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허브부터 아이스하키 경기장까지…진화하는 컨벤션센터 [로컬이 미래다]
엑스포 문화도시 4. 이탈리아 밀라노
40만㎡에 20개 전시장 ‘피에라 밀라노’
패션위크 비롯해 MICE 산업 중심지
2015년 밀라노엑스포 땐 물류 거점
2026년 올림픽 맞춰 스케이팅 경기장
유연한 운영으로 타 전시관과 차별화
거대한 ‘유리 덩쿨’이 퍼져나간 듯했다. 입구뿐 아니라 긴 통로까지 유리가 덮여있었다. 약 40만㎡ 부지에 20개 전시장을 갖춘 컨벤션 센터는 한참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9월 24일과 26일 두 차례 찾은 이탈리아 밀라노 로 지역 ‘피에라 밀라노’. 이탈리아 건축가 마시밀리아노·도리아나 푹사스 부부가 설계한 전시 센터는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2015년 밀라노 월드엑스포 당시 피에라 밀라노는 중요한 거점 역할을 맡았다. 패션이나 음식 등 기존 전시 행사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껏 다양한 문화와 주제를 다루며 MICE 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를 추진하는 부산은 북항에 ‘엑스포홀’ 등을 세우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공식 행사와 회의뿐 아니라 향후 MICE 산업을 이끌어 갈 공간은 세계박람회 유치 여부와 관계없이 필수적이다. 월드엑스포 거점 역할을 한 피에라 밀라노는 외관만 화려한 게 아니었다.
■ 월드엑스포 ‘전진 기지’
2015 월드엑스포는 피에라 밀라노 인근 부지에서 주로 열렸다. 100만㎡ 부지에 수많은 국가관과 그해 박람회 주제인 식량 관련 전시관 등이 들어섰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밀라노무역관에 따르면 6개월간 관람객은 2150만 명에 이르렀고, 이탈리아 업체와 해외 경제 사절단 업무 미팅은 4만여 건으로 집계됐다. 관람객은 약 23억 유로를 지출한 것으로 분석됐고, 비공식 수익은 이탈리아 국민 총생산 0.4%가량인 30억 유로로 추정된다.
당시 피에라 밀라노는 전시장으로 향하는 모든 물품이 모이는 허브 역할을 도맡았다. 사무실에서 만난 피에라 밀라노 로베르토 포레스티 부사장은 “월드엑스포로 향하는 모든 물품과 화물차에 대한 안전을 점검했다”며 “통과하지 않으면 어느 화물차도 전시장으로 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물차 흐름을 제어하는 전산 플랫폼 등이 있어 가능했다”며 “위층 전시 공간은 엑스포 물류 창고로도 활용했다”고 회상했다.
포레스티 부사장은 피에라 밀라노가 월드엑스포 국가관과 전시장 설치까지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상품을 보급하고 관리하는 ‘로지스틱’ 부분도 맡았다”며 “월드엑스포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로지스틱’ 서비스 제공 방안을 설명하는 공문도 썼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엑스포 주제가 식량인 만큼 피에라 밀라노 내부에선 ‘뚜또 푸드’라는 음식 관련 행사를 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국가 행사에서 전시 센터가 최대한 강점을 활용해 다양한 역할을 맡은 셈이다.
■ 산업으로 커지는 문화
피에라 밀라노는 지역에 특화한 문화와 산업을 성장시키는 역할에도 충실했다. 밀라노를 대표하는 패션 위크 때 중요한 행사들을 열어왔다. 액세서리, 신발, 가방, 목걸이, 가죽 전시 등이 대표적이다. 포레스티 부사장은 “6개월마다 패션 위크가 열리는데 동시에 3500개 브랜드가 전시에 참여한다”며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섬유 전시인 ‘밀라노 우니카’도 매년 2번씩 열리고, 안경 전시인 ‘미도’와 패스트 패션 브랜드 전시 등도 진행한다”고 했다. 그는 “가구를 포함한 주요 전시는 모든 전시장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넓은 면적과 체계적인 시스템이 동시에 대규모 전시를 가능하게 만든다. 포레스티 부사장은 “유연한 운영이 다른 유럽 전시장과 차별화되는 점”이라며 “출입을 나눠서 진행하기도 하고, 전시 설치와 철수도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보통 한 달이 걸려 지붕에 물체를 설치하는 작업을 5일 안에 해내기도 한다”며 “좋은 기술을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2005년 개관한 피에라 밀라노는 시내에 있던 전시 센터에 수요가 넘치면서 새롭게 세워진 곳이다. 피에라 밀라노 재단 오스카 카사 최고 기술 책임자는 “밀라노 중앙역에서 새로운 센터 부지 인근으로 향하는 초소속 기차가 있었고, 순환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점 등을 고려해 새 부지를 정했다”며 “전시장 외관은 건축가에게 맡겼지만, 꼭 필요한 조건은 기존 노하우에 따라 설계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 올림픽 경기장으로 진화
월드엑스포를 치르고 산업 발전에 앞장선 피에라 밀라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26년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전시 센터 내부에 설치하기로 했다. 포레스티 부사장은 “스피드 스케이팅은 13번과 15번 전시장, 아이스하키는 22번과 24번 전시장 벽을 허물어 경기장을 만들 예정”이라며 “올림픽을 계기로 엔터테인먼트 행사까지 열 수 있도록 기술적인 보강에 나섰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시내에 있던 ‘피에라 밀라노 시티’를 중환자실로 활용한 적도 있다. 카사 최고 책임자는 “사회적 책임을 갖고 비상 상태에서 기능을 바꾸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백신이 없던 시절 기압 조절이 되는 중환자실 157개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백신이 생기고 나서는 사용하지 않던 전시장을 접종 센터로 용도를 바꿨다”며 “의사들이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총 수백만 명에게 백신 주사를 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신을 접종한 전시관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밀라노 스칼라 극장이 폭격을 받았을 때 그들의 연주가 이뤄진 곳”이라며 “항상 필요할 때 지역을 돕는 게 피에라 밀라노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향후 부산에 전시 센터가 들어서면 서비스가 중요하단 점을 강조했다. 포레스티 부사장은 “새로운 전시 기획도 중요하지만, 다른 곳에서 활발한 전시를 가져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제일 중요한 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 했다. 카사 최고 책임자는 “식당과 숙소 등 전시와 연관되는 걸 잘 구축해야 한다”며 “매력있는 도시와 연결되는 부분도 지속 가능한 전시장이 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밀라노(이탈리아)/글·사진=이우영 기자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