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과도한 ‘개발주의’와 부족한 ‘계획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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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올해 3월 부산시의 미래 20년을 계획하는 ‘2040 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결국 현재 진행 중인 도시 인구 감소를 받아들이고, 이를 반영한 스마트한 도시 성장을 계획해야 한다는 주장은 반영되지 못했다. 환경부와 국토부는 부산시의 계획안에 대해 과도한 인구 예측을 지적한 데 반해, 시는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도시축소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완고한 주장이 여전한 가운데 기존 관행대로 인구 증가를 가정하였다.

390만 명에 다다랐던 부산시 인구는 최근 30년간 감소해 330만 명이 무너지고 있다.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도 없는 무리한 인구 증가 예측에 기반한 도시계획은 과도한 개발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어떤 언론인의 지적대로 “도시기본계획이 주택 건설을 위한 알리바이용 계획이냐”는 비아냥을 듣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2040 부산 도시기본계획’ 수립

인구 증가 예측 기반, 개발 전략 여전

도시 부활 위한 정책·역량 부재 실망

통계청은 2040년 부산시 인구를 대략 300만 명으로 예측했는데, 시는 350만 명을 계획했다. 50만 명가량 외부 유입을 가정한 것이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현재 도시기본계획의 내용을 보면 이에 대한 구체적 정책을 찾기 어렵다. 한발 더 나아가 ‘그린 스마트시티’라는 시정 목표가 무색하게 얼마 남지 않은 녹지 지역을 줄이는 방안까지 내놓고 있다. 반면에 주거 지역은 여전히 확대하고 있다.

대학생 1, 2학년을 상대로 하는 ‘도시계획개론’ 수업 중에 전국의 도시계획가에 대한 인터뷰 과제를 낸 적이 있다. 한 학생이 수도권 지역의 한 사람을 인터뷰했다. “부산은 날씨가 좋아 살기 좋은 도시”라며 “은퇴자 중심의 관광중심도시”를 추천하였다. 다음 말이 충격적이었다. “기업은 수도권에만 있으면 된다”면서 “부산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분노했지만, ‘부산의 상황은 아니다’라고만 할 수 없는 일들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다. 시는 언제나 기업 유치로 산업을 일으키겠다고 하지만, 현실에선 이에 역행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논의되던 준공업지역을 재활성화하려는 사전협상제(현재는 공공기여 협상제)가 부산에서 드디어 시행됐다. 그러나 기대와는 반대로 해운대 한진CY 부지에는 87%의 공동주택, 다대 한진부지에는 84.9%의 공동주택이 계획됐다. 도시의 심장이 되어야 할 공업지역을 주거지로 바꾸며 기업 대신 공동주택을 지으려는 무리한 주택개발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이미 30년 전 서울시에서는 보전용지와 공업용지를 보전하는 도시기본계획을 밝혔다. 과도한 아파트 건설로 인한 도시 환경과 성장동력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반면 급격히 쇠퇴하는 부산은 이번 2040 도시기본계획에서도 몇몇 공업지역을 주거지역으로, 보전용지를 공업용지로 변경하는 역행적 행위를 하고 있다. 이는 모두 과도한 주택개발주의에 도시가 휩싸여 있다는 것과 동시에 부족한 도시계획 역량을 보여 준다. 기업 유치와 인구 성장, 친환경적 삶의 질 증진 등 선순환하는 도시성장을 유도하고 촉진해야 할 도시계획이 잘못된 인구 예측을 기반으로 한 주택건설에 목을 맨 결과다.

1960년대 정부의 과도한 역할을 비판했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티부(Tiebout)는 ‘발로 하는 투표(voting by feet)’를 강조했다. 이는 시장 내 이해관계자의 자유로운 경쟁으로 지방도시의 발전을 강조했지만, 역설적으로 지방정부의 경쟁력이 부각돼 지역 내 도시계획 역량 강화가 중요함을 상기시켰다.

우리의 자치역량은 어떻게 되었나.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부산시 도시계획 역량은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전 중앙 정부에 의지하던 행태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으며, 주택허가 증가가 도시성장의 바로미터인 줄 알고 있다. 지역 문제 해결책의 수립과 실행을 위한 도시계획의 전문성이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시 공무원 1만 2000명 중 도시계획직 공무원은 겨우 0.1%인 12명에 불과하다. 세계 최고의 도시계획학 대학원을 나온 300명 이상의 인재가 근무하는 뉴욕시 도시계획 부서 등과 경쟁하기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가덕신공항 배후 물류도시 구상, 엑스포 이후 부산 도심 대개조, 15분 도시 생활권 구상 등 할 일이 태산인 부산은 이런 도시계획 업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2040 도시기본계획에 혁신기업을 어떻게, 어디에 유치할 것인지, 시민의 녹지·공원 접근성은 어떻게 개선할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도시계획의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지, 스마트 시티를 도시 곳곳에 어떻게 스며들게 할지에 대해서는 주요 현안 발굴과 실행 전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주택개발주의라는 허상적 이념이 아닌 도시의 부활과 재활성화를 위한 현실적 정책과 혁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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