 그라운드'

부산시민 가운데 '비콘 그라운드'에 가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든 부산의 비콘 그라운드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비콘 그라운드는 Busan의 B와 Contain의 Con을 합친 말이다. 소음과 공해로 방치돼 온 고가도로 아래 공간에 도시재생 사업을 벌여 주민에게는 즐길 거리, 관광객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취지였다. 부산시는 2020년 수영고가도로 아래에 90억 원을 들여 길이 1㎞, 전체면적 1979㎡, 지상 2층 규모의 전국 최대 컨테이너형 복합 생활문화시설을 만들었다. 컨테이너를 이용해서 부산의 감성과 문화를 담았기에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개장한 후 3년이 지났지만 기대와 달리 비콘 그라운드는 지금도 개점휴업 상태다. 방문객이 거의 없으니 빈 점포가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위탁운영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상가 위탁 운영을 포기하고 말았다. 현재는 부산시 도시재생센터가 대책 없이 입주업체를 관리하는 상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매년 10억 원씩 비용만 줄줄 새고 있다.


광주 광산구에 설치된 초대형 우체통. 부산일보DB 광주 광산구에 설치된 초대형 우체통. 부산일보DB

■ 세계 최대 우체통·초대형 가마솥

'거제 거북선'과 같은 무책임한 예산 낭비 사례는 전국적으로 널려 있다. 광주시 광산구는 2009년 가로 3m, 세로 3m, 높이 7m, 무게 6t에 이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우체통'을 설치했다. 설치 당시 화제를 모았지만 약발은 채 2년을 못 갔다. 게다가 201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 더 큰 우체통이 들어서면서 세계 최대 우체통이란 타이틀도 뺏기고 말았다. 강원도 원주시는 옛 반곡역 중앙선 폐철로를 활용해 테마관광열차를 운행하겠다면서 2021년 54억 원을 들여 열차를 샀다. 하지만 원주시는 아직도 열차가 달려야 할 중앙선 폐철로를 매입하지 못하고 있다. 열차는 26억 원을 들여 만든 정비고에 처박혀 있다니 어이가 없다. 충북 괴산군은 2005년 지름 5.68m, 높이 2.2m, 둘레 17.85m, 무게 43.5t에 달하는 초대형 가마솥을 설치했다. 괴산군민들이 쇠붙이를 내놓고 십시일반 성금 1억 7000만 원을 보탠 결과였다. 결과는 처음부터 애물단지 신세였다. 너무 크고 바닥이 두꺼워 밥을 짓는 데도 실패했다. 녹이 쉽게 슬어 매년 들기름을 1000만 원어치나 발라 관리하다 결국 솥 전체를 페인트로 칠하고 말았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도 했지만 이사비만 수억 원에 달했다. 충북도는 최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괴산 가마솥 활용 아이디어를 공모했으나 응모작이 모두 기준 점수에 미달했다고 한다. 괴산군은 "예산 낭비 사례로 워낙 많이 거론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신규 공무원 등이 방문해 실패·교훈 사례로 관람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충북 괴산의 '초대형 가마솥'. 부산일보DB 충북 괴산의 '초대형 가마솥'. 부산일보DB


■ 유야무야돼서 차라리 다행

경남 창원시는 진해구 대발령 정상 옛 군부대 터에 100m 높이의 이순신 장군 형상 타워를 추진하고 있다. 아파트로 치면 30층 높이나 된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와 고도제한 해제를 풀고 예산이 200억 원이 드는 사업이다. 허성무 전 창원시장은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처럼 도시 브랜드로 이순신 장군 동상을 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2021년까지 이순신 타워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지금까지 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창원시의회가 최근 창원시정연구원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이에 대해 질의하자 "코로나19 여파로 잠정 연기된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환경적으로 안정기에 돌입하면 용역수행 등 현안 사업을 재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경남지역에만 초·중·고교와 사적지에 300여 곳이 넘는데도 말이다.

부산시도 2017년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남구 용당동 신선대부두 뒷산 정상에 부산판 '자유의 여신상'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힌 적이 있었다. 유라시아 관문으로서 볼거리를 제공하고 관광상품으로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부산시의 설명이었다. 1000억 원을 들여 부산판 ‘자유의 여신상’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극심한 반대 여론에 떠밀려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형 구조물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형태와 장소를 바꿔 언제든 좀비처럼 되살아날 태세다. 미국에는 납세자의 세금이 잘못 쓰이는 것을 조명하기 위한 '황금양털상'이 있다고 한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우리도 '세금 낭비 대상' 같은 걸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 같은 상이 제정된다면 기사에 언급된 사례들은 모두 강력한 수상 후보들이다. 과연 누구를 위하여 이런 계획을 추진하는지 묻고 싶다. 당신 개인 돈이라면 그렇게 하겠는가.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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