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롯데 야구, '환골탈태' 주문도 지겹다
6년 연속 PS 좌절, 팬들 가슴 피멍
'31년째 우승 못 한 팀' 불명예
김태형 감독 영입 '희망 고문' 끊을까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심사가 말이 아니다. 가을바람 앞에 ‘멍 뚫린 가슴’이다. 올해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최종 순위 7위, 포스트시즌(PS) 6년 연속 탈락.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옆동네 NC 다이노스는 ‘가을야구’에 진출해 준플레이오프에서 한 순위 높았던 SSG 랜더스를 3연승으로 잡았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10구단 체제의 막내였던 KT 위즈는 이미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NC와 KT는 생겨날 때부터 롯데가 한사코 KBO 리그 합류를 반대했던 팀이다. 프로야구 전체의 질적 하락 우려가 이유였다. 지금 보면 참, ‘웃픈’ 얘기다. 이후 롯데가 NC나 KT보다 나은 성적을 거둔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1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0-7로 지면서 2023시즌 KBO 리그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 가장 오랜 기간 '가을야구' 없는 팀
롯데 자이언츠의 PS 진출 좌절은 2018년부터 6년째다. 순위를 더듬어 본다. 2018년 7위, 2019년 10위, 2020년 7위, 2021년 8위, 2022년 8위, 그리고 올해 최종 순위는 7위. 기가 막힌다.
롯데가 무시했던 다른 팀을 본다. 10구단으로 2015년부터 KBO 리그에 합류한 KT 위즈는 가을야구 단골손님이다. 2020년 창단 후 처음으로 PS 무대에 오른 KT는 2021년 통합우승을 일궜고 올해까지 4년 연속 가을야구를 펼치고 있다. 창단 3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NC는 첫 통합우승을 이룬 2020년 이후 3년 만에 PS 진출에 성공했다.
롯데 자이언츠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올 시즌 초반 선두를 달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3강을 형성하면서 ‘봄데’(봄에만 잘하는 롯데) 이미지를 잠시 지운 건 5월까지였다. 6월 이후 투타가 엇박자를 빚더니 급격한 내리막길을 탔다. 래리 서턴 감독이 중도 하차하면서 팀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롯데를 보노라면 ‘시시포스 신화’가 떠오른다. 시시포스는 지옥에서 무거운 돌을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는데, 정상에 가까이 가기만 하면 돌은 이내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시시포스는 돌을 들어 올리는 고통을 영원히 거듭한다. 힘겨운 등정과 추락의 무한반복. 그간 롯데의 행보가 이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아니다. 결코 적절한 비유일 수 없다. 왜냐하면 롯데는 20년 동안 정상 언저리에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른 게 1999년. 포스트시즌을 맛본 것도 2017년이 마지막이었다. 롯데는 1992년 우승 이후 31년째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지 못한 팀이다! ‘가장 오랜 기간 가을 시즌이 없는 팀’이라는 작금의 불명예는 차라리 약과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김태형 신임 감독이 지난 24일 부산롯데호텔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연합뉴스
■ ‘독이 든 성배’ 받아 든 김태형 감독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하루하루가 승패를 가르는 현장이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 하지만 롯데는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존재 가치마저 의문스러운 성적 부진. 장구한 세월, 팬들의 가슴은 피멍으로 얼룩졌다.
이 글은 결국 ‘환골탈태’의 주문으로 끝날 테지만, 사실 지겹고 지겨운 얘기다. 수십 년간 응답 없는 ‘희망 고문’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아직도 그럴 걸 하나? 애써 모른 체하는 이도 있고, 지지하는 팀을 갈아탄 이도 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진실은 그 반대다. 그만큼 애가 타고 ‘애정’한다는 반증이다. 부산 야구는 비교하자면, 지긋지긋한 혈육 같은 것이다. 무정히 끊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어를 수만도 없는.
그런데 부산 사람에겐 영악하지 못한 ‘속정’이 있다. 조금만 잘해도 무한한 성원과 박수를 보내준다. 프로농구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긴 KCC가 지난 22일 홈 개막전을 가졌는데 8780명의 관중이 몰렸다. 프로농구에서 개막전 한 경기 관중 8000명 이상은 2006년 이후 17년 만이다. 성적까지 잘 나온다면 관중은 더 많이 몰릴 것이다. 이런 곳이 바로 부산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여기서 깨우쳐야 한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팬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성원을 얻을 수 있다. 마침 김태형 감독이 롯데로 왔다. 두산 베어스의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끈 명장이다. 그가 마침내 ‘독이 든 성배’를 받아 든 것이다.
202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린 지난 6월 4일 부산 사직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롯데 '환골탈태'로 존재가치 증명을
지난 25일 부산롯데호텔에서 취임식을 가진 김 감독의 첫 일성은 “우승”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향한 키워드는 ‘공격 야구’다. 화끈하고 열정적인 부산에 딱 맞는 스타일이다. ‘우승 청부사’로 통하는 김 감독에게 바라는 롯데 변신의 핵심도 ‘공격을 통한 이기는 야구’에 있다 할 것이다.
김 감독은 이미 화끈한 팀 컬러를 구축한 경험이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특유의 카리스마다. 롯데가 3년 총액 24억 원이라는 최고 대우로 영입한 것도 이런 지도력을 높이 산 것이다. 숨겨진 재능을 발굴해 선수들을 육성하는 안목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향후 김 감독 체제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김 감독을 제대로 지원하는 단장이 와야 한다. 올해 거액을 투입하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자유계약(FA) 선수 영입 전략도 냉정한 진단이 필요하다.
물론 감독 한 사람 바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롯데는 미국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에서 근무한 인물을 단장으로 영입해 대대적인 쇄신에 들어갔지만 4년 동안 이렇다 할 결실을 내지 못했다. 구단 입맛에 맞추는 프런트 위주의 야구는 혁파돼야 한다는 방증이다.
지겹지만 반복할 수밖에 없는 주문을 또 하려 한다.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 ‘이름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비상한 각오여야 한다. 요란한 정치권의 구호를 닮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아니, 지금 롯데 자이언츠만큼 이 명제가 절실한 곳도 없다. 이를 위해서는 감독과 구단, 모그룹의 혼연일치가 전제돼야 한다. 김 감독은 “내년 PS 진출, 3년 내 우승”을 공언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희망 고문, 이번엔 끝낼 수 있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이젠 정말, ‘시민 구단’으로 가야 할지 모른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