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영영 노벨상 꿈도 못 꿀 나라
막 내린 올해 노벨상, 한국은 후보조차 없어 씁쓸
내년 연구개발 예산도 삭감, 국내 과학계 뒤숭숭
노벨상은커녕 당장 연구 수준 유지도 난망 탄식
장기적인 투자 없으면 앞으로도 기대 어려워
매년 10월이면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모두 끝났다. 여느 때처럼 노벨상의 꽃인 과학 분야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의 국민들은 자국 출신의 수상에 환호했다.
반면 이맘때마다 노벨상 얘기만 나오면 주눅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국민이다. 올해도 노벨상은 늘 그렇듯 ‘남의 잔치’일 뿐이었다. 특히 올해는 후보자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외국의 한 기업이 내놓은 후보 리스트에 한국인은 없었다. 물론 예측 기관의 분석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우연은 없었다.
우리나라는 올해 노벨상 시즌을 맞아 수상은커녕 유력한 후보자조차 내지 못해 아쉬움을 더했다. 특히 내년 연구개발 예산마저 크게 줄면서 앞으로 노벨상 수상의 기대감도 더욱 멀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벨상 메달 모습. 연합뉴스
■ 갈수록 어려워지는 노벨상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그 나라의 과학 수준을 전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노벨상 수상은 우리나라엔 거의 숙원처럼 취급된다. 이웃 일본과의 경쟁심에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수상자를 배출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딱히 근거 없는 기대감이 국민적 바람을 타고 부풀려진다.
그러나 기대는 곧 허탈감으로 변하고 마는데, 올해는 유독 더한 것 같다. 한두 명의 수상 후보자가 거론이라도 됐던 예전과 달리 올해는 이마저도 없었다. 가능성 있는 후보자조차 없다면 이는 가까운 시일 내에는 수상자 배출이 어렵다는 징조로 봐야 한다.
실제로 최근 경향을 보면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는 시기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수상자들은 핵심 연구를 시작한 지 20년 이상 지나 상을 받는데, 이 기간이 갈수록 느는 추세라고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벨상을 봐야 한다는 의미다. 연구 시기와 수상의 간격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기관의 분석에서도 이미 제시되고 있다.
최근 흐름이 이렇다면 우리나라가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가 향후 노벨상을 받을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일부에서 말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잠재력일 뿐이다.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자괴심이 담긴 상투어로 느껴진다.
국내 분위기도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나라가 장기적인 관점의 연구를 장려하거나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은 대체로 알려진 바다. 특히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의 분위기부터 그렇다. 대표적인 게 2024년 연구개발 관련 예산의 삭감이다. 당장 나라 살림이 아쉽다고 미래의 연구 역량부터 싹을 자르려 한다. 과학기술 분야를 대하는 정부·정치권 시각의 일천함을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노벨상 수상에 갈수록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최근의 조사를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기초적이고 장기적인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에 더욱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22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연합뉴스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보수·진보를 망라하고 지금까지 역대 정부에서 연구개발 예산이 줄어든 적은 없었다. 모두 국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여긴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이 그래도 연구개발 강국 중 하나로 대접받고, 현재의 국력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이러한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 정부가 내년도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보다 무려 17%나 삭감한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 발표 이후 지금 국내의 연구 기관은 물론 대학의 이공계조차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연구 과제의 축소는 물론 인력 감축까지 북새통이라고 한다. 국내의 연구 생태계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토양에서 세계 각국과 치열한 경쟁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더구나 노벨상 수상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과학은 특히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를 바랄 수 없는 분야라고 한다. 이웃 일본이 의·과학 분야에서 27명(외국 국적 포함)의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100년 전부터 꾸준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시간과 선행 연구가 많이 쌓여야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 정부가 처음부터 연구개발 예산을 줄이려고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올해 3월만 해도 정부는 ‘제1차 국가 연구개발 중장기 투자 전략’을 발표하면서 2030년 과학기술 5대 강국 진입을 선언했다. 연구개발 예산은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을 유지하며, 5년간 170조 원 투자를 약속했다. 연간 34조 원 규모인데, 감축된 내년 예산액 25조 9000억 원보다 8조 원이 더 많다. 그러던 것이 ‘과학계 카르텔’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분위기는 급전직하했다.
국민의 피와 땀인 세금으로 이뤄진 국가 예산의 합리적이고 투명한 집행을 강조한 언급이겠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과학계와 이공계를 대혼란에 빠뜨리고 사기마저 크게 떨어뜨렸다. 이런 판이니, 노벨상 언급 자체가 전혀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앞으로 노벨상을 기대하지도, 꿈꾸지도 말고 살아가면 될 뿐이지만, 그래도 매년 다른 나라의 노벨상 수상을 지켜봐야 하는 씁쓸할 마음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