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공연예술의 새로운 물결,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벌써 10여 년 전이었던가. 런던을 여행했다. 세계 정상급 공연예술단체들이 초청되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페스티벌과 변방의 예술가들이 거리 곳곳에 진을 치는 프린지페스티벌이 한창이던 8월이었다. 에든버러에 다녀오려 했다. 무엇보다 에든버러성 광장에서 열리는 밀리터리 타투(Royal Edinburgh Military Tattoo)의 백파이프 소리를 듣고 싶었다. 기차로 4시간 반 남짓했으나 열차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버스로는 편도 10시간이라니 아이들도 어린 데다 일정이 빠듯하여 포기하고 말았다.
에든버러 축제는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인간 정신’을 되살리고자 개최하였다. 폐허의 전장에서 피워낸 꽃인 셈이다. 1년 내내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 과학, 어린이, 재즈와 블루스, 도서, 미술 축제로 도시가 떠들썩하다. 참여 예술가만 2만 5000여 명에 이르고 3000여 개 행사에 70개국 450만여 명이 찾는다고 하니, 가히 축제의 도시라 할 만하다. 에든버러는 문화예술의 세계적인 동향을 읽을 수 있는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예술이나 축제는 단순한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은 아테네인의 사고와 행동규범을 가르치는 텍스트이자 교양의 결핍을 보완하는 정신의 양식이었다. 축제는 공동체를 결집하는 구심점이면서 주변 도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전략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축제의 기획과 작품 발굴, 출연자 섭외, 경비 조달에 이르는 전 과정을 국가가 도맡아 처리했다. 현대사회에서 축제는 도시의 어메니티(amenity)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다. 어메니티는 쾌적한 도시환경을 의미하는 용어다. 사회기반시설 정비에 힘쓰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창조성이 발현되는 경험의 제공과 삶의 공간으로서의 만족도가 도시의 매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축제는 지역 어메니티 자원으로서 지역 경쟁력의 원천이다.
지난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이 열렸다. 국내외 100여 개 공연이 여러 공연장과 거리 곳곳을 농밀하게 채웠다. 겉은 공연예술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었으나, 속살은 다채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 국내외 공연예술기관과 축제 담당자들이 두루 참여하여 교류와 협력의 물길을 열었다. 폐막공연 ‘BOW’를 관람하고 귀가하는 길, 에든버러 축제에 가지 못했던 묵은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부산은 작품을 담아내는 그릇이었고, 다양한 콘텐츠가 부산이라는 그릇에 담겼기에 한층 더 빛났다. “지금부터 시작이죠. 이제 팔아야죠.” 부산문화재단 김두진 예술진흥본부장의 말이다. 옳거니! 정체성은 마켓이 아니던가. 슬로건처럼 ‘공연예술의 새로운 물결’이 부산을 넘어 세상의 모든 언덕에 다다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